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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Feb 04. 2020

프로야구선수들은 어떻게 자기관리를 할까

스포츠심리학이야기

 

타석에 서서 호흡을 고르는 추신수 선수 (사진출처: KBS뉴스 2019년 7월 19일 방송 캡쳐)

잠시 상상해보자. 당신은 야구장에 있다. 언제나처럼 관중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타선에 나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타자다. 경기는 9회말 투아웃, 상대 팀과의 점수 차는 2점. 우리 팀의 주자는 3루에 나가 있다.


 프로 야구 선수인 당신은 약간의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 절체 절명의 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상태 팀 투수의 입장 역시 마찬가지. 공 하나를 매개로 이뤄지는 선수의 퍼포먼스에 따라 승패의 흐름이 결정된다. 프로 스포츠 팬이라면, 순간의 플레이에 따라 승부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 선수들이 느끼는 긴장과 몰입감에 깊이 빠져드는 순간의 매력 역시,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 꼽을 것이다. 응원하는 팀이 매일 이기는 경기를 보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승패와 관계없이 경기의 순간 순간, 최상의 퍼포먼스를 발휘하기 위해 몰입하는 선수들과 감독, 경기장 안팎의 환경과 상황은 재미 있는 경기의 필수 요소 이기도 하다. 그러나 팬이 아닌 선수의 입장이라면 당신의 삶은 매 순간의 승부처와 마주하는 일은 위기이자 기회의 순간, 숨막히는 긴장감과 압박감을 매일 마주하는 국면으로 전환된다. 김성근 전 한화이글스 감독의 “일구이무(一球二無: 한 번 손을 떠난 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 전 뉴욕 양키스 감독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야구 철학은 야구 선수에게 매 경기마다 최상 혹은 최선의 퍼포먼스가 요구되는 스포츠의 세계를 표현해 주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경기가 끝난 후 (사진출처: Pixabay)


좋은 선수는 팀과 미리 협의한 전술을 깊이 이해함과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팀 플레이가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적시플레이를 할 수 있는 신체적인 기량과 전술적 기량,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프로야구는 팀 종목이면서도 선수 개인에게 맡은 포지션에 따라 개인 종목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개인의 신체적 기량과 팀 차원의 전술적 기량, 멘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복합적인 종목이다. 이는 좋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피지컬 요소와 전술을 이해하는 대인요소, 자신의 멘탈을 강하게 유지하는 정신력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좋은 선수라 하더라도 매 경기에서 최상의 수행을 보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 전, 경기 중, 경기 후에 선수의 기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요소에도 흔들림없이 매 순간 최선의 기량을 발휘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선수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련하고 관리해야 한다. 


야구 훈련장 (사진출처: pixabay)


인간수행연구소(Human Performance Institute)에서 언급한 인터뷰의 내용에 따르면, 경기나 훈련에 몰입하는 선수는 4가지 측면의 준비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신체적으로 에너지가 넘칠 것, 두 번째는 감정적으로 유대감을 느끼며, 세 번째, 정신적으로 집중된 상태에 있어야 하고, 네 번째, 장기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고 순간의 이익에 좌지우지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 및 경기 시간 외에도 선수가 꾸준히 자신의 신체를 소중히 여기며 건강한 바이오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을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뉴스에서 자주 보이는 선수의 음주운전, 방탕한 일상 등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선수로서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다. 굳이 이러한 일탈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기온, 습도, 섭취하는 영양소와 식단, 휴식, 수면 등 신체를 이끌고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좋은 선수들은 자신만의 컨디셔닝 루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루틴은 스스로 자신의 일상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실천능력, 즉 자기조절성을 높이는 바탕이 된다. 


트라이어스 캠프 현장 (사진출처: 매일경제 뉴스줌 기사 http://m.news.zum.com/articles/42578791)


LA다저스의 헤드 스트렝스 코치 트레비스와 타일러 역시 프로야구 지도자 대상의 트라이어스 캠프에서 선수가 자신에게 필요한 컨디셔닝을 자발적으로 찾아 꾸준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경기력 향상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상황에서 팀과 감독, 가족에게 안정적 유대감을 느끼는 상태는 팀워크, 지도자와 선수와의 관계, 가정에서의 정서환경 등 선수가 만나는 대인관계 중심의 사회적 환경이  건강하게 조성되어야 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경기장에서 선수의 자신감은 팀과의 유대감, 감독 및 코치진과의 신뢰감이 단단하게 밑받침 된 상태에서 고취된다. 세기의 레전드 베이브루스 역시 팀워크의 중요성은 팀의 승리와 구단의 가치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모두 하나가 된 팀플레이가 성공과 실패(승리와 패배)를 가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팀플레이가 부재하다면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구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스타플레이어가 없는 팀에서도 끈끈한 응집력과 결속력이 있다면 선수의 기량은 팀 안에서 시너지를 이루며 최대의 수행으로 발휘될 수 있다. 19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김경문감독 역시 이러한 팀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직력이 최우선순위임을 언급한 바 있다. 

팀워크(사진출처: pixabay)

 

신체적인 기량과 팀워크가 잘 정비되면, 시합이나 훈련시간 중 선수의 몰입은 더욱 높아진다. 그러나 최상의 몰입상태를 시합 내내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선수들은 자신의 몰입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주의집중을 위한 루틴을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KT위즈의 강백호 선수는 경기 시작 전 외야쪽에 할머니와 부모님,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적는 루틴이 있다. 손자의 프로 데뷔를 앞두고 별세하신 할머니, 늘 자신을 응원해주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주의집중에 대한 의지를 시각화해 다지는 것이다. 키움 히어로즈의 박병호 선수는 타석에 들어서면 배트로 바닥을 한번 쓴 뒤 배트 끝을 바라보며 순간적인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단순간에 끌어올려진 집중력은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는 승부처의 순간에 선수가 다른 잡음 없이 자신의 퍼포먼스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강백호, 박병호 선수 외에도 좋은 선수들은 경기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다. 

 프로 스포츠가 시작되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선수의 몰입을 위한 신체적 훈련, 감정적 유대를 위한 팀워크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준비되어 있다고 믿는 선수들도 때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며 슬럼프를 겪는다. 선수들은 경기와 훈련과정을 통틀어 실력이 좋든 좋지 않든, 훈련과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보였든 그렇지 못했든 매 순간 받는 피드백이 50건 가까이 된다고 한다. 선수의 수행은 많은 대상에게 노출되어 있으며, 승부와 성적에 대한 압박은 매우 크다. 숱한 경험을 통해 신체기량, 대인관계기술, 주의집중능력이 잘 정비된 선수라도 때로는 멘탈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팀의 부진, 부상 이나 실책에 대한 트라우마, 그 외의 개인적인 요인들 속에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멘탈 관리는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플레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자신을 통제해야 한다. 견디기 어려운 압박감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을 맑은 정신 속에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요기 베라 역시 “야구는 90%가 정신력(멘탈)이다” 는 말을 남겼다. 

 짧은 시간 동안에도 숱하게 오가는 피드백과 경기 기록, 연이어 이어지는 승패의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위해서는 결과지향적인 사고방식보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목적을 생각하고, 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의 균형을 맞추며 퍼포먼스를 수행해 나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메이저리그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는 18세에 이미 40세까지의 나이별 계획표를 세워 화제가 된 바 있다. 19세에는 영어를 완벽하게 익히고, 20세에 메이저리그 진출, 21세에 소속팀 선발진에 들어가 16승 달성, 26세 월드시리즈 첫 우승, 40세 은퇴까지 중장기적 관점의 목표를 두고 순간 순간, 멘탈이 흔들릴 때마다 목표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다저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 선수. (사진출처: 스포츠조선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8/2019072800158.html


 어깨와 사타구니 부상을 겪으면서도 부상 이후 더 강해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팬들을 놀라게 한 LA 다저스 류현진 선수 역시 ‘보살’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멘탈 관리를 잘 하는 선수 중 하나다. 고교 1학년 팔꿈치 수술 후 힘든 재활을 이겨내고 오히려 자신의 구속을 높이고, 한화의 ‘소년 가장’ 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팀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꾸준히 기량을 보여주는 멘탈은 그를 메이저리그로 이끌었다. 15년, 16년 어깨와 팔꿈치 수술이라는, 투수로서는 복귀의 여부가 불분명할 정도의 큰 시련을 딛고, 류현진은 오히려 구사할 수 있는 구종을 3가지에서 5가지로 늘렸다. 18년 사타구니 부상 후에는 타자들의 특징을 반영해 맞춤형 투구(?)로 타자를 요리하는 투수가 되었다. 


 수년 간 쌓아올려온 루틴과 습관은 오히려 엘리트 선수에게 변화를 수용하기 어렵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류현진은 부상과 재활이라는 시련에 매몰되지 않고, 야구를 하는 목적과 본질에 집중해 자신을 끊임없이 진화시키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할 수 있는 것’ 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에서 나온다. 

 

변화무쌍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일반 직장인들과 야구 선수의 삶은 표면적으로는 다르다. 그러나 선수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현대인들에게 야구 선수의 자기관리는 개인으로서, 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멘탈을 다잡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일의 건강한 신체를 위한 의식적이고 꾸준한 노력, 안정적인 유대감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좋은 바탕의 대인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능력, 순간적인 주의집중을 끌어올릴 수 있는 나만의 루틴, 순간의 상황에 휩쓸리기보다 긴 호흡을 두고 중장기적 목표와 이 일을 하는 업의 목적을 생각하는 통찰. 이 모든 요소들은 일상을 건강하게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멘탈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야구장에 찾아가보자(사진출처:pixabay)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프로야구는 프로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긴 시즌을 이어가며 한 경기당 평균 시간도 3시간에 육박하는 긴 호흡의 스포츠다. 때로는 야구장을 찾아가 선수들을 만나보자. 상대 팀과 만나 매일 승부의 세계에서 훈련을 통해 쌓아 온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자. 겉으로 드러나는 플레이 이면의 멘탈을 지켜보는 치열한 현장에서 우리도 자주 겪는 멘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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