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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Mar 23. 2021

경직된 목은 “괜찮은 척”을 한다

의연한 척 괜찮은 척, 그렇게 목에 힘을 줬다.

 문득 살아온 날들의 숱한 감정과 체험은 오로지 ‘나만의 일’ 이라는 사실에 흠칫 놀랄 때가 있다. 유년 시절까지는 친구들과 살아온 경험의 스펙트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일같이 학교에서 만나며 나누는 경험이 고만고만했다. 형편이나 부모님의 성격, 혹은 가정환경 등이 다를 수는 있었지만, 학교에서 하는 경험만큼은 삶의 교집합으로 겹쳐졌다. 생김새와 성장환경이 다른 친구들인데도, 학창시절의 추억위에서는 까르르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라면서 사회에서 만나는 이들은 삶의 맥락이 너무나도 달라졌다. 각자의 기질이나 성격적 특성에 호감을 느껴 관계가 시작되지만, 삶의 교집합은 너무나 좁고, 살아온 맥락의 갭은 너무나도 크다. 관계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한편으론, 나를 아무리 좋아하는 이들이라도 속 깊은 곳의 아픔은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기도 한다. 이는 역으로 내가 그들의 아픔에 오롯이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그들을 아무리 깊이 공감하려 애쓴다 해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힘든 시간을 겪었다. 관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일 때 편한 사이였던 사람과 삶과 삶을 겹쳐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무와 책임을 수반해야만 안락함으로 돌아오는지 알지 못했다. 친구의 관계일 때는 그럭저럭 잘 지냈는데, 삶의 시간이 더해지고 나서는 생소하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삐그덕거렸다. 삐그덕 삐그덕 절름발이처럼 어딘지 불편했던 관계는 이내 끝나버렸다. 이별이 두려워 이별을 피하려 상대의 심기를 살피고, 맞추고, 때로는 나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끝내 잔뜩 힘을 주며 관계를 지키려던 노력을 거두기로 결심하고서 상실감의 쓰나미에 휩쓸려버렸다. 어긋난 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은 상실감으로부터도 나를 지키기 위한 패턴으로 굳어졌다. 온 몸에 힘을 주고서 괜찮은 척을 했다. 내가 겪는 힘듦과 아픔은 오로지 내 몫이니까. 누구에게 말을 한다 한들, 도움을 받을 수 없고, 괜스리 서로 마음만 어지러이 할 뿐일 테니까. 고통을 마음에 품었다. 더 크게 웃고, 더 즐거워하는 척을 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지인들이 어딘지 걱정하는 눈으로 나를 봐주고 있었다 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는 눈길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내 고통에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각자의 아픔을 품은 채로 살아내고 있었다. 내 고통만 보이는 시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엿보였다. 몸을 공부한 후로 가까운 지인들의 몸 패턴을 엿보곤 했다(판단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관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을 뿐.) 삶의 사연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몸에 담긴 사연들이 조금씩 드러날 때, 몸에 담긴 삶의 역사를 엿보았을 때, 한 사람 한사람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모두 각자의 힘듦을 버텨내며, 오늘 힘듦을 버텨서 내일을 이겨낼 역량을 길러내며 살고 있었다. 


능력치보다 힘겨운 과제가 찾아왔을 때, 역량을 길러내는 과정에서 가장 약한 곳에, 혹은 가장 강한 곳에, 습관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곳에 잔뜩 힘을 준다. 그렇게 삶의 과제를 해내고 있는 동안에 딱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힘이 습관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곳이 있다. 특히 목에 힘을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시선이 따라가며 목을 가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잘 되지 않고, 안간힘을 쓰며 앞으로 나아가려, 전방을 주시하려 애를 쓰는 목. 경추가 과신전되기도 하고, 목의 후방부, 앞쪽 목의 굴근, 흉쇄유돌근 등이 전반적으로 경직된다. 뒷목이 당기기도 하고, 열감과 함께 안압이 오르기도 한다.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목이 경직된다. 어제 내가 목을 빳빳히 들고서 "괜찮은 척"을 한 후유증이다. 


오늘 웨이트를 하며, 목이 지나치게 경직됐다며 걱정하는 트레이너가 한마디 덧붙인다. 

"스트레스 받은 날엔 운동한 날보다 더 목 많이 풀어야해요. 그러다 목 디스크 와요." 


괜찮은 척을 했던 내게 폼롤러 스트레칭을 해줘야겠다. 겉보기엔 괜찮아보여도,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나는 알아줘야겠다. 스스로 괜찮지 않음을 인정해야 이정도에 흔들리는 기초체력을 더 강하게 다질 수 있다. 때로는 약함에 직면하는 것이 괜찮은 척을 하는 것보다 더욱 괜찮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기도 할 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목의 안부를 묻고 싶다. 당신의 목, 괜찮은 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 풍파에 흔들리는 시선을 꼿꼿이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척을 하느라 목과 어깨가 고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미지출처: 헬스조선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0102301178 


좌우로, 대각선으로, 목을 이리저리 풀며 마음으로 목에 "괜찮다" 고 안심을 준다. 그렇게 있는 힘껏 힘을 주고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잔뜩 짧아진 목 근육에 적당한 압력과 스트레칭을 가하며 조금 풀어져도 괜찮다고 감싸안아준다. 가장 편한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목을 여기저기 늘려주다 보면 어느새 부족한 면을 드러낼까 겁먹고 괜찮은 내가 안심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충분히 풀어준 목을 들어 세상을 보자. 기껏해야 내 조그만 머리를 지탱하기만 하면 되는 목이다. 세상 걱정을 다 버텨야 하는 것이 아니며,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경직된 목은 '괜찮은 척' 을 한 시간의 댓가다. 괜찮은 척이 필요한 순간도 때로 있겠지만, 오롯이 나 혼자 있을 때만큼은 풀어지고 약해져도 되는 나를 편하게 쉬게 해줄 수 있어야겠다.  쉬어야 또 달려나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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