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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Mar 24. 2021

달리기를 하다, 거미줄에 걸렸다

움직임일기

 아침 5시 반에 눈을 떠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달리기든 헬스장이든, 그때 그때 당기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내 운동시간은 거의 일정하지만,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는 그닥 계획에 없다. 그 날, 마음이 이끄는 곳에 간다.


본가에 오면, 선택지가 없다. 아파트 커뮤니티센터는 코로나로 문을 닫은지 오래다. 다행히 인근에 러닝할 수 있는 멋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요즘은 해가 덜 나고 바람이 선선해 달리기에 딱 좋다.


공원을 달리다보면 갈림길을 만날 때가 더러 있고, 나는 역시나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간다. 길을 헤맬 일도 없다. 돌아올 때는 지도 앱을 켜면 되니까. 그런데 오늘은 왠지 공원을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고 싶었다.

다리를 건너 자전거도로와 보도블록이 함께 있는 곳으로. 송도에는 라이딩을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보도블록쪽으로 달렸다. 안전을 위해서일까, 보도블록과 자전거길 사이에는 견고하게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는데, 왠지 길 정돈하는 사람들도 접근이 어려워선지 정글이 따로 없었다. 그야말로 오지레이스.


정글탐험(?)같은 러닝 중 거미줄을 봤다. 미처 피할 수가 없어 온몸으로 거미줄에 걸렸다. 거미줄은 힘없이 끊어져버렸다. 별 수 있나. 달리는 사람이 거미의 먹이가 될 수 없을테니. 거미에겐 미안하게도, 아침 첫 마수걸이가 험악하게 됐다.

거미는 곤충세계에서는 포식자지만, 곤충세계보다 더 크고 넓은 세계속에서 산다. 먹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쳐 놓는 거미줄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헤쳐버리는 존재들이 공존하는 생태계다. 그것도 악의 없이. 거미가 잘 살아 남기 위해서는, 거미줄을 치는 데 힘을 빼는 것이다. 외려 조각조각 끊어진 거미줄이라도 언제든 덧대고 기워낼 수 있는 힘을 남겨 놓아야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잘 하고 싶을 때 3/4의 힘만 쓰라는 니체의 말은 여기서도 뇌리를 스쳐간다. 힘 빼야, 힘 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힘이 들어야 하는 건, 삶을 책임지는 존재로서는 당연하다.


 거미에게 미안한데 사과할 길이 없다. 그저 거미가 힘내주었으면 하고 바랄밖에. 옷자락에 버둥거리는 거미를 떼네어 옆 나뭇가지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나도 어느 곳에서는 거미로 살고 있다고. 무심결에 공존하는 존재와 더불어 살며 하릴없이 헤어져버린 거미줄을 기워내며 살고 있다고. 마음을 담아 한걸음 한걸음 내디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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