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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Apr 04. 2021

물속에서 삶을 배운다.

수영을 배우며 만나는 삶 이야기

수영을 배우고 있다. 처음엔 물이 무서웠는데 조금 하다 보니 편해지고, 재밌고, 점점 물속에서 자유로워진다.


원래는 물을 무서워했다.

멋진 사진을 찍고 싶어서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는데, 사실은 물이 무서워 덜덜 떠는 맥주병이었다. 다이빙이 재밌어지면서, 그리고 다이빙을 하며 한계에 부딪히면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중학교 때 여름, 수련회에서 계곡에 놀러 갔었다. 이쪽 기슭에서 저쪽 기슭으로 헤엄쳐 가보자고 친구들과 내기를 하고선,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대로 떠내려갔다. 친구들은 어찌 잘 반대편 기슭에 닿았지만, 왠지 나만 하류 방향으로 떠내려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죽을 뻔한 상황이었는데, 어찌 하류 방향에 있던 다른 학교의 수련회 일행이 나를 구해줬다. 엄청 혼났고, 그날 모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심연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었던 기억. 빠져나오려고 힘을 쓸수록 물은 나를 집어삼켰다. 온몸에 힘을 빼라는 선생님의 외침이 들렸고, 힘을 빼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차피 떠내려갈 거,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일행에게 돌아갈 수는 있겠지’ 하는 생각에 떠내려 가는 나를 놓아주고 나서야 몸은 떠올랐다.


삶은 어찌 보면 물과 비슷하다. 때로는 흐르는 물결에 몸을 싣고 가고 있는 듯하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래서 시간 속에서 원하는 모든 걸 놓치지 않고 누려야 할 것 같지만, 때론 시간에 몸을 싣고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기에 시간의 흐름과 결을 느끼며, 힘을 빼야 할 곳은 충분히 빼고, 힘을 주어야 할 곳- 코어나 정렬-에 집중해 틀어진 몸의 방향을 바로하는 데 정성을 쏟는다.


수영을 배운다.

낯선 환경에서 겁을 먹었을 때 나오는 행동들이 익숙해진 마음길을 따라 나온다.


 . 습관성 겁쟁이.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잖아. 하나씩 하면 되잖아. 다른 사람과, 다른 물결에  탄 이들과 널 비교하지 마. 넌 그냥 잘하고 있는 거야. 네 속도에 맞춰서. 네 흐름에 맞춰서.”


익숙해질 때 까지는, 한 번에 하나씩만 배울 수밖에 없다. 킥이 익숙해지고 나서 팔 동작을 배웠는데, 팔에 집중하다 보니 다시 킥이 엉망이 되고, 숨쉬기에 집중하면 팔이 엉망이 된다. 어쩌겠어. 욕심을 내려놓아야지.


빨리 즐길 수 있게 되기를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몸은 내 역량만큼의 속도로 배운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하나하나 배움에 감사하고 집중하는 것이 지금 현재를 살아내는 가장 지혜로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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