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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벗기

못말리는 아빠와 딸 고집 배틀.

by 김예림

방학에 한국에 돌아와 집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께 몽골에 있는 동안 안부 전화 겸 드렸던 전화에서 한 말대답이 화근이 되어, 성이 나신 아버지가 집에 오지 말라 강경대응을 하신 것.


동생과 엄마는 처음엔 적당히 잘못했다 빌라고 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강경하셨던 아버지의 강수에 함께 부아가 났다. 그리고 쿨하게 집에 안들어갔다. 죄송스럽게도(한편으론 진하게 감사하게도) 사회 엄마 육현주코치님께 신세를 졌다.


여담이지만, 집도, 차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육현주대표님의 환대에 눈물이 잔뜩 났다. 아니 이 분은 어찌 부모님도 못해주는 환대를 이리도 따뜻하게 해 주시나. 중간 중간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네도 다녀오고 하느라 분주했지만 가슴 한켠에선 마치 고아가 된 양 찬바람이 휑하니 불었다. 딱히 아버지께 한 말을 곱씹어도 이렇게까지 혼날 일인가 싶어 억울했다. 그동안 부모님께 잘한것도 많은데. 아빠도 밉고, 엄마 동생 다 미웠다. 중재한답시고 한마디 한마디 하는 말들이 다 아팠다.


몽골보다 한결 따뜻한 겨울 날씨인데, 나는 왠지 더 추웠다. 친구들이, 진성 도반님들이, 도생님들이 응원도 해주시고 공감도 해주시고 힘을 많이 주셨다. 이분들의 사랑을 어찌 다 갚나.


명절에, 조상님께 차례는 드려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대충 묵는 숙소에 차리려다가, 용기를 내었다. 아버지가 쫒아내시면 절만 하고 가겠다 해야지. 아버지의 조상님이기도 하지만 내 조상님이기도 하지 않은가. 한편으론 아무리 아버지가 화가 나셨다 해도, 그것까지 막을까 싶었다. 끝내 아버지가 쫒아내시면 그냥 나오면 되지 뭐. 이러거나 저러거나 일단 가자. 온전히 공부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 시험이라니 들이대보는 의대생 강심장이 퍽 도움이 됐다.


저멀리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해가 용기가 됐다. 집에 들어서는 길에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 아… 가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아니, 액땜이다 하고 다른 엘리베이터를 탔다. 호사다마라지. 주문을 외우면서.


집에 도착하고 나는 돌아온 탕자가 된 것처럼 조금 혼나고 많이 환대받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바람에 아버지의 혼내는 언사마저 두서가 없어 마지막엔 허허 웃으셨다. 아마도 이 며칠, 고집쟁이 부녀는 거울처럼 똑같이 닮은 고집을 보며 많이 생각했겠다. 부모의 마음에 대해, 자식의 도리에 대해. 그리고 어이없게 숱한 고집들은 시트콤처럼 끝이 났다. 나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참았다. 많이 춥고 힘들었던 걸 들키지 않으려고. 갑진년의 고집은 털고, 을사년엔 따듯하게 보내는 걸로:)


#새해복많이받으세요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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