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림 Mar 21. 2021

혼자가 되는 연습

나를 돌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


꽤나 오랬동안, 아기를 낳고 길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태어났을 때의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성인이라 불릴 수 있는 나이가 되고부터 아기를 낳는다는 건 꽤 책임감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아기는 나 혼자 낳고 싶다고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좋은 아빠가 될 동반자를 찾는 것은 꽤나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엄마가 되고 싶어했으면서 나는 나를 낳아준 엄마 아빠를 원망했던 적도 꽤나 많았다.


아기를 낳고 싶었던 건, 어쩌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퍽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외롭고 또 외로운 시간이기도 하다.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 나와 만나고, 꽤나 잘했다고 보듬어 안아주기도 하고, 이제 뭘 해내보자! 하고 결심하는 시간이 전부일텐데도, 혼자인 시간은 막연하게 불안하고, 막연하게 위태롭게 느껴졌다. 뭔가를 채워야한다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고 있는데 혼자인 나만 멈춰있다고 생각하며...  이상하게, 혼자인 시간은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은 혼자 쌓아나가는 것들이 나를 채우고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게 하는 시간일텐데도.


나는 나와 얼마나 친한가.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고독의 밀도를 높이는 ‘질’ 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면 혼자 있는 시간에 나는 나를 채찍질하는 것에만 익숙했던 것 같았다. ‘쉰다’ 는 건 모조리 소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만화책이나 보면서 누워 뒹굴뒹굴해도 되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으로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나에게 셀프 보상을 준다는 것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나마도 저녁 시간이 되면 허투루 지나가버린 시간에 왠지 모를 마음의 가책이 생겨서 나태했구나, 게을렀구나 나를 채찍질하고, 그나마도 허락한 쉼을 더이상은 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러면서 술을 먹기도 하는) 것이었다니.


혼자 있는 나를 ‘돌봐주기로’ 마음을 다시 먹는다.

굳이 아기를 갖지 않더라도 홀로 있는 시간에 내가 아기가 되어버리는 까닭이다. 뭔가를 잔뜩 열심히 해놓고도 나를 칭찬해주지 못해서, 홀로 있는 나는 늘 걱정이 많고 두려웠었다. 심지어 혼자서 “해야만 하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찾아 하지 못했다. 홀로 있는 시간에 내가 주로 했던 건, 빨래, 밀린 설거지, 만화책읽기, 넷플릭스드라마, 가끔은 끄적끄적 글 쓰기. 운동이나 강의안을 만드는 일, 읽었던 책을 정리하는 일 등은 누군가가(혹은 의무적으로) 시켜서 했던 일이었다. 내가 해냈던 일들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칭찬해줘 본 적이 없었다. 홀로 있는 나는 그래서, 마치 해리포터의 ‘도비’ 처럼, 자유를 그리워했지만 자유를 두려워했다. 자연스럽게 무언가에 의존적인 사람이 되게 딱 좋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었다.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누군가에게 홀로의 나를 맡겼다. 나는 에밀 싱클레어가 되기도 하고, 나미야잡화점의 세 도둑 중 하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스피노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책 속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늘 망설여졌다. 책속에서 나를 위안해주던 인물들은 책 밖으로 나와 나를 인정해줄 줄 몰랐다. 그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일요일 아침, 오래간만에 온전히 홀로인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누구에게 맞출 필요도, 누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는 시간. 그리고 눈물이 가득 고여서는 “저는 뭘 하면 되나요” 하고 나를 쳐다보는,  홀로인 나를 마주하게 됐다.


“우리, 스스로를 위한 일을 하자. 하나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내게 행복한 일을 해보자.”


나를 꼬옥 끌어안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해주리라 마음먹어본다. 사실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던, 그럼 그도 나에게 해줄거라 믿었던 것들을 내가 나한테 해주기로 마음먹어 보는 것이다.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것을 셀프로 해주고, 온전한 각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꽃과 같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물을 길어다 주는 정도의 마음나눔이 ‘존중’의 관계인지 모른다. 그리고 나를 위한 셀프 존중을 배워야만, 상대를 온전히 존중할 수도 있다. 인연은 의지로 이어지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나로서 태어나고 나를 만난 인연만큼은 의지를 담아 살아나가야 한다.


“행복의 정의” 를 내려보자. 그를 위해 내려본 몇 가지 질문들에 답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행복한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 쉽게 감정이나 상황에 마음을 놓치지 않는 단단한 사람

내 삶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내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 성장, 사랑.

살고 싶은 나, 되고 싶은 나를 만드는 성장을 끊임없이 하고 싶다. ‘살고 싶은’, ‘되고 싶은’의 방향을 나를 위한,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두고 성장하고 싶다.


오늘과 내일 당신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가?
> ‘순간’ 에 ‘감사’ 한 일들. 순간 순간, 감사해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나는 어떤 때 행복을 느끼는가?
> 약한 나를 발견하고서, 그런 약함을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역량의 성장’ 을 느낄 때.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 필요하다면 자살할 수도 있다. 괴롭다고 느껴지는 순간, 유일한 선택지가 자살이라고 느껴진다면 자살할 것이다.

그러나 괴로움은 지나가는 것이고, 순간의 괴로움을 지나보낼 수 있는 선택지를 제법 많이 알고 있고, 조금 더 모으는 중이다.

나는 이번 생에 어떤 소명을 하러 왔나.
>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괴로움을 지나보낼, 몸과 마음의 연결을 알려주고 싶다. 허락된다면 가족을 꾸리고 가족에게 안정감을 주는 아내와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로서의 역할과 사회 속에서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진 마음력이 그렇게 발동할테니까.

내가 나다움을 발견할 때는 어떤 때인가.
> 자기 스스로를 예뻐할 수 밖에 없는 순간 순간을 마주할 때.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접했던 자극에서 통찰을 깨달을 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하고도 스스로에게 채찍질할 때, 귀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노력한다.

운동심리학을 통해, 몸을 쓰면서 자신을 아끼는 법을 알려주고, 운동하고 싶도록 독려하는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같다.

내 삶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나와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은 배워나가며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될 것이고, 생존과 풍요를 위한 방법도 배우고 삶에 적용하는 방법들을 변화시켜나갈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도 진심으로 귀한 나를 지키고자 하는(단순히 생존의 안녕이 아니다. 신념과 진정성을 지키고자 함이다), 사랑을 전하고 싶은 의지는 변함이 없을것이다.

나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 인식하고 있는가
> 열정이 큰 사람. 세상에 치유를 주고받는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언어적인 센스가 있고, 통찰을 길어올리는 힘이 있는 사람. 맥락적 사고를 하는 사람.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가.
>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 어떤 순간이든 상황이든 생에 감사함을 느끼고 전달할 수 있는 죽음.

(아. 감사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사를 표현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죽음의 순간은 알 수 없으니.)

매일 꾸준히 해야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 씻기, 건강하게 움직이기. 감사함의 표현. 나와의 약속 지키기.

그동안의 삶 가치관에 비추어 보았을 때 틀린 결정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해야만할때,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 삶의 핵심가치를 생각하면서 ‘틀린 결정’이 무엇때문에 틀린 결정이라 생각했던 건지, 본질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핵심가치와는 부합하는지 비추어보고, 행복할 수 있다면 나에게 떳떳한 결정이 될 수 있도록 행동방식의 방향을 다듬어본다. 하고 싶다는 욕망과 관계 없이, 어떤 결정이건 나에게 떳떳한 것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홀로 있는 나에게. 사랑을 전하는 시간을 가진 느낌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떳떳하게 나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약한 나라도, 슬픈 나라도 최선을 다해 보듬으며 행복을 선택하기로 한다.

적다 보니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나라서 기쁜 마음이 든다.

거짓말처럼, 일요일 아침의 비가 그치고 연구소 창에도 해가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한 도구가 항상 탁월한 도구인 것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