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습관만들기 Tip. 잘하고 싶은 마음을 정성을 쏟는 마음으로 바꾸기
“코치님 저는요, 운동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작년부터 운동습관만들기 코칭을 하며 놀라는 지점은 '운동을 싫어해서' 운동을 시작한 이들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운동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운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북스럽고 부담스러운가보다. 그도 그럴것이 '땀을 흘리는 느낌', '숨이 찬 느낌', '근육이 당기고 아픈 느낌' 의 고통 3종세트를 골고루 맛보는 과정이 그닥 쾌적한 것만은 아닐테니까.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운동'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삶에서 경험했던 '고생' 과 비슷한 것 같다.
더운 여름날, 땀이 비오듯 나는 어느 한낮에 무거운 가방을 지고 하염없이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아등바등 힘들어 죽겠는데, 한번 더, 한번 더를 거듭하며 근육을 괴롭히는 느낌이랄까.
절체 절명의 지각 상황에서 숨이 턱에 받히다 못해 목에서 비릿한 피 맛이 올라오는데 속도를 늦추면 늦을 것이 뻔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해도 잘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을, 하면 할 수록 욕이 나올 것만 같은데 욕만 나오고 실력은 도통 오르지 않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느낌이랄까.
쓰다 보니 어이쿠. 나도 질려버릴 것만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싫으면 안하면 되는 것을 굳이 굳이 하고 싶어하며 운동습관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스스로다. 실제로 운동습관을 만드는 모임에 오시는 분들은 자발적으로 운동을 하겠다고 오시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분도 부지기수다.
운동을 생각하며 괴로움을 떠올리는 건, 사실은 운동을 좋아하고 싶어하기보단 '잘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흔히 우리는 낯선 무언가를 접할 때 서툰 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나, 능숙하게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나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당연히 한 번에 잘될 리 없고, 한 번에 능숙해질 리 없는데 '잘하지 못하는' 상태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운동을 싫어하는 이유를 듣다 보면, 말하는 이들의 완벽주의기질이 엿보인다. 청년기를 넘어 중장년기에 들어선 우리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의 기억을 하지 못하듯' 무언가를 시작할 때의 느낌, 서투를 수밖에 없는(그땐 모든 것이 서툴렀으니까) 나를 인정하고 하나씩 하나씩 정성껏 개선해 나가는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미 어떤 분야에서 일갈을 이룬 이후, 쉽게 해내는 내 모습에 익숙해진 나머지 잘하지 못하는 상태를 버텨내며 조금씩 성장하고 이겨냈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는 것이다.
운동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나' 를 만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어쩌면 잘하는 순간을 만나는 순간, 싫었던 운동이 꼭 챙겨야 할 즐거움의 대상이 될 지 모른다. 잘하는 걸 하는 것은 즐겁다. 같은 걸 하더라도 쉽게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심지어 도울 수도 있다.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툰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감내할 것인가' 의 과제와 마주하는 일만 남았다.
비싼 돈을 들여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싼 레슨을 받는다 해도, 우리가 직접 해봐야 는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는 데에는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해도, 다른 사람보다 천천히 늘 수도 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왜 남들처럼 빨리 잘하지 못하는 걸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더욱 괴롭고, 시간은 천천히 가며, 버티고 견디는 시간은 실력을 아주 천천히 늘게 한다.
어린아이들은 무엇이든 빨리 배운다. 빨리 배워서 빨리 노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우는 과정에서의 서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귀를 쫑긋,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기일전해 배운다. 하나를 익히면 뛸 듯이 기뻐하고, 몰입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뭔가를 배우는 과정에 정성을 쏟는다. 어쩌면 우리는 배우는 과정에서 정성을 쏟는 것을 잊어버린지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운동을 하면서, 한번에 하나씩, 정성을 쏟는 나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안 쓰던 근육을 쓰고, 안 해봤던 동작을 익혀 보고, 낯선 환경에 나를 노출시켜보면서 잘 하기위해 익혀야 할 것들에 집중해본다. 당장은 잘 하지 못해도, 잘하지 못하는 나에 집중하기보다 '무언가에 정성을 쏟는 나' 에 집중한다. 운동을 배우며 수반하는 고통에 집중하는 것만큼 운동을 어렵고 괴롭게 하는 방법도 없다. 힘든 웨이트를 할 때 근육에 걸리는 부하에 집중해서 바른 자세를 하고 있는지에 몰입하고, 한 번 두번 반복하면서 총 몇 번을 하고 있는지보다 몇 번까지 바른자세로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힘든 상태에 집중하기보다 '움직이고 있는 나(꽤 멋져보인다)'에 집중한다. 그리고 자기 암시를 해보는 것이다.
"열심히 실력을 키우는 나, 좀 멋있는데"
낯선 운동을 잘하게 되기까지는 시간과 노력의 투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낯선 운동을 즐기는 데에는 별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어디에 집중할지를 알아차리면 된다. 서툰 나에 집중하기보다, 하나의 큐 포인트를 만날 때마다 한번에 하나씩, 개선을 목표에 두고 집중하는 나를 만나면 된다. 서툴기보다, 아주 미세하게나마, 약간이나마 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아마도 운동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도전하는 나' 를 대하는 내 자세를 돌아볼 수 있다. 새로운 시작에 있어 우리를 설레고 즐겁게 하는 마음길은 언제나 '지금 내가 느끼는 동사적 느낌(움직임)' 에 집중하는 것이며, 어떤 움직임이건, 당신이 힘겹게 느낄 만한 움직임들이라면 당신을 성장시킨다. 삶에서 모든 고통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고, 오히려 고통을 성장통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능력은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길러질 수 있다.
운동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는 느낌을 싫어하는 것이다.
운동을 잘하게 되면 운동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배울 때의 과정을 즐길 수 있으면 운동을 잘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움직임은 숙련도가 올라가면 익숙해지고 잘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서툰 과정에서 정성을 쏟으며 시행착오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뿐이다. 성장하는 나를 만나면서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지금 뿐이다. 서툰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한 번에 하나씩 개선을 거듭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느낌을 만끽해보자. 분명 삶에서 행복을 선택하는 능력도 쑤욱 커나갈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아니, 이미 경험으로 내가 충분히 겪었던 것들이다. 서툰 나를 자신있게 만나보자. 생각보다 두렵지 않고, 생각보다 뿌듯한 만남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