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다 보면 '감정'에 살이 찐다.
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다. 운동심리코치로 일을 하면서 매번 클래스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 다이어트 목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살핀다. 광고를 '다이어트' 키워드에 맞춰 올리면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비해 살이 많이 불었다는 고민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몸에 살이 붙어버린 걸까. 삶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 패턴이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알아차리게 되더라도 처음 만나는 운동심리 코치에게 여실히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단순히 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고, '먹고사는' 문제이며 '더불어 사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몸무게의 키로수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내가 입는 옷의 문제이기도 하고, 내가 먹는 음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다. 또 먹고 입는 삶 속에서 움직이는 움직임의 문제이며, 움직임이 영향을 미치는 세계에 관한 문제다.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두 어느 정도는 연결되어 있다. 그와 내가 연결되어 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고자 하는 방식대로 살지 못한다. 아니, 살고자 하는 삶에 다가갔다고 생각하면 또 새로운 과제가 삶 속에서 드러난다. 하나를 해낸 것 같으면 이내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고, 결핍되어 허덕였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도 결핍되어 있는 채로 살았지만 괜찮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것들을 감당할 만한 힘이 생겼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실은 결핍인 것을 알아차리고 감당할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은 것이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결핍은 삶에서 그리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알아차려진 결핍은 자기 연민을 불러온다.
"아. 이전에 이만큼 힘들게 살아왔구나."
"내가 이렇게 힘들었던 것은 000이 나에게 ~~~ 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야."
새롭게 발견된 결핍이 주는 자기 연민은 때로는 결핍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생각한 대상에 원망의 화살표를 겨눈다.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원망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이다. 가장 믿었던 사람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도 하고, 자꾸만 화를 내게 되기도 한다. 혹은 그저 참고 넘어가자고 생각하면서도 홀로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다.
그럴 때는 "내가 이만큼 힘들었구나"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해냈구나" 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한 결핍이 없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며,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결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하나의 결핍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내 결핍이 오직 그것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아마도 내가 발견한 결핍 외의 수많은 결핍들이 수면에 드러날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아차린 결핍이든,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결핍이든, 결핍이 있기에 해낸 것들도 있고, 결핍이 있었음에도 힘겹지만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 나가고 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면 마음은 자꾸만 움츠러든다. 자꾸 위축되기도 하고, 하고 싶은 걸 허용해주는 세상이 어딘지 살핀다. 그러나 어떤 그 무엇도 나를 제약하지 못하고, 누군가 허용해준다고 우리가 날개를 펴듯 멋지게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를 인정하는 건 나 자신이므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날개를 펼치는 것도 내 몫이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몸이 불어났다고 고백하는 내담자의 삶 속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지 못해 참아야 했던 나를 맛있는 음식으로라도 보답하고 싶었던 '감정적 허기'가 숨어 있다. 그저 '하면' 되는데, 과감하게 시도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마음이 내 행동을 방구석으로 잡아끌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어서 속을 든든하게 채우려고 한다. 먹으면서도 속은 어쩐지 채워지지 않는다. 허기의 근본에는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실행에 옮기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할 수 있을 만큼의 로드맵이 그려지지 않았다든지, 시간이나 경제적, 혹은 다른 환경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든지, 관계적 측면에서 반대를 심하게 겪고 있다든지... 욕구가 막혀있는 국면에서 여러 감정들이 함께 끓어오르고, 감정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만들고, 어느새 쓸 데 없는 생각으로 가득 찬 '감정비만' 상태가 된다.
성장하며 '하고 싶은 일'의 스케일과 범주는 점점 커진다. 삶에서 겪고 만나는 문제의 스펙트럼도 입체적이고 다양해진다. '원하는 것을 해내는' 데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데에도 더 난도 높은 기술과 자원이 필요하다. 이때 한 걸음 한 걸음, 원하는 나로 다가가는 계단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시간 동안 필요한 것들을 만들거나 모아두는, 티가 나지 않아도 꾸준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인내와 지구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감정은 살이 쪄버린다.
답답한가. 무언가 맛있는 거라도 먹어 이 답답함을 채우고 싶은가.
답답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답답함을 없애려고 전전긍긍하기보다, 감정에 찐 살을 덜어내 보자. 몸에 붙은 살을 덜어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감정은 순식간에 살찌고,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불어버린 살 속에 숨은 욕망들에 대해 들여다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씩 적어서 감정에 찐 살의 '맘 바디'를 찍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움직임 일기장'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오늘치의 움직임을 다시 기록해보기로 했다. 티가 나지 않아도 꾸준히. 오늘도 해야 할 일을 해주고 있는 내 몸에게 불필요한 체지방을 걷어내 주기는커녕 감정의 무게까지 지울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고맙다고 말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