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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Aug 05. 2021

몰라서 그랬어.

아무렴 알면 그랬을까. 다알 순없지만 관심은 가져주지 그랬어.

전문가로서 어떤 서비스를 의뢰받아 제공하고자 할 때 오히려 건강한 거리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상대는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 전문적 수준에서의 상담과 지지, 응원, 혹은 객관적 지식을 얻기를 바란다는 것을 안다. 


비즈니스 파트너와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협력을 위한 일 이야기라는 형태의 대화는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많이 경험한 대화들의 마음결이 오간다. 특히 양 측 간에 명확한 역할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 바람직하고 좋은 방향으로 협업하고 싶은데 원하는 형태의 협업이 구체화되지 못했을 때, 원하는 것이 뚜렷하게 정리되진 않았지만 서운한 감정은 뚜렷하기 때문에 감정을 받아 안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가 있더라.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에 우리는 얼마나 서툰지 모른다. 
 "나는 그때 이런 감정이 들었어요." 
 하는 표현은 어렵다. 왜 어려운고 하니 내 감정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표현까지... 아이고야. 눈을 감고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격이다. 감정을 알고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데, 내게 필요한 것을 부탁하는 것도 우리에겐 어렵다. 말 그대로 '싫은 소리'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뭔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 있는데,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감은 잘 오지 않고, 나는 잘한다고 잘했는데 자꾸 불편하다면 상대가 뭔가를 잘못짚은 것이 아닌가 싶고, 그래서 상대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의 근본적 원인을 나의 생각으로부터 찾고,

"당신이 이러이러하게 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 모든 생각의 근거가 내 생각에서 나온 거라, 상대를 이해하느라 한 생각이 결국 깊은 오해의 근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때 내 입장에서는 이런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을 당신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어디까지나 느낌이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문제가 감지되지 못했더라도, 우리 사이에 수시로 혹시 불편한 것이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상대를 내 생각에 맞추어 이해를 빙자한 오해를 하기보다, 둘 사이에 빠져 있는 무언가를 채워보자고 제안하는 것.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을 발견하고 공유하는 것. 어렵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공유를 위해 필요하다. 그에 대한 전제는 잘잘못을 따지자는 마음이 아닌, 상대와 내가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을 알고 믿을 뿐,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혹은 그 안에 어떤 아픔과 고달픔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게다가 서로 간 입장 차, 무디고 섬세한 온도차, 바라보는 시야 차이,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정보의 격차 등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한다. 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알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터놓고 얘기하면 되는데. 하는 마음은 복합적이고 복잡한 사람 간의 관계와 협력의 구조에 비해 너무나도 일차원적이다. 물론 터놓고 얘기하는 태도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몰라서 그랬어(그러니까 알려주지 그랬어)" 역시 너무나도 수동적이고 단편적인 답이다. 우리는 결국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더 관심이 필요하다. 수동적인 관심이 아닌, 서로 물어주고 확인하는 관심. 그렇다. 일이든 관계든,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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