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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May 25. 2021

improvisation,
매일을 같게 또 다르게 산다

요즘, 재즈에 진심.

 재즈를 배우고 있다. 뭐 어디가서 수업을 듣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팟캐스트를 듣고, 여기저기서 좋다고 소개하는 음원을 찾아 듣는다. 재즈에 관심이 생긴 이유는 하나다. 시간이 지나도 지겹지 않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전엔 가사가 있는 곡이 그렇게 와닿았는데, 온 몸으로 리듬을 느끼고 재즈 뮤지션의 케미와 교감하는 것에 흥미가 생겨서.  


 무언가를 좋아할 때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지는 않지만, 이런 품격과 취향을 갖고, 뭔가에 조예를 가진 나의 멋짐을 드러낼 때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그러니까 멋짐에 대한 부분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관종의 본능(?)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멋지다고 하진 않더라도, 그래도 몇몇에게나마 멋져보이고 싶다는 귀여운(?) 욕망. 그리고 그 몇몇 중 가장 큰 나의 아군은 역시 나다. 나는 내가 퍽 멋있다. 좋은 음악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귀도 멋있고, 섬세하게 다른 사람의 정서를 알아차리는 촉도 멋있다. 제법 강한 체력도, 조금 꾸미면 꽤나 봐줄만한 키와 얼굴도. 탄탄하고 건강한 몸매도. 이렇게 내가 나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불과 1년 남짓밖에는 되지 않았다. 작은 흔들림에도 휘청이고, 내가 뭘 잘못한 걸까를 거듭하던 시절이 있었다. 늘 "여기 있어도 되는지" 를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확인이 필요없다는 걸 어느순간 알아차리게 되고부터는 그냥 내가 나를 멋지다고, 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를 맞추는 것 조차 내 선택으로 하고, 대가 없이 해주는 것 역시 '그래야 하기 때문에' 가 아닌, '그러고 싶어서' 가 됐다. 


 요즘 발견하는 나는 꽤나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인데, 혼자를 잘 못견디는 시간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함께' 를 편안하게 생각하기 보다 '맞춰주고 있다' 고 의식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의존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아주 그런 것만도 아니더라. 맞춰주다 소진되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 조금 쉬기도 하고, 사색도 한다. 누구를 맞춰주다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빨리 피곤해진다. 그럴 땐 홀로 있는다. 홀로 있는 시간이 삶을 얼마나 윤기있게 만들어주는지 모른다. 숱한 '해야 할 일' 을 제쳐놓고 챙겨야 할 '나와 만나는 일'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을 줄 아는 것. 삶이 밀어부치는 수많은 압박에서 살짝 떨어져 "그러라지" 하고 잠깐 바람을 쐬고 오는 것이다. 


 삶은 어찌 보면 잠들고 깨어나 그 날의 할 일들을 하고, 만날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반복으로 이어진다. 매일 똑같은 날은 하루도 없지만, 그렇게 크게 다른 하루도 없다. 마치 재즈에서 말하는 한 텀의 코러스같다. 같은 멜로디라인이 반복되면서 악기가 뮤지션들의 그 날의 케미에 맞게 어우러지다, 두번째, 세 번째 코러스부터 각 뮤지션 나름의 해석이 가미된 improvisation(즉흥 연주)가 더해진다. 악기마다 돌아가며 솔로 코러스를 연주하기도 하고, 주거니 받거니 연주를 이어가기도 한다. 굵직한 멜로디라인의 큰 흐름 속에서 악기 별로 함께 혹은 따로 리듬을 주고받기도 하고, 멜로디를 주고 받기도 하고, 연주 실력을 뽐내거나 조화시키기도 하면서 협연이 이어진다. 한때 기분을 이기는 이성이 건강한 관계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이성에 입각한 규칙적인 무언가가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살아 숨쉬는 즉흥 연주들이 의미와 윤기를 더해 준다. 한 번 한번 연주할 때마다 미묘하지만 연주자들의 실력과 궁합도 는다. 연주의 내공도 는다. 기분에 못이겨 했다고 후회했던 것들은 어느새 내 삶에서 한 자락의 즉흥 연주 Take one 버전으로 남아 있다. 

 

 그래, 재즈라고 하면, 20XX년 버전으로 연주한 곡들이라고 치자. 삶의 큰 멜로디라인 속에, 오늘도 난 나만의 악기를 들고, jazzing 하는 중이다. 오늘의 코러스는 솔로 연주의 무드인가보다. 


https://youtu.be/wgXfou15I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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