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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Sep 28. 2021

어른 나와 어린 나

'나'만 지키려는 방어기제를 벗고'우리'를 감싸기

 남동생이 평생의 반려로 삼고 싶은 여자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추석 연휴 때도, 지금까지도 본가는 새로운 식구가 될지 모를 인연을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울렁이고 있다. 나는 한 이틀 정도는 헛헛했다. 새로운 인연과 가족관계를 덧대는 느낌은 분명 새롭고 설렌다. 반갑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한 그 어디쯤.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말도 많고, 동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고 싶기도 한. 가족이 늘어나는 일은 분명 두근두근한 일이다. 그런데 왜? 


 누나로서의 나는 동생에게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마음 한편에 어린 내가 불쑥 튀어 올라왔다. 홀로 지내고 있는 나는 왠지 묘하게 질투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남자 친구를 데려와 집에 소개하면 분명 저렇게 환대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가족의 사랑으로 감싸진 동생의 모습에(분명 나도 그 사랑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질투가 올라오는 것이다. '결혼. 그게 뭐라고.' 하며 결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같은 마음이 심통처럼 번지기도 하고. 


 동생과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주고받다가, 어른인 내가 놀라운 통찰을 전한다. (가끔 이럴 땐 나도 놀란다. 이렇게 현명한 생각이 내 안에 있었단 말이야?) 


"지금,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은, 단순히 식장과 사전 촬영, 그 외 이것저것을 정하는 게 아니라, 살면서 숱하게 만날 이런저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예행연습이야. 지금 당장 어떤 결정이 현명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단, 이 결정을 해서 결국은 둘 사이에 신뢰가 쌓이는 결정인지를 잊지 말아야 해. 조금씩 예민해졌다 싶을 때, 양가의 대표로서 서로의 입장을 얘기하기보단 너희 둘이 '우리'가 되는 입장을, 당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보단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싫은 것을 회피하기보단 중요한 것들이 지켜지는지(여기서 중요한 건 너의 둘의 신뢰겠지)를 생각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면 결혼 준비로 둘의 신뢰가 두터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야." 


 동생은 황급히 전화를 끊고 지금의 내용을 적어두어야겠다고 했다(뛰어난 누나가 이렇게 정리해두고 있다 동생아 ㅎㅎㅎ). 그런데 문득, 전화를 끊고 보니 내게도 현타가 오는 거다. 어른인 내가 동생과 나 사이의 '우리'를 지키는 역할을 잘 마무리하고 나서, 마음속 '어린 나'가 불쑥 튀어나와 말을 건다. 


"동생은 좋겠다. 이렇게 터놓고 조언을 구할 누나가 있어서. 나는 동생보다 강하고 굳건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외롭고 연약한데. 저렇게 뭐가 맞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난, 제대로 물어볼 사람도, 나처럼 현명한(좀 말을 잘해야지 내가 ㅎㅎㅎ) 답을 줄 사람도 없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든든한 역할을 하고 난 다음엔 더 외로워.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역할을 해 줬던 것만큼, 나에게도 그런 든든한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어린 내 하소연을 듣다 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어리고, 샘과 심통이 많은 나를 마음속 깊은 곳에 숨기고, 현명한 척, 괜찮은 척, 지혜로운 척을 하며 사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한껏 심통을 부리다가, 문득,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조언을 구하기 전에, 스스로 현명한 생각을 해낼 줄 아는 나를 데리고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외롭다고, 꼭 나 같은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중에 거울을 보면, 내가 내 곁에 있다. 내가 나를 챙기는 법을 잘 모를 땐 하염없이 외로웠지만, 이젠 일어서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차곡차곡하면 된다. 잘 모를 땐 배워서, 너무 막막할 땐 잘게 쪼개서 하나씩 하나씩 해낼 수 있는 나다. 또 해내지 못하면 어떤가. 해냄도 해내지 못함도 그때의 나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지, 어떤 행위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과정임을 안다. 


 외롭다고 심통 부리는 내가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 외로움을 귀엽게 볼 수 있는 내성이 생겨났구나 싶어 한번 더 웃었다. 외로움을 한편에 두고, 이 녀석의 하소연을 충분히 들었으니 이제 든든하게 밥도 먹고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이다. 일하러 가자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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