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라 무엇을 밝혔나

노블레스 오블리제

by 보물상자

나를 살라 무엇을 밝혔나


가냘픈 초는

자신을 불살라 어둠을 밝혀내고

흔해진 소금은

자신을 녹여 맛난 맛을 내는구나


우쭐대는 나는

나를 살라 세상 무엇을 밝혔고

귀하다는 나는

나를 녹여 무엇을 살맛 나게 했는가


사람들이여

귀하다는 그대들이여

천하보다 귀하다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살라 세상 밝히고 있는가




희생이란 단어는 아름답고 가치 있지만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희생의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아셨을까요?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희생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자신의 귀하디 귀한 독자(獨子)를 아낌없이 희생하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희생은 희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결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킨 대신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번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번성의 씨앗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희생정신이었습니다. 초기 로마사회에서 출발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왕과 귀족 그리고 사회 지도층들이 솔선수범하여 보여주었던 희생정신입니다. 그들은 전쟁 참여, 공공봉사, 기부 등의 희생적 활동들에 대한 모범을 보였고, 희생정신은 모범과 의무를 넘어 그들의 빛나는 명예로까지 여기게 되었습니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귀족의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솔선수범적 희생 덕분에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군림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희생하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니까 겁부터 먹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일 테니까요. 하지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의미하는 것이지 실제로 죽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완전히 죽으면 거기서 어떻게 싹이 나오겠습니까?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만 갔다가 살아나서 엄청난 결실을 맺는 것이죠. 처음에는 손해인 것 같지만 시간 지나면 큰 수확으로 돌아옵니다. 그것이 희생의 원리요 매력입니다.


거울은 먼저 웃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 웃어야 거울이 웃는 것처럼 내가 먼저 행하는 희생은 희생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출발점이 됩니다.




다음 편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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