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누에가 성장을 해서 고치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고치안에서 외로움을 견뎌내고 누에는 번데기가 되고 하얀 고치는 옷감을 사용을 한다.
누에는 고치안에서 고립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홀로 외로움을 견뎌낸다.
고치란 동물의 알, 유충, 번데기 또는 활동정지단계의 동물을 싸서 보호하는 덮개.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의 유충이 번데기로 변할 때 자신의 분비물로 만든 껍데기 모양 또는 자루 모양의 집으로서, 이것은 외적(外敵) 및 외부로부터 번데기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모양과 구조가 다양한데, 실샘에서 낸 실로 만들거나, 특유한 분비물로 만든다.
출처 : 위키백과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장기화가 되면서 우리는 모두 디지털 고치가 되어가고 있다. 직장인은 재택근무를 하며 집의 고치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곳에서 디지털로 세상과 소통을 하며 살고 있다.
학생들은 원격 수업으로 방안에서 디지털 고치가 되어 격리된 생활을 해온다.정말로 코로나가 확진이 되면 세상과 격리가 되어 디지털 고치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고치 속에 살면서 아무리 세상과 SNS, 게임을 하며 살지만 외로움은 극복이 되지를 않는다.
그리고 외로움은 바이러스처럼 전염이 된다. 우리가 외로울수록 타인을 밀어내는 경향이 더 강해져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한다. 외로워지면 남들도 우리를 밀어낸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 외로움이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외로움을 더욱 갖게 해준 것은 스마트폰과 SNS, 넷플릭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냥 혼자 즐길 거리가 많아 즐기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허무하고 더 깊은 외로움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개인의 정체성이 우리가 아닌 나로 설정을 한다. 스마트폰은 우리가 아닌 나의 세계를 열었다. 디지털 고치안에 있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더 외로운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이 더욱 외로움의 아픔을 겪게 된다. 요즘에는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렌트에프렌드 앱' 으로 친구도 돈으로 사서 하루 동안 같이 만남을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하루 수수료를 지불할 때 내가 뭐 하는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돈으로 주고 사는 만남도 결코 외로움의 근본적인 해소책이 아니다.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듯이 이 우정을 주문한다는 사실에 만남 이후에는 더욱 착착함이 몰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 디지털 고치안에서 나와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소규모 모임이라도 밥을 먹는 모임을 꼭 가져야한다. 군데군데 있는 밥 약속은 행복의 징검다리이다. 만나서 그냥 수다만 떨어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힘든 일을 하면서 아 내가 내일 그 사람과 막곱창을 먹기로 했지라고 기대하면서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한 만남의 징검다리를 놓아야 외로움에서 벗어나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 왕창 큰 대박같은 만남이 아니라 사소한 만남을 여러개 두어서 작은 행복이 여러번 발생할 때 행복 지수는 더 올라간다.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독서 모임이든지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줌으로라도 만남은 계속 가져가야한다.
엘리베이터 안의 이웃에게 따뜻한 눈 웃음을 주고, 경비 아저씨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만 건네더라도 외로움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마음속에 스스로 따뜻함이 생기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이 되면 소규모 만남 등은 계속 가지는 것이 삶의 조그마한 행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