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편지 #013]_마스크속을 상상한 내 눈은 개눈

by 박동기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를 한다. 예배 후에 다락방 모임에서 교회 선생님들 모임을 2달 동안 마스크를 쓴 채 만났다. 마스크 위의 눈만 보고 2달을 만났다. 카톡 프로필에는 꽃만 있고 아이들 사진만 있어서 실제 얼굴을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눈 밑에 마스크를 쓴 얼굴 부분은 내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그렸다. 내 머릿속의 AI 가 그동안의 학습 데이터를 통해서 저분은 저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내 경험상으로 대부분 마스크를 쓴 얼굴이 훨씬 더 좋은 경우가 많았다. 그냥 계속 마스크를 썼으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랑의 얼굴 형태며 이목구비가 조화롭게 생긴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드물다. 마스를 벗었을 때 전혀 딴 사람이거나 실망감이 더 큰 경우가 많다.



4인 이상 집합 금지로 인해서 식사 모임을 갖지를 못했다. 드디어 지난주 예배 후에 식사 모임을 가졌다. 7분 중에 4명이 참석을 했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자 역사적인 순간이다. 분명히 내가 상상한 얼굴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세 분다 전혀 다른 분이 앉아 계신 것이다. 내 눈은 개 눈이다. 마스크 가려진 부분이 전혀 다른 세 분이 앉아 계신다. 한 여성분은 학교 교사이고 아이들이 20대 중반이니 중년의 여성으로 상상했다. 배우 '김미숙'을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0대로 보였고 아주 아름다운 분이셨다. 20대 중반의 자녀를 둔 분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의술의 힘을 빌렸는지 그건 내가 잘 모르겠다.

나이 든 권사님도 내가 그렸던 분과 다른 분이 앉아 계신다. 나이 든 남자 선생님도 인자하신 이미지로 생각을 했는데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분이시다. 그분들께 세분은 마스크를 껴서 손해를 본다고 말씀을 드렸다.




마스크를 쓴 뒤로 사람의 얼굴을 살피는 현상이 많이 줄었다. 외모의 평준화가 이뤄 저서 외모 지상주의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시절이다. 마스크를 쓰고 모임들을 하다 보니 다음에 만나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아질 것 같다. 저 사람이 내가 만났던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얼굴을 살피지 못하다 보니 사람의 마음도 살피기가 어려운 시절인 것 같다.



이런 시기에 내면의 얼굴을 좀 더 가다듬었으면 좋겠다. 내면의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은 글쓰기가 좋은 것 같다.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블로글의 비밀글에 그 녀석에 대한 욕을 글로 퍼붓고 화를 쏟아냈다. 신기하게도 화가 풀린다. 그 블로그를 다시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글쓰기는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시간이다.



글쓰기는 더 공부를 해야 하고 더욱 선명해야 하는 것 같다. 내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활자로 토해내면서 더욱 성숙해진다. 마스크 너머로 누군가를 알기가 더 어려워진 시절이 되었다. 오미크론도 정점을 찍으면서 이제 코로나 팬데믹 시대도 끝물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내면의 얼굴을 연예인처럼 만들어 보면 좋겠다. 지금이 내면의 얼굴을 성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생방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