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에게서 배운다' 책을 읽었다. 우종영 나무 의사의 잔잔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옆집 인상 좋은 아저씨가 나무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며칠 전까지 경북 울진과 강원도에 산불이 거의 한 달 동안 났었다. 숲의 몇백 년 된 나무들이 다 타서 죽어갔다. 작가는 경북 울진 산불의 불씨가 일부 금강송(金剛松) 군락지로 번져 보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모든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진화로 금강송 군락지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송이는 양양송이가 최고이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서도 많이 생산이 된다. 송이는 소나무 곁에서만 산다. 이번 산불로 전국 생산량의 40%를 점하는 울진과 영덕의 송이버섯 주산지 삼림은 이미 큰 피해를 보았다.
송이 포자(胞子·식물의 생식세포) 생성이 어려워 최소 30년간 회복기를 거쳐야 한다는 소식이다. 송이 서식지는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울진군 송이 채취 농가 1000여 곳의 시름이 깊어지게 생겼다. 갑자기 살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숲과 나무는 이렇게 우리에게 이로운 것들을 많이 가져다준다. 누군가던지 담배꽁초 하나가 숲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금강송과 송이는 ‘지음(知音) 고사’의 백아와 종자기 사이라고나 할까,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소나무에서 자라는 송이의 생장 환경을 볼 때 금강송에서 난 송이버섯을 최고로 치는 것이다. 양양송이를 먹어본 적이 있다. 폐가 안 좋아서 먹었는데 송이버섯을 먹었을 때 바로 폐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 송이버섯은 폐 건강에 정말 좋다. 갓 딴 송이에서 난 소나무의 진한 향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송이버섯은 지금도 비싼데 송이버섯밭이 불에 타버렸으니 앞으로 송이버섯 구경하기는 힘들 것 같다. 숲은 우리에게 이런 건강을 위한 것들을 생산해내준다.
금강송이란 금강산에서 경북 영덕에 걸쳐 자라는 고품질 소나무 품종을 말한다. 껍질이 붉어서 적송(赤松), 나무 속이 누렇다고 해서 황장목(黃腸木)으로도 불리며, 안면송(충남 태안이 서식지)과 비슷하다. 안면도에 가서 안면송을 본적이 있다. 붉은 기운이 있는 소나무가 명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행정구역마저 울진군 금강송면으로 이름 지어진 총 212㎢ 일대에 수령 100~200년의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생한다. 예부터 궁궐 건축 목재로 썼고, 2008년 숭례문 화재 복원에도 사용됐다. 숙종 5년(1680년) 봉산(封山·벌채 금지한 산) 정책이 시행돼 342년째 나라에서 보호하고 있다. 이번 산불에서 지켜져서 다행이다.
송이버섯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의 《증보 산림경제》에서 ‘채중선품(采中仙品)’으로 꼽혔다. 당시엔 세금 대신 바치기도 했다. 강원 양양·인제·삼척·고성, 경북 울진·봉화가 주산지다.
이번 산불로 당분간 자연산 송이 향을 맡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먹자마자 이빨이 시원한 것 깨닫겠네’라고 한 삿갓 시인 김시습의 풍류도 상상으로 만족해야 할지 모른다. 대북 제재 때문에 어려운 일이지만, 이럴 때 북한산 송이를 많이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 김대중 정부 땐 북의 김정일이 선물로 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기야 송이 선물 안 해도 좋으니 미사일이나 쏘지 않았으면 하는 게 국민 바람이다.
숲은 송이버섯 같은 귀한 것뿐 아니라 인간에게 정신적으로도 유익한 것들을 많이 준다. 요즘은 매일 퇴근 후에 숲에 간다. 숲의 소나무들을 쓰다 듬어 보기도 하고 추운 겨울 잘 이겨낸 나무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숲에 들어가면 세상의 일들은 모두 잊게 된다. 나무가 위로를 해주고 나무가 치유를 해준다. 숲에 들어가면 정신이 맑아진다.
우종영 작가의 말처럼 나무를 심는 것보다도 이제는 살아있는 나무를 얼마나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가로수로 많이 사용되는 버즘나무들이 매연에 시달리고 하수구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살아간다. 시야를 가린다고 자랄만하면 가지치기를 해버린다. 버즘나무의 삶도 참 기구하지만 그래도 도심 속에서 사계절의 아름다운 줄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살아있는 나무들이 아프지 않도록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 개발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 숲의 나무들이 같이 살수 있는 공존하는 지혜를 찾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반포 아파트와 메타 콰이어 나무가 공존하는 것처럼 도시 속에서는 공존의 지혜를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