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강남에서 50명 정도 모이는 안드로이드 개발자 모임에 갔었습니다. 대부분 20대, 30대의 젊은 개발자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는 강의 내용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개발자들의 생각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개발자가 몇 명이 참석을 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셀 필요도 없었습니다. 50명 중에 2명이 참석을 했습니다. 우리 회사만 보더라도 여자 개발자는 없고 모두 남성들만 있습니다. 군대의 행정반을 연상케 하여 군 복무를 하고 있지 않은지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도 여자 개발자가 많지는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를 포함해서 많은 기업들이 개발자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렇게 개발자가 부족하게 된 이유는 열악한 개발 환경에 따른 뛰어난 개발자들의 이탈과 저급 개발자 양산 등 여러 환경, 문화적인 문제가 있지만 여자 개발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주요한 이유라고 봅니다.
여자 개발자에 대하여 여러 가지 편견이 있습니다. 여자 개발자는 실력이 없습니다,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감정적입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등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은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 많고, 그동안의 개발 환경이 야근 강요, 코딩 중심, 무모한 프로젝트와 같은 성격을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전투력 강한 개발자를 선호하다 보니 이런 편견이 생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여자 개발자들이 공유, 협업 문화에 좀 더 잘 적응하고 아키텍트로도 더 뛰어난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일을 하는데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도 있습니다. 남자, 여자 누가 더 개발자로서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특성이 있으므로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협업을 하고 그 다양성을 기반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야 탄생할 수 있습니다. 외로운 섬처럼 혼자 일하는 개발자는 연구용은 만들지는 몰라도 상용화하는 프로그램은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협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거대한 프로그램은 만들지 못합니다.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프로그램밖에 만들지 못합니다. 소프트웨어는 협업이 중요합니다.
현재 소프트웨어 업계에 여자 개발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누구라도 일하기 힘든 환경이 큰 요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남자들이 더 잘 버티기 때문에 더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개발자를 만나서 야근을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거의 야근을 안 한다고 합니다. 개발 문화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에 안도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기형적인 개발자 성비를 개선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업계에는 꼭 필요한 과제이고 이를 위해서는 누구라도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여자 개발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야 합니다. 여자 개발자와 일을 할 때에는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환경은 좋은 관계에서 나옵니다. 친절하고 품격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회사들에서 크든 작든 여자 개발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합니다. 비공식적이지만 급여의 차이도 존재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승진의 기회도 다릅니다. 이런 이유는 여자 개발자는 결혼하거나 출산을 하면 결국 그만둘 것이라는 선입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여자 임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보면 이런 현상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특성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차이가 있고 그러하기 때문에 서로 보완이 됩니다.
우선 남자 개발자들은 도전정신이 강하고 무모한 자신감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에 거부감이 좀 더 적고, 상대적으로 체력이 뛰어나서 야근에도 잘 버팁니다. 남자 개발자가 좀 더 코딩을 잘한다는 의견은 입사 이전에 또는 어렸을 때부터 코딩을 경험할 기회가 좀 더 남자에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여자 개발자가 코딩을 꼼꼼하게 잘하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남자들보다 훨씬 더 생산성 있게 일을 해내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이러한 남자들의 특성이 현재의 열악한 개발 환경에 좀 더 통할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리한 일정에 잦은 야근, 협업은 없고 혼자서 달리는 코딩이 현재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발 환경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많이 바뀌고 있지만 부어라 마셔라 회식 문화도 상대적으로 남자들에게 더 적합합니다. 담배 피우는 장소가 최신 정보가 모이는 곳이고 남자들끼리 정서적인 유대를 갖는 곳이기에 여자 개발자는 소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반면 여자 개발자들은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에 더 유리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도우려는 특성도 있습니다.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평균적으로 좀 더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남자들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결국 야근을 하게 됩니다. 코드 리뷰를 할 때에도 자기만의 에고가 강해서 서로 충동할 때 밑에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자들이 자기의 코드에 대해서 자존심도 강한 편이라 잘 내려놓지 못하고 고집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초기에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을 구분해서 적절한 도움을 받는데 익숙합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자존심의 상처를 덜 받습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 중 협업의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혼자서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지 않고 적절할 때 서로 묻고 의논하고 도와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상대적으로 여자 개발자에게 더 많이 보입니다. 이런 특성에 기인해서 여자 개발자 중에서 아키텍트로서의 능력이 더 뛰어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설령 뛰어난 아키텍트 재능을 가진 개발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은 개발 환경에서는 눈에도 잘 안 띠고 실력을 발휘하기도 어렵습니다. 여자 개발자들에게는 출산과 육아의 장애물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출산과 육아는 개발 경력의 큰 단절이고 2,3년만 단절되면 현업 복귀가 쉽지 않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실력적으로는 현업 복귀가 가능해도 기업에서 꺼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나마 요즘 재택근무가 어느 정도 정착화가 되어 근무할 수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현재와 같이 여자 개발자들이 꾸준히 일하기 어려운 환경은 여자들에게만 불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개발자에게 불리하며 이런 특성 때문에 개발이 3D 업무라고 불립니다.
경쟁보다는 협업을 하고 혼자 달리기보다는 공유, 토론, 의논을 적절히 하는 환경, 무모한 일정에 따른 품질 저하와 그에 따른 야근의 악순환보다는 합리적인 프로젝트, 재택근무를 해도 개발에 전혀 지장이 없는 프로세스, 시스템 그리고 문화, 이런 환경과 문화가 여자 개발자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지금같이 여자 개발자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계속된다면 소프트웨어 업계 전체가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
개발자 세미나에서 절반 이상이 여자 개발자가 참석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