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버스 강의에 나이가 드신 많은 분들이 참석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머리가 희끗하고 천국 가실 날이 며칠 남지 않으신 분들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강의를 듣는 것을 보고 짠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제대로 맞게 흘러가는 것인가라는 의구심도 들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노력을 하는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 장을 전송하지 못하는 노년층은 심각한 '디지털 래그(Digital Lag)'를 겪고 있습니다. 디지털 래그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에 뒤처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티켓 예매부터 은행 결제까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시대에 고령층의 디지털 소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남녀노소 이용하는 열차 예매 시스템에서도 디지털 래그가 생기면서 미리 표를 구한 젊은이들은 좌석으로,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입석으로 가는 진풍경이 연출이 되고 있습니다.
노년층은 디지털 격차가 매년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2020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노인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8.6%로 저소득층(95.1%)과 장애인(81.3%), 농어민( 77.3%)보다 낮았습니다.
세대 간 디지털 격차도 심합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16~25세의 디지털 문제 해결 능숙도는 60% 이상인 반면, 55~65세의 경우 5% 이하였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화된 비대면 거래는 노년층을 빠르게 사회 구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햄버거를 시키러 가게에 들렀더니 주문을 받는 점원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나요’라고 불렀더니 홀로 주방 안에 계신 분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봅니다. 알고 보니 출입문 앞에 있는 키오스크(Kiosk)로 주문을 하는 것입니다. 무척 당황했습니다. 처음 사용할 때의 낯섦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키오스크(Kiosk) 주문이 일반화됐고, 은행 점포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코로나 백신 접종을 비롯한 각종 정책 정보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제공됩니다.
디지털 격차는 세대 및 계층 간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정보 격차는 사회 계층을 단절을 야기하고 특정 계층의 극단화를 가속화합니다. 이는 단순히 소외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안정성을 해치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는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해력이 낮은 노년층은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에 더욱 취약합니다.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고 스스로 바라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 때문입니다. 횡행하는 허위 정보는 노년층을 외딴섬에 갇힌 '이해할 수 없는'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은 생존과 직결된 필수사항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격차가 만드는 불평등은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노년층이 스마트폰 일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교육 사업을 확대하고 정보 공유, 소통과 참여 등이 가능한 디지털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적 계급에 관계없이 전방위적으로 덮쳐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이러스에도 차별이 있었습니다.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가리진 않지만, 바이러스를 만나는 시간과 공간이 사람마다 차별적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더 가까이 노출되고 치료가 늦어지기도 합니다. 바이러스가 의도하지 않아도 재난 속에서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은 차별적입니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40평대 아파트에서 자가 격리한 사람과 고시원에서 잘 먹지 못하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며 격리한 사람은 치료의 속도가 다릅니다.
흑사병으로 인구의 유럽 인구의 1/3이 죽었을 때 부동산 양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남자보다 여자의 사망률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전엔 물론 남성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서아프리카 사람들 수천 명이 죽어 나갈 때도 세계는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인 2명이 감염되고 나서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재난으로 선포됐었습니다.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사회적 비용이라, 약자의 소리는 확장되지 않습니다. 같은 바이러스에도 어디서 발병하느냐에 따라 대처하는 것에 차별이 있습니다.
코로나로 경제와 건강 불평등이 더 깊어지는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이 위험에 더 자주 노출이 되었습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옵니다. 낮게 날지 못하도록 그물을 쳐도 비는 내립니다.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 택배 노동자가 사고 위험에 몰립니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식당 출입이 안 되었습니다. 나이 많고 기저 질환이 있는 노인이 죽음에 내몰립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기저 질환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청도 대남병원의 환자 중 103명 중의 101명이 감염됐었습니다. 98%입니다. 장기 입원 환자가 대부분이고 의료 급여를 받는 빈곤층이 84명이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자식들은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항상 마음속에 부담감을 갖고 살았을 것입니다. 정신병원, 요양병원으로 코호트가 발동됐던 그곳은 외출 기록은 아예 없고 면회 기록도 드물어서, 타인에게 전염을 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이 슬픈 아이러니였습니다.
우리에겐 안전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미 고립된 사회적 약자들에겐 큰 위협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지금 장애인에게 시급한 건 ‘사회적 거리 좁히기’입니다. 그분들은 일상에서도 시민 범주에서 배제되고 고립된 채 있습니다. 이미 격리된 분들입니다. 코로나는 위생이 중요한 데 혼자서 잘 씻지도 먹지도 못해서 생존을 위협받았습니다. 듣고 나면 당연해도, 그들을 돌보기 실천은 어렵습니다. 공동체가 어떤 가치와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이 와중에도 ‘부자들은 럭셔리 마스크, 개별 응급실, 제트기 서비스로 바이러스에 다르게 대처했습니다. 돈이 들어가면 예뻐지고 안전해지고 편리해져요. 빈부에 따라 위험성을 조절할 힘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차별받는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고민하고 자산 불평등 문제를 제기를 해야 합니다. 제일 심각한 것은 양극화 심화 문제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고용 충격이 저소득층과 같은 취약계층에 더욱 가중되는 상황을 뜻하는 ‘코로나 디바이드(Corona Divide는 코로나19 사태로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상)’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극심한 양극화 문제를 대두시켰습니다.
볕이 강할수록 그늘도 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뒤안길엔 극심한 불평등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칠레의 경우 불평등이 심합니다. 상위 1%가 국가 부의 25%를 차지했습니다. 사회안전망이 돼야 할 교육·의료·연금에도 극단적 시장논리가 적용됐습니다. 소득에 따라 거주 지역과 교육 성취도가 완벽히 분리됐고 상류층과 하류층이 이용하는 공원마저 달라졌습니다. 산티아고는 이제 극심한 불평등의 상징이었습니다. 지하철 요금을 고작 30페소(50원) 올렸을 뿐인데도 2019년 전국적인 반정부 폭력 사태가 불거진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한국도 칠레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를 해야 합니다. 한국은 칠레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고발하듯 불평등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부의 사다리를 바로 세워 누구든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강남의 도곡동에 가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맞지만 지방의 소도시와는 격차가 너무 벌어져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시장을 무시하는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주택 가격을이 2배 이상 올랐습니다. 이에 놀란 국민들이 과도한 부채를 안고서라도 집을 샀습니다. 집 사는데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한다는 소위 '영끌'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주식시장이 급등하면서 빚을 내어 주식을 투자하는 '빚투'가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달 갚아야 하는 주택 담보대출 원리금은 은행이 자기가 산 집의 실제 주인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빚 늪에 빠진 사람들은 빚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도록 일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일개미' 신세가 되었습니다. 전에 알던 30대 직원은 모두가 집을 사니 아파트 살 여력은 안 되어 경기 외곽에 빌라를 샀습니다. 그 먼 곳에서 어떻게 출근을 하고 대출 이자에 허덕이며 젊은 꿈이 억눌릴 것이 걱정이 됩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우리 경제에는 여러 가지 내외부적 충격요인을 맡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과도하게 풀린 통화를 환수하려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국제적인 공급망에 충격을 주면서 무역갈등이 심해지고 있고 인공지능 등 4차 산업이 가시화되면서 산업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적응을 못하는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일자리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어 '소득 감소, 부채 상환능력 하락, 대출 부실화, 자산 가격의 버블 붕괴, 경제 시스템의 붕괴'라는 경제 위기 사이클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1929년 10월 미국 증시의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과도한 빚을 내어 증권 투기와 과소비에 열중하다가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파산하면서 당시 전 국민의 3분의 1이 실업자가 되었고 전 국민의 상위 20%가 미국 국부의 90%를 장악하는 양극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우리가 비교적 최근에 겪은 1997년 IMF 경제 위기, 2003년 신용카드 사태 그리고 2008년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세계 금융위기 역시 과다한 부채를 방치하다가 사회 양극화를 초래한 재앙입니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 및 청년층 등 상대적인 약자들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으면서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책당국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결과 전 세계적으로 자산 가격의 거품을 유발하고 계층 간의 자산 불평등과 양극화만 초래하고 있습니다. 포퓰리즘 재정지출로 이를 막아보려고 하지만 비가 그치면 농사를 못 짓는 천수답을 만드는 꼴이어서 재원만 낭비할 뿐입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입니다.
돈이 모든 일상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사회적 현실입니다. 가장이 일할 수 없게 되면 일가족이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빈약한 복지 기반과 저축으로 구매할 수 있는 범위를 훌쩍 넘긴 집값, 기업의 권력에 쉽게 유린되는 노동자의 생계까지. 지금의 한국은 노동 소득만으로 일생을 꾸려가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비리로 부당한 기회를 얻는 특권층의 모습을 매일같이 목격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혼자의 노력으로 이 아수라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일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범한 급여를 받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평균의 개인들이 삶의 주도권을 되찾도록 하는 일입니다. 더 이상 자유가 특권이 되지 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삶을 속박으로 느끼지 않도록 말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10년은 앞당겼다고 합니다. 1인 사회로의 분화는 더 빨라지고 가족은 해체되어 이제는 효도 시스템이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장수 사회가 되면서 사회 변화는 모든 연령층을 포괄하고 연령대별 차이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빈곤 불평등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개발자도 이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하는데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