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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Jun 28. 2022

빗속을 걷다.

퇴근 후 숲 산책을 나왔다. 비가 계속 와서 못 오다가 정말 오랜만에 숲 속으로 들어왔다.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거추장스러워서 그냥 접었다. 비를 그냥 맞기로 했다. 비가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온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좋다. 습도가 너무나도 많은 날씨가 좋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어폰을 빼 버렸다. 오직 자연의 소리, 나무의 호흡, 바람 소리, 흙이 숨 쉬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말로 숲의 잔잔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진흙탕처럼 흐트러진 내 마음이 천천히 침잠되어 가고 오직 숲만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있었던 일들이 간헐적으로 떠오르지만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한다. 이것도 훈련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오직 자연과 대화를 하고 자연 소리와 공기와 호흡한다.



정상에 가까워져 오니 내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폐에 좋은 공기를 넣어준다. 습도가 높은 공기를 넣는데 폐가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이런 숲 소나무 향기 나는 공기를 먹이로 주어야 폐도 좋아할 것이다.



정상에 가까워져 올수록 허벅지 근육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강해져서 그냥 언덕도 평지 걷는 수준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졌다. 허벅지가 계속 두꺼워지는 것이 소망이다. 두꺼워서 청바지가 안 들어가거나 꽉 끼는 매력적인 몸을 갖기를 소망해 본다. 그러려면 정상을 계속 올라야 한다. 허벅지가 갈수록 두꺼워지는 역사를 만들어보자.



숲 밖 사회는 온통 안 좋은 소식들로 가득 찬다. 이러다가 큰일 나지 않을까 두려움도 엄습해온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경제가 초토화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코로나도 확진자가 확연히 줄었지만 아직 약이 나오지 않았기에 잠시 눌러놓은 것뿐이다. 용암이 분출이 되는 것을 잠시 눌러놓은 것처럼 임시적일 뿐이다. 치료제가 빨리 나와야 완전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숲 밖 소식들은 우울해도 숲에 들어온 1시간 동안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다.



하늘은 잔뜩 흐리다. 오늘 저녁에도 많은 비를 쏟아낼 기세다. 빗소리 듣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는데 비가 와도 좋고 안 와도 좋다. 오늘은 출근할 때 오랜만에 야채 간식을 싸가 보았다. 몸을 생각할 때라서 파프리카와 방울토마토를 간식으로 먹으니 비타민C를 먹는 것보다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 사는 것은 어디 통증 없이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통증이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아프지 않고 미리 배우고 싶다.



정상에 오르니 하늘이 훤히 보인다. 요동치는 허벅지를 위로하는 듯한 평안함이 몰려온다. 비가 와서 내려가는 길이 미끄럽기는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더욱 마음이 편안하다. 숲 산책은 나를 객관화하는 시간이다. 오늘 나를 생각해 보고 저녁 나를 생각해 본다. 저녁에 어떤 일들을 해야 열매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 TV는 보지 말자. TV 보는 것은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다.



오늘을 잘 살았는지 모르지만 산책 후에 간단한 소감을 적어보았다. 오늘 저녁도 좋은 열매가 맺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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