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근처에 있는 인제에 있는 아침가리 계곡에 형들, 동기, 후배들이 온다고 합니다. 1990년도에 오대산에서 설악산으로 넘어오던 중간에 있는 진동 2리에 1차 집결장소로 향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11시까지 폭우가 쏟아져 내일 계속 트래킹을 잘 될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조지 맬러리 명언 '산이 있어 그곳에 간다'가 아니라 나는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갑니다. 혼자 그곳을 가려면 등골 오싹해서 가지 못하고 외롭고 쓸쓸합니다. 그곳이 아무리 절경, 비경을 지닌 산일 지라도 산악부 사람이 없으면 가지 않습니다. 저는 산을 보러 가지 않고 산악부 사람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진동 2리 마을회관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제법 있고 낯익은 우리 멤버들 얼굴이 보입니다. 수호 가이드 안내로 정상까지 오른 후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전날 폭우가 쏟아져 빗물은 계곡을 거쳐 강물이 되어 흘러갑니다. 수호 말로는 물 수량이 많아 계곡 트래킹 하기에는 최적이라 합니다. 날씨는 흐렸지만 춥지 않아 계곡 트래킹 하기에는 좋은 날씨입니다. 산은 늦여름 비를 맞아 초록으로 짙어졌고 나무는 가을 열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라색 야생화를 보고 미소 짓습니다. 계속 소리와 맑은 물, 계곡 안의 매끄러운 돌들을 보니 힐링이 됩니다. 배낭이 가볍다 보니 땅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끔 눈을 들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계속 사이로 물은 흐르고 골짜기 사이에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경치 참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관리하는 아저씨가 두 가지를 신신당부합니다. 절대로 삼겹살을 구워 먹지 말것과 깊은 곳에서 다이빙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건 사고가 많으니 119 구급 대원을 피곤치 말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내려간 지 1시간 정도 후에 바로 경치 좋은 냇가에 자리를 폈습니다. 가져온 음식들을 십시일반 합치다 보니 만찬이 차려졌습니다. 그중 단연 인기는 술입니다. 시중에 나온 모든 종류의 술은 모두 집합시켰습니다. 플라스틱 팩에 있는 소주는 생수 마시듯이 벌컥벌컥 마십니다. 모두 행복해 보입니다. 저는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최후 상황을 대비해서 숨겨놓은 귀한 보물 같은 술은 쉽게 꺼내놓지 않습니다. 도박에서 마지막 패를 던져 놓듯이 산행 막판에 꺼내놓습니다. 술이 많을 때 꺼내 놓으면 아무리 좋은 술도 대접 못 받습니다. 고기를 한 입 드시더니 성일 형을 극찬하기 시작합니다. 나도 한 조각 먹었는데 최근 10년간 먹은 고기 중에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물소리, 공기, 사람, 나무, 알코올에 고기가 하모니를 이룬 맛이었습니다.
쉬는 장소에서 물에 다 빠집니다. 요헌이 형은 웃통을 벗습니다. 몸매 자랑이 아니라 배낭을 젖지 않기 위한 것임을 모르는 이들은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아저씨와 총각 차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저씨는 아무 데서나 웃통을 벗지만 총각은 결정적인 순간에 웃통을 벗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계속을 건너기를 반복하며 옷은 젖어가고 가슴까지 물이 적셔옵니다. 같이 건너는 치경이 형은 무릎만 적셨는데 나와 영권이 형은 가슴 가지 물이 적셔옵니다. 키의 다름을 계곡을 건너며 느낍니다.
산행은 힘들지 않았는데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허기가 찾아옵니다. 아마 물속에 저만 빼고 모두 머리까지 적셨을 것입니다. 나는 중2 때 물에 빠져 죽을뻔한 트라우마 때문에 수영을 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계곡 물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니 끝없이 몸이 흘러갑니다. 수영에도 품격이 있나 봅니다. 유동이 형도 수영을 잘하는 것 같은데 경주 촌놈 개헤엄이라고들 합니다. 유동형이 강남 청담동 출신이면 역시 수영은 강남 수영이야 할 텐데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 같습니다. 북한도 아닌데 역시 출신 성분이 중요합니다.
계속 건너기를 반복하다 보니 길이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곧 길입니다. 누군가를 뒤따라가고 함께 있으니 배낭도 가벼우니 하늘을 자주 쳐다봅니다. 계곡 사이 푸른 녹음으로 채색되어 있고 늦여름 계곡 물소리가 고즈넉합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광복절만 해방이 아니고 찌든 삶에서, 슬픔에서 해방과 자유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숲과 나무, 계곡을 노닐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찾은 것입니다. 슬픔은 계곡을 흘러 강물이 되어 흐릅니다. 다시 슬픔이 찾아오지만 간헐적인 행복을 만끽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내린천 캠핑장에 도착하니 주인 내외분이 우리를 반기십니다. TvN의 삼시 세끼에 나오는 솥에 삼계탕을 끓이고 계신 봉섭 형과 원미형이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주인분이 서울에 가셔서 오늘은 봉섭 형과 원미형이 주인입니다. 캠핑장 주인 부부가 만들어주신 삼계탕과 밑반찬으로 파티를 벌였습니다. 20인분은 준비해 주신 두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삼계탕을 먹어 이미 배가 부른데 다시 삼겹살을 굽기 시작합니다.
주중엔 춘천에 혼자 있다 보니 퇴근 시에 마음이 심란한 '해질녘 증후군' 이 있습니다. 저녁에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 좋습니다. 술 몇 잔 마시고 승표 빨간색 텐트에 누워있는데 집 보러 참 많이 옵니다. 대부분 집이 마음에 안 들고 비싸다고 그냥 돌아섭니다. 집 보러 온 사람만 돌아간 것이 걱정이 아니라 겨울에 승표 입이 돌아갈지 걱정입니다.
이번 산행은 스트레스가 냇물이 되어 강물로 흘러 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스트레스는 찾아오지만 간헐적인 행복을 통해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산악부는 우리가 사랑으로 가꿔야 할 정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