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조금 서늘해지니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아주 어렵고 힘듭니다. 스마트폰이 충전기에 물려있듯이 침대 충전기에 충전만 하려 하고 그만 일어날 때도 되었는데 계속 충전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전기 플러그에서 충전하고 사람은 침대에서 충전을 합니다.
이제 충전이 되었으면 사회에서 방전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어야겠는데 그 침대 충전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만은 않은 일 같습니다. 아침에 급하게 추슬러 입고 집 앞에 있는 마을버스를 타러 갑니다. 요즘에는 마을버스의 시간표가 스마트폰 앱으로 지원되니 언제 도착할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어서 시간 맞춰서 나가게 됩니다.
마을버스를 타러 가면서 “기다림”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버스 도착 시간을 알 수 없으니 대합실에서 정류장에서 한없이 기다렸습니다. 시골에서는 장터로 가기 위해서 보따리를 이고 어깨에 짐을 메고 먼 거리의 신작로까지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그리고 정류소에 도착하여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대합실은 시골의 유일한 소식통이자 마을 간의 교류를 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때 기다림은 지루했지만 저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버스가 보이기 시작할 때 그 지루한 기다림은 기쁨으로 변합니다. 그 버스는 마치 구원의 구세주인 것처럼 햇빛을 받으면 찬란한 모습을 띄며 달려왔고 그 버스는 세련된 모습으로 달려왔습니다. 이런 소리 하면 나이를 추측하실 것이고 꼰대 소리 듣기에 딱입니다. 그래도 좋은 추억이라서 글로 적고는 싶습니다. 요즘에는 버스도 많아지고 버스 도착시간을 거의 분단위까지 거의 일치시키다 보니 기다림의 여유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간절하게 기다리는 기다림이 많이 희석이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약속이 없으면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손꼽아 기다리는 기다림이 삶 속에서 희석이 되어 날아가 버렸습니다.
입사를 위해 그렇게 사모했던 회사의 출근 시간을 기다리는 기다림도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기다림이 없어졌고 오히려 남이 사는 세상은 더 분주하고 복잡해졌습니다. 기다림의 훈련이 없으니 인내도 많이 사라져 조그만 마음에 맞지 않아도 흥분하고 화를 내며 반응을 합니다.
특정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드라마를 볼 수 있으니 손꼽아 기다린 후 시청하는 드라마와는 간절함에서 차이가 납니다. 기다림은 애틋함입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기다림은 절망입니다. 그 기다림이 무선 통신을 통해 그 사람에게 전달되는 기적을 바라볼 뿐입니다.
행복한 기다림 / 이해인
뿌연 안개가
하늘로 올라가는
새벽...
초록빛으로 덮인
들길에 서서
행여 찾아올지도 모르는
그대를 기다립니다.
혹시
내가 보고 싶어
이곳을 찾아올지도 모르는
그대를...
기다린 다는 것은
설레임과
행복한 기다림입니다.
난 오늘도
그 자리에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움으로...
밀려오는 아픔을 안고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그대를 기다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