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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Jan 13. 2023

팀장 일기_09-퇴고하는 삶

우리는 하루를 퇴고하고, 한 달을 퇴고하고, 일 년을 퇴고한다. 청소년기를 퇴고하고, 젊을 시절을 퇴고하고, 중장년을 퇴고하고, 노년을 퇴고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하루를 잘 퇴고해야 하루를 잘 살았다 생각하고 회사 문을 나서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출판사에 최종 퇴고 요청 파일을 받아 보냈다. 퇴고하는 과정을 새벽까지 작업을 했지만 항상 미련이 남는다.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누른 후에도 나를 떠나가 그 텍스트들이 내 머릿속에 맴돌아 아쉬움이 남는다. 게으른 성격 때문에 시간이 아주 많아도 퇴고는 아마 똑같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여러 번 보았지만 이 텍스트들이 세상에 나갈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민이 되고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체크를 해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마음에 걸리는 애매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퇴고하다 지쳐 그냥 메일을 전송을 했다. 출판사는 최대한 내 의견을 존중해서 반영을 하려고 노력을 해주었다. 그냥 수정해도 되는데 꼭 작가의 의사를 문의한 후에 반영을 했다. 퇴고는 거듭나는 시간이며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나마 처음부터 리셋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글을 쓸 때는 내 글로 인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어떤 반응이 올지 궁금하다. 이 책이 어디로 튈지 나도 잘 모르겠다. 퇴고는 성실히 하긴 했는데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이다. 책을 세상에 혼자 두고 나만 홀로 집에 와서 편히 쉬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자식을 군대 보낸 마음이 항상 편하지 않듯이 내 마음도 세상에 나간 그 책이 항상 노심초사하다. 어떤 몰매를 맞지 않을지, 너무 잘 돼서 우쭐대다가 무너지지는 않을지, 이것도 책이냐고 비판을 맞을지, 잘 돼도 걱정이고 잘 안되면 더 큰 걱정이다.


퇴고 후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물가에 어린아이를 내놓은 심정이다. 물에 빠지지는 않을지, 감기에는 걸리지 않을지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상에 나가려고 인쇄를 준비하는 책에게 나는 눈을 떼지 못한다. 처음 책이라서 유독 더 심하다. 독자가 많아 출판사에 대한 보답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내 손을 떠났으니 마음 편하게 잊으면 되는 만 세상에 나간 책이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아갈지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출간한 작가들이 책을 자식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저렇게까지 표현해야 하며 약간 비웃었다. 내가 그 처지에 와보니 책은 자식이 맞다. 잘 돼도 걱정, 잘 안 돼도 걱정 그것이 출간한 책인 것 같다.


마음이 자유로워지려고 해도 항상 기쁨과 두려움이 같이 존재한다. 어차피 내 손을 떠났으니 이제 깊은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다음 주면 내 책이 세상에 나온다.


오늘 하루를 잘 퇴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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