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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Mar 11. 2024

십자가는 믿는 것이 아닌 자랑하는 것

오래도록 기다렸던 책 인세에 관한 메일을 받았다. 생각보다는 많이 팔리지 않아 낙심이 컸다. 책을 출간한 것만 가지고도 감사할 일이기는 하다. 신앙 훈련을 받고 있기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낙심하지 않을 줄 알았다. 삶의 모든 쓴 맛은 다 봤다고 생각해 마음에 굳은살이 베긴줄 알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상심이 컸다.  마음이 무너지는 퇴근길이었다. 출판사에도 누를 끼쳐 죄송할 따름이다. 책 출간 후, 마치 세상의 큰일을 이룬 듯 세상에 떠들었고 자랑질을 많이 했다. 자부심도 대단했고 그동안 겪었던 힘든 일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게 책이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출판사에도 죄송할 따름이다. 몸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오후가 되면 회복이 잘 안 된다.


책 출간이라는 우상에 갇혀있었던 시간이었다. 그 메일을 받고 발걸음이 무척 무거웠다. 아스팔트 바닥이  아스콘을 바른 듯이 자꾸 내 신발을 당겼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왔다. 몸도 퇴근 무렵 되면 지쳐 체력도 많이 지쳐 있는 상태이다. 내가 거울을 봐도 참 안 좋은 상태이다. 모든 대화를 책 출간으로 이끌어 나갔고, 내 대화의 절반 이상은 책이었다. 인스타그램도 모두 책, 출판사 관련된 사람들만 팔로워 되어 있다. 철저하게 책이라는 우상에 갇혀 있었던 한 해였다. 그토록 의지했던 책 영광의 순간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저녁을 먹고 어두운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우울한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십자가' 책을 읽었다. 기운이 없었지만 책을 들었다. 그냥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책을 펼쳤다. 십자가 자랑에 관한 내용이다.


지금 내가 두 번째 책을 내려고 하는 것도 결국 내 자랑을 위한 것이라는 것인 시인 한다. 신앙 서적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내 의에 갇혀,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교회에서 받는 사역 훈련도, 이 교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신앙 훈련받으면 순장님이 좋아하시고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하니까 받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훈련을 통해 인간관계를 넓히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외로움 탈피를 위해 미친 듯이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훈련의 트로피를 들고 영광을 자랑하려 했던 것일 수도 있다. 훈련만이 오직 돌파구이기에 미친 듯이 훈련에 달려든 것 같다.


신앙 책을 쓰는 것도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나 자신의 신앙이 이렇게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세상에 지껄이고 싶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십자가를 자랑하려고 책을 쓰지는 않았던 것이다. 책을 내서 인세의 일부를 선교지에 보내려는, 남에게 선교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들이었다.


진심으로 예수님의 피, 복음, 십자가를 전하는 것은 두려웠던 것이다.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나 자신의 넝마 같은 모습만 드러내려고 했던 것이다. 신앙 책을 쓰는 것이 십자가를 아는 것뿐 아니라, 자랑하는 단계까지는 못 갔던 것이다. 지금 이 고백도 거짓된 위선일지도 모른다. 이 반성 행위조차도 또 다른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위선이 양파 껍질처럼 그 안에 계속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의 죽으심인데 나는 죽지 못했던 것이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실과를 먹은 하와처럼 하나님처럼 된다는 착각을 해 교만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십자가조차도 내 유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는 것이 아닌 자랑의 단계로 넘어가기를 소망한다. 십자가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감동이 없는 내 마음에 더욱 눈물이 난다. 십자가를 지성으로만 알고 있는 것 같다. 십자가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임이 진심으로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십자가가 나의 고통을 위로하는 그냥 도구에 불과할 뿐 자랑하지 못했다.  십자가는 나를 성공시켜 주고 거룩한 척하는 모습으로 키워주는 도구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십자가를 밥벌이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내가 아주 성공했을 때는 십자가를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칠 때도 있다. 오직 세상엔 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십자가를 믿는 자가 아니라 자랑하는 자라고 고백한다. 십자가를 자랑해야 한다는 글귀를 보고 내 마음에 우울했던 모든 것들이 회복되었다. 십자가는 믿는 것을 넘어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믿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자랑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나는 십자가를 믿는 자가 아니라 자랑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두 번째 신앙 책을 쓰는 것도 철저히 나는 없어지고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글감이 되길 소망한다. 그 글귀들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빈털터리가 돼도 괜찮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자랑해야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연약한 몸으로 순종하신 주님의 몸, 마음을 기억한다. 그것은 십자가를 자랑할 때 가능하다.


앞으로, 세상에 나갈 때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드러내며 살고 내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님을 자랑할 것이다. 십자가 자랑은 사랑이다. 십자가 죽음의 유일한 이유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내가 널 위해 죽었건만, 넌 날 위해 무엇을 하느냐? 물었을 때 아직도 나를 드러내는 삶이 오직 십자가를 자랑하는 모습이 되길 소망한다. 내가 가진 한 가지 열정은 주님 한 분뿐이다.


십자가를 자랑해야만 진정으로 믿는 것이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나니 우울했던 내 마음이 다시 회복이 되었다. 건강도 다시 부활했다. 십자가 사랑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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