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지인의 자녀가 연출한 뮤지컬 '유포리아'를 보러 대학로에 갔다. 내 삶 속에서 은인이신 아드님이 연출한 뮤지컬이다. 사랑을 쫓는 뮤지컬이다. 뮤지컬이 아름답다. 내 삶에 아름다움을 준다. 사랑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사랑을 쫓는 별들의 이야기이다.
춘천 시골에만 살다가 퇴근길 빽빽한 지하철은 오랜만에 탄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앞의 아가씨와 밀착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한다. 요즘은 오비이락이다. 지하철에서 신체 접촉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은 오해를 불러일으켜 한방에 훅 간다.
혜화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앞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홍해는 갈라졌지만 내가 내리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내려요' 간절하게 외치니 내 몸 나갈 공간이 생긴다. 시골에 살다가 이렇게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다.
공연장은 미리 알아놓았다. 지하철 입구 바로 앞이다. 연출한 지인의 아들에게 줄 꽃다발을 사러 갔다. 온통 장미다. 장미가 풍성하게 많다. 수염이 덥수룩한 키 큰 아저씨는 장미를 추천한다. 분홍색과 노란색의 중간에 있은 오묘한 색깔의 장미를 샀다. 가격은 4만원이다.
주인아저씨에게 중년의 남자가 대학로에서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중년의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들, 할아버지들도 무척 많이 들고 다닌다고 한다. 전혀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한다. 사실, 혼자만의 생각이다. 남들이 다 자기를 어떻게 볼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남들은 친구와의 약속, 퇴근하느라 바쁘다. 나를 바라볼 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남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크게 관심없다.자기 살기도 바쁘다.
오랜만에 주황색 꽃을 들고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향했다. 대학로는 붉은 벽돌이 매력이다. 붉은 벽돌에 푸른 등나무들이 연한 파란색으로 천천히 채색돼 간다. 잠시 쉼을 주는 건물이다.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니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진다. 연한 녹색으로 잎이 올라오는 은행나무는 싱그러움을 준다.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튤립보다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가 더 사랑스럽니다. 이끼 낀 고목이 더 소중하다.
일행을 만나기 위해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벤치에는 주황색 장미꽃 꽃다발이 있다. 평일 저녁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유포리아'라는 공연이 시작됐다. 사랑을 찾아 떠나가는 내용이다. 2시간 내내 지치지 않고 노래 부르는 세 명의 배우가 대단하다. 소극장의 매력은 배우의 눈빛인 것 같다. 배우가 나를 자꾸 째려보는 듯한 모습니다. 주눅이 든다. 배우의 눈빛을 바로 앞에서 느끼는 것이 소극장의 매력인 것 같다. 여배우는 미인이다. 남자 배우도 미남이다. 피부도 좋고 얼굴이 잘 생겨야 통하는 시대인가 보다.
오랜만에 사랑의 마술이라는 뮤지컬을 보았고 2시간 동안 졸지 않은 나를 스스로 위로한다. 좋은 뮤지컬이다. 6개월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고생한 흔적이 느껴진다.
끝난 후 일행과 사진을 찍고, 연출한 지인의 아드님께 축하를 해주었다. 공연 들어가기 전에 마시지 못한 뜨거운 커피를 남자 셋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마셨다. 진한 커피 향, 연한 녹색으로 채색된 나무, 따뜻한 사람들,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보니 감사한 마음이다.
시대가 변해도, 나이를 먹어도 사랑은 사람이 꾸준히 갈망하는 그 무엇인가 보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계속 솟아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펼쳐 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별이 쏟아진다. 손가락 사이로 하나님의 사랑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