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기 Jun 03. 2024

교회의 존재 이유

평신도를 깨운다.

옥한흠 목사님의 평신도를 깨운다를 읽고 정리한 내용이다. 9장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정리했다.


교회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것은 구체성이 부족하다. 다소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세 가지이다.

1.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한다. 예배는 전 인격적인 제사다. 예배는 하나님의 인격에 근거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먼저 알고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주님이 교회에 교역자를 주신 목적에는 예배 인도자로서의 책임에 관한 언급이 없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고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고 한다.


예배에서 수직적인 차원과 수평적인 차원 사이를 이간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우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다. 예배 일변도의 목회가 평신도를 잠들게 하고 무력하게 만드는데 음성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참 예배자는 평신도를 철저하게 훈련시켜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배 일변도의 목회는 참 예배자를 만들어 내는 수고를 방해한다.


2.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름을 받아 다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성도의 모임이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세상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다. 복음 전하는 것에 한 사람 돼 예외가 없다. 평신도가 부름 받은 가장 큰 봉사 사역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 즉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예배와 삶이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삶이 예배다.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왕 같은 제사장이다.


제사장에게는 네 가지 영광스러운 특권이 있다.

1)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특권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성소로 향하는 휘장을 열렸다. 직접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다.


2) 영적 제사를 드리는 특권이다.

새 언약으로 들어온 신자는 모두 다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 드릴 재물은 복음의 증거, 찬송과 형제를 위한 봉사, 순교의 제물, 성도들의 기도다.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현장에서 계속되는 삶 전체도 예배다.


3) 말씀을 증거 하는 특권이다.

말씀을 증거 하는 것은 교회 안 소수에게만 임명된 것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리는 모든 신자에게 부과된 사명이다.


4) 중보 하는 특권이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데서 머물지 않고, 교회 안에 있는 다른 형제들과 세상에 있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데 까지 발전해야만 한다. 수직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영적 제사를 통해 다른 형제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기도하는 수평적 기능까지 다 포함한다. 신자는 누구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 다른 형제들을 위해 간구할 수 있는 세상의 제사장이다.


사도적인 교회라면 소수가 아니라, 전 교회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제사드린다. 전 교회가 복음을 증거 한다. 전 교회가 이웃에게 봉사하는 에클레시아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제사장이라는 영광스러운 명칭을 교직에 부름 받은 소수에게만 돌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 탈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 에클레시아(Ekklesia) 공동체란? (이것은 자체적으로 검색해 정리한 내용)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즉 '교회'를 지창한다. 에클레시아는 단순이 장소, 건물의 의미를 넘어서 영적, 공동체적기능을 갖는 개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이다. 이곳에서 서로의 신앙으 격려하고,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공동체이다.


. 영적 공동체 :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영적 공동체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 소집된 자들 :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에의해 소집된 자들의 집합체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의미이다. 소집을 통해 예배, 기도, 성경 공부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 사명과 증거 : 에클레시아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명을 가진다. 지역 사회와 전 세계적으로 선교활동을 포함하며,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는 역할을 한다.

* 교육과 양육 : 에클레시아는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양육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성경 교육, 영적 멘토링, 다양한 신앙 훈련 프로그램등을 통해 이뤄진다.

*영적 권위 :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도덕적이고 영적인 권위를 가진다. 이 권위는 교회의 가르침, 징계, 지역사회와 세계에 대한 영향력에서 나타난다.


3. 교회는 양육하는 어머니이다.

교회는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하기 위한 존재한다. 교회의 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숙한 신앙인이라는 목표에 이를 때까지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배려를 베풀어야 한다. 교회가 성도를 양육하려면 지도자가 말씀을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선교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공동체인 동시에 또한 보냄을 받은 공동체이다. 교회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 안으로 보내심을 받고 있다. 영광스러운 예배, 복음의 전파, 교육을 통한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 세 가지 모두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어느 하나만 되면 안 되고 교회는 세 가지가 동시에 이뤄질  건강해진다.


에배, 복음, 교육이 교회의 핵심이다.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글을 읽으며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예배인도는 반드시 목회자만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훈련받은 평신도도 예배 인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배에 자유함이 있어야 한다. 다락방도 예배고 삶을 나누는 것도 예배다. 작은 모임에서 말씀을 나누는 것도 예배다. 조그마한 교회에서는 성경공부를 죄악시한다. 신천지에 빠진다고 걱정해서다. 말씀 공부 모임들이 없기에 말씀을 주일날 밖에  들을 수가 없다. 말씀이 고갈되었다. 그런데 신천지등은 말씀 공부를 체계적 전문적으로 한다. 일반 교회가 당할 수가 없다. 말씀 실력이 없으니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말씀으로 무장하여 뜨겁게 기도한다. 젊은이들이 다 이단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유가 아닐까?


이단인 사람과 성경 이야기 나오면 화제를 돌린다.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경을 잘못 이해했다 하더라도 맥락은 어느 정도 알것 아닌가? 이단으로 젊은이들이 빠져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성경 공부가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성경 공부 소모임등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씀 운동이 불길처럼 퍼지면 좋겠다. 설사 조금 잘못전하더라도 잘 아는 사람이 교정해주면 될 것 같다. 말씀 틀리게 전할까봐 소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쪼그라든다. 이단에 맞설 말씀 공부가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말씀을 쉽게 전하는 은사가 있다면 유튜브에 올려 놓으면 좋겠다. 말씀을 어렵게 설명하면 지레 겁먹고 말씀을 멀리한다. 말씀을 아는 것이 마치 벼슬인 양 하지 말고, 말씀을 초등학생도 쉽게 알게 해서 말씀의 홀씨들이 방방곳곳, 전 세계에 퍼져야 한다. 어려운 말씀은 호두껍질 같다. 딱딱해서 땅에 뿌려도 씨앗이 자라지 않는다. 말씀을 좀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왔으면 좋겠다. 말씀을 수십년간 전하시는 신학 교수님들이 잘못 전한다고 짜증 낼지도 모른다. 아예 안하는 것보다 낫지는 않겠는가?  말씀을 꼭 신학 교수님들이 어렵게 전해서 말씀을 계층화가 생기면 되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 한글을 안다. 한글만 알고 들을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성경을 쉽게 접하는 기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말씀 공부의 확산을 막았기에 이단들이 더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대충 스토리를 알아야 어떤 내용인지 감이라도 잡을텐데, 그냥 무작정 성경 일독을 해대니 천번 읽어도 아무 의미없다. 검정색 글씨, 하얀색은 성경종이로 읽은 것은 시간 낭비다. 성경읽기표 체크하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다. SNS 에 올린다. 그런데 하루 뒤면 아무 내용도 모른다. 천국갈 때까지 매년 반복해도 의미없는 행위다. 이 인물이 구약의 어느 시대쯤인지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주일 설교 3~4단락만 가지고 마음의 위로는 되겠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한계가 있다. 제발 말씀을 쉽게 설명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자. 설교도 제발 알기 쉽게 했으면 좋겠다. 쉽게 안 다음에 성층권의 고차원적인 신앙으로 발전하는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성형 인공지능, ChatGPT로 인해 지식의 경계가 허물어 졌다. 지식의 평등화가 현실화가 되었다. 성경지식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평준화가 되어 간다. 말씀은 기본적인 지식들은 이제 찾기만 하면 쉽게 찾아진다. 예전처럼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 기본 맥락을 안 후에 성령이 주시는 관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찰력 있게 파악하는 데 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말씀이 평준화 이후에 더 말씀속으로 깊어질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말씀이 올바로 가고 있는지 판단해주는 지도자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신앙의 길을 잘 못 가고 있다면 조정해줄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중요하다. 서로 말씀이 올바른 방향으로 교육받음을 통해 신앙의 상승기류가 형성된다. 하나님 말씀의 확장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올바른 말씀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은혜가 있으면 좋겠다.


교회가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이 있으면 좋다. 그런데 1년을 꾸준하게 훈련하는 교회는 많이 보지 못했다. 1년 제자 훈련, 1년 사역 훈련을 받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평신도가 깨어나는 길이다. 강도 높은 신앙 훈련받지 않으면 천국 갈 때까지 성경 흐름도 모르고 간다. 천국에 가서 성경 인물들을 만났을 때 어느 시대 사람인지 헷갈릴 것이다.


체계적인 말씀 훈련을 통해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에서만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예배자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와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에 삶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 복음 전파와 이웃을 위한 봉사, 사랑 등이 실천이 되어야 한다. 그런 평신도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야 한다.


교회의 훈련을 통해서 성숙을 해야 한다. 교회는 훈련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평생 다녀도 신앙의 수박 겉핡기식이다. 고난이 오면 신앙이 송두리채 뽑힌다. 신앙이 말라 죽는다. 그냥 마음의 단순한 위안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 말씀은 심리학이 아니다. 진리다. 하나님 말씀은 정신과 치료약이 아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답이다. 말씀을 잘 가르치는 훈련을 통해 성장한다. 성숙한 신앙에 이르기까지 훈련시키는 교회가 좋은 교회다. 주일 말씀 하나 듣고는 절대 성숙될 수 없다. 훈련의 과정을 거쳐 말씀을 들을 때 더 큰 신앙의 거목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당엔 감꽃이 떨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