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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Jun 30. 2024

흰 바지의 모험

요즘엔 옷에 관심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거의 옷을 사지 않습니다. 그런데 2달째 같은 남방만 입고 다니니, 남방을 하나 보러 갔습니다.


저는 오직 남방만 보러 갔습니다. 그래서 여직원이 추천한 것을 바로 집어 들었습니다. 거기서 끝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신상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여직원이 흰 바지를 추천했습니다. 제가 난색을 표했습니다. 제가 반백 년을 살아오면서 흰색 바지는 단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았습니다. 골프복도 흰색 바지는 입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 몸은 어느새 탈의실에 가서 흰색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정말 어색할 줄 알았습니다. 그냥 입어만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음에 들었습니다. 상당히 깔끔했습니다. 마음에 들었는데 용기가 나지를 않았습니다.


내 주위에 흰색 바지를 입은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몇 만 명이 모이는 대형 교회인데도 흰색 바지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아 있습니다. 작년 토비새 때 오셔서 설교하셨던 의정부 순복음 교회 목사님이십니다. 설교 말씀을 기억은 하나도 안 나는데, 백구두에 하얀색 바지, 하얀색 쟈켓이 생각이 납니다. 그분 빼고는 교회 역사상 흰 바지를 입은 남자 성도님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세탁을 담당하시는 분께서 도 역정을 내십니다. 대체 흰 옷을 어떻게 세탁할 것이냐고 강한 컴프레인을 걸어오십니다. 가족인데도 말입니다.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남방만 사고 옷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머릿속에 계속 흰 바지의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머릿속에 새겨지면 반드시 사는 습성이 있습니다. 몰래라도 아마 사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회 고등부 1학년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모험을 하고 싶다. 흰 바지를 입고 사려고 한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합니다. 남자가 흰색 바지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옆에 사랑하는 제자는 차라리 빨간 바지를 입고 오라고 말합니다. 응원을 못 해줄 망정 아예 모험 자체의 판을 엎었습니다. 아이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받아들이고 싶지만 내 마음에 흰 바지에 대한 욕망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마음에는 남아 있습니다. 흰 바지를 입고 싶은 마음입니다.


[계7:13-14]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흰 옷 입은 자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된 자를 말합니다. 흰 옷을 입음으로써 죄사함과 구원을 상징합니다.


다락방 선생님들께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흰 바지를 입고 오게 되면 정죄하지 말 것을 부탁드려 봅니다. 제가 뭐 힘든 일이 있나 보다. 마음이 허한가 보다 하고 이해해 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삶 속에서 모험은 쉽지가 않습니다. 흰 바지의 모험이 어떻게 펼쳐질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마 7월 중순에 흰 바지 입고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들은 타인의 삶에 크게 관심없습니다. 아무도 관심 없는데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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