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성장이다.

by 박동기

여름 끝자락에 매미가 온다. 매미 우는 소리가 정겹다. 밤 비가 내려서인지 창문이 후덥지근한 공기가 들어온다. 그렇지만 아주 덥진 않다. 이 시간 평온한 퇴근 시간은 초가지붕에 저녁밥 짓는 곳으로 가는 시간이다. 밖에서 놀면 어머니는 밥 먹어라 불렀다. 더 놀고 싶은데 아이들은 다 사라지고 집으로 간다.


연기 나는 지붕아래 전등 빛은 따스함을 준다. 지금이 그런 기분이다. 자연 속으로 계속 들어가는 기분이 참 좋다. 지금은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자연이 나에게 따스함을 준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참 아름다운 삶이다.


삶이 기쁜 것은 간헐적인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고요함 속으로 들어간다. 숲 속으로 들어간다. 조그마한 텃밭에도 열매는 자란다.


이 시간은 모든 사람을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지금은 낙동강 오리알된 나를 그렇게 갈궜던 사람, 나를 거의 초주검으로 몰고 간 사람, 지금 이 시간은 그들을 다 용서한다. 용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용서는 아이 낳는 것보다 더 어렵지 않을까? 아이를 낳지 않아서 모르겠다.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소에 있는 것보다 용서가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용서할 때 자아가 깨지고 성숙한다. 내 속에 아직 갇혀있기에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용서의 허물을 벗고 성숙한 사람을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용서는 자기 살을 깎아내는 아픔이다. 용서해야만 한 발 더 성숙이 있다. 용서하지 못하다는 것은 자신만 옳다는 것이다.


용서할 때 자유함이 있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용서를 하자.

상처 깊이가 크면 용서가 어렵다. 고통을 잊는데 상당 시간이 걸린다. 평생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그 족쇄에서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자. 내가 용서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1%라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기에 용서하는 것이다.


배신은 사랑으로 덮어야 한다.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면 피는 내 손에 묻는다. 복수 후에 내 삶도 피폐해지고 주변도 다 황량해진다. 배신은 사랑으로 덮자. 그 마음이 생기는 사람이 진정한 자아가 죽은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이다. 배신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고통 속에서 벗어나자.


용서하는 것은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내 자존감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을 넘어서 자유함을 얻기 위함이다. 용서는 자유함이다.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에게 너무 야박하게, 다그칠 때가, 자책할 때가 많다. 용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남을 한 번 용서하면 나도 한 번 용서받는다는 규칙을 실천한다. 어떤 사람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피해를 입게 되면 그 사람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둔다. 그러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도 용서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상대방을 용서하는 일이 점점 더 쉬워진다. 오히려 자꾸 너그러이 받아들여주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남과 나를 용서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다. 나를 가스라이팅했던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결단해야 한다. 용서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야만 성숙으로 이어진다. 삶이 행복해진다.


길지 않은 인생, 용서하지 못해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지 말고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일을 하자.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다.


용서는 우리를 마을 앞 느티나무처럼 거목으로 성장시켜 주는 도구다. 용서는 나무 그늘이다.용서는 성장의 도구다. 용서는 사랑이다. 밤하늘 별을 바라보며, 야경을 바라보며 모든 이들을 용서한다. 이 밤에 조금 성장한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내 부족함도 용서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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