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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일지] AI가 내 코드를 짠 날

개발자의 설 자리는 어디인가?

by 박동기

작성자: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개발자

주제: AI 그리고 개발자의 미래


오늘은 바이오팀에게 새로운 기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팀장들에게 발표하니 준비를 세심히 했다. 세미나가 시작이 되고 당연히 짐작했지만,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질문들 가운데 대부분은 답변을 무사히 해서 넘어갔다. 새로운 제품이 나왔으니 당연히 문의해볼 만한 것들이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100장이 넘는 자료를 만들었으니 나름대로 성의는 표한 것이다.


당뇨팀에 들렀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개발에 대해 아예 모르는 바이오 연구원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우리가 개발한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직접 사용해보니 사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기존의 프로그램을 캡처해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다. 새로운 기능을 넣어달라고 하면 더 추가를 해준다.


그 직원에게 우리 팀에 오면 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우리보다 인공지능을 더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ChatGPT를 이용해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었다. 아마 다른 수식 작성들도 훨씬 더 유용하게 만들어 사용하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개발자의 자리가 점점 더 사라진다. ChatGPT에게 "화면을 캡처해서 비슷한 프로그램 코드를 짜줘" 하니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다.


일반인과 파이썬의 만남이다. 충격이다. 의도했던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실행 가능한 형태의 Python 스크립트를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몇 번의 수정도 필요 없었다. 바로 실행된다. 너무나 잘 작동했다. 업무 효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결과물은 훌륭하다. 동료들은 결과에 만족했고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다. 모니터 앞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는 거대한 충격이 자리 잡았다.


개발자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개발자인 나는 지금까지 '코드를 작성하는 능력'을 나의 핵심 역량으로 믿어왔다. 복잡한 로직을 구현하고 에러를 디버깅하며 밤을 지새우는 그 시간이 나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지난한 일들은 AI가 몇 초만에 나보다 더 깔끔하게 처리한다.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개발자 무기력감에 빠지는 순간이다. 기술의 발전이 내 밥그릇을 뺏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왔다.


개발자들끼리 모여 인공지능 스터디를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도 한다. 저녁을 먹은 후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앞으로는 어떤 행보로 나가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끝없이 성찰해본다. 코더(Coder)에서 아키텍트(Architect)로 변해야 산다. AI가 짠 코드는 훌륭했지만, 결국 그 코드를 '어디에 쓸지', '왜 필요한지'를 정의한 것은 나였다. 앞으로 무엇을 설계하는지가 중요하다. SRS와 SDS 문서를 통해 설게를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온다.


바이오 도메인 지식: 우리 실험/업무 환경에 어떤 요구 및 기능이 필요한지 아는 것.

문제 정의: 수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해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는지 설계하는 것.

검증: AI가 짠 코드가 우리 시스템에서 안전하게 돌아가는지 판단하는 눈.


AI는 'How(어떻게 구현할지)'를 기가 막히게 해결해 주었지만, 'What(무엇을 만들지)'과 'Why(왜 만드는지)'는 여전히 나의 몫이었다.


AI 도구를 쥔 장인이 되자.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수백 번 쇠를 쳐서 물건을 만들 듯이 수없이 AI로 프롬프트를 날려야 한다. AI 도구의 달인이 되자. 이제 단순한 코딩 기술자를 넘어서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한 바이오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진화해야 한다. AI가 코딩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면,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더 본질적인 문제 해결, 더 창의적인 기획, 그리고 바이오 분야의 깊이 있는 연구에 쏟는다. AI 혁명은 개발자의 종말이 아니다. 더 높은 차원의 개발자가 되기 위한 새로운 챕터의 시작이다.


"AI는 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위대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돕는 파트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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