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의 양산 승인을 앞두고 있다. 승인 결재를 받으며 부서 간에 충돌이 발생한다. 사소한 나사 개수 이슈인데 그것으로 다음 스텝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사소한 것 하나로 인해서 큰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소탐대실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해본다. 양쪽 부서 사람이 만만치 않은 성격이다. 둘 사이에 잘 조정하기를 바라본다.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 씩씩거리는 모습이 바로 그려진다.
중간 관리자나 실무 리더(Team Leader)의 자리는 고달프다. 위에서는 "왜 아직도 안 됐냐"라고 쫀다. 다른 부서 직원 와 협조가 안되어 서로 힘 겨루기를 하고 있어 진전이 안된다. 양쪽의 요구 사항을 조율하느라 정작 내 본업은 마비된다. 남는 것은 감정 소모와 번아웃뿐이다. 어정쩡한 상황이다. 연말이라 할 일이 태산인데 멈춰서 있다.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눈 쌓인 저 멀리 산을 바라본다. 갑자기 첫사랑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매일이 첫사랑이었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간다. 분주한 전쟁터다. 감옥이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다음 일로 갈 텐데 멈춰버렸다. 감옥 속에 갇혀버렸다.
'샌드위치' 입장을 탈출하기 위한 현실적인 타개책 5가지 실전 전략을 생각해 본다.
1. '전달자(Messenger)'가 아닌 '통역가(Translator)'가 돼라.
가운데 낀 입장에서 가장 범하기 쉬운 치명적인 실수는 양쪽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A의 짜증을 B에게 그대로 전하고, B의 불평을 A에게 토스하는 것은 '단순 반사'에 불과하며 오해만 증폭시킨다. 가운데에서 서로 간의 감정은 빼고 진실만을 이야기한다. 가운데서 한쪽 편을 들다가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부드러운 말로 조율한다. 마음이 너그러워야 한다. 가운데서 같이 화내면 모든 것은 산산조각이 난다. 갈등은 아주 사소한 오해 해서 발생한다.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모호하고 감정적인 언어를 실무 용어로 변환하여 팀원에게 전달한다. 통역가는 양쪽의 감정은 걷어낸다. 오직 팩트와 대안만 남겨서 전달한다. 이것이 통역가의 역할이다.
2. 기록이 곧 생명줄이다: 모든 소통의 '증거화'
구두로 오가는 말은 휘발된다. 가능하면 이메일로 전달하는 것이 좋다.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네가 잘못 알아들은 것 아니냐"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중간자는 기록에 집착해야 한다. 온라인 결재 시스템을 통해서 기록을 남겨놓아야 한다. 댓글 메모라도 달아놓아야 한다.
회의록 공유를 생활화한다. 회의나 통화 직후, 결정된 사항과 Action Item(누가, 언제까지, 무엇을)을 정리해 양쪽 모두가 수신인에 포함된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공유한다. "이 내용으로 진행하겠습니다"라는 확인 사살이 필요하다.
히스토리 관리가 필요하다. 인간의 기억력은 참 나약하다. 아침 안개처럼 기억들이 깨끗이 사라진다. 나이 들수록 더 심해진다. 요구사항이 수시로 바뀔 때 적어놓아야 한다. 그 변경을 누가 요청했는지, 변경 사유는 무엇인지 날짜와 함께 기록해 둔다. 훗날 책임 소재를 가릴 때 이 기록은 자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된다.
3. 내가 결정하지 말고 '링' 위에 올려라 (3자 대면)
양쪽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 중간에서 나만 계속 말을 바꾸는 '양치기 소년'이 되고 있다. 그러면 이제는 빠질 때다. 서로 직접 만나게 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직접 충돌시킨다. "제가 전달하기에는 미세한 뉘앙스 차이나 기술적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직접 논의하시죠"라며 3자 미팅을 주선한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더 격양될 수 있다. 직접 충돌시키는 것은 조심스러운 방법이다. 할 일도 많은데 만나는 준비 해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한다. 회사에서 시간은 생명이다.
사회자(Facilitator)로 포지셔닝한다. 이 자리에서 당신은 심판이나 결정권자가 아다. 양쪽이 합의점에 도달할 때까지 회의를 진행한다. 합의된 내용만 기록하여 확정 짓는 '진행자' 역할에 충실한다. 간단한 산수인데 서로 기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서로 픽하고 웃는 경우도 있다.
4. 우선순위의 공을 넘겨라 (책임의 외부화)
업무가 마비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요청을 "다 중요하고 급하다"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리소스가 한정적임을 인정한다. 선택의 책임을 결정권자에게 넘긴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거나 위임할 수도 있다.
선택권 위임한다. "A팀 요청도 급하고 B팀 요청도 급합니다. 제 리소스(시간/인력)는 한정되어 있으니, 둘 중 무엇을 먼저 처리할지 결정해 주십시오. 결정해 주시는 순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물리적 증명한다. 말로만 바쁘다고 하지 말고, 칸반 보드(Kanban Board)나 업무 리스트를 보여주며 물리적으로 틈이 없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5. 감정적 거리두기: 나는 '문제 해결 기계'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상황의 꼬임을 본인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지 말라. 문제 해결할 대는 차가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Role-Playing이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나는 감정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태스크(Task)를 처리하는 '문제 해결 기계'라고 최면을 건다. 감정적 거리를 두는 것은 프로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다. 회사에서는 드라이해져야 한다. 회사는 동호회가 아니다. 회사는 일을 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다. 회사에서는 냉정하게 살아야 한다.
6. 전화로 이야기해라.
메신저나 이메일로 오가는 대화는 화가 난 상태에서 서로 자극이 더 강해질 수 있다. 메신저로 타이핑하는데도 오래 걸린다. 손가락 아프다. 전화로 눌러서 말로 해라. 상대방의 격한 감정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그 사람의 감정을 다스려 줘라. 공감해 줘라. 충분히 이해한다고 이야기해라. 그다음에 나의 언어와 주장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 상대방은 더 화를 낼 것이다. 그래도 인내하며 절대 같이 화를 내면 안 된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를 같이 할 수는 없지만 한쪽이 수긍하면 된다. 원만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격한 음성을 들으며 참을 때 해소가 된다. 물론, 옳지 않은 것은 정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수긍하며 다음에 원하는 방식대로 처리한다고 하고 마무리한다. 나사 몇 개를 더하기, 빼기 산수 하는 것 갖고 티격태격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인생의 소중한 시간낭비다. 이 세상에는 시간을 할애할 곳이 너무 많다. 시간은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마라. 전화로 직접 이야기해라. 만나면 더 좋겠지만 서로 어색하니 전화가 가장 좋다. 서로 못 생긴 얼굴 보며 더 짜증이 날 수 있다. 얼굴 못 나도 대부분 목소리는 좋지 않은가? 전화로 만나라. 전화로 상대방의 허걱 대는 소리를 듣고 도닥여주고 마무리하면 된다.
갈등이 있을 때 자신은 샌드위치 속 재료가 아니다. 빵과 재료를 감싸 쥐고 있는 '손'임을 잊지 말자.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더하기, 빼기 산수 문제로 유치하게 싸우는 이들을 보며 참 한가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뒤돌아 보니 웃음이 나는 하루였다.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으니 모든 것이 풀린다. 둘도 서로 잘 풀리기를 응원한다. 인공지능이 더 우리를 싸우지 않게 해 줄 수도 있다. 가운데 인공지능이 화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