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탈모는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다. 약값에 대한 부담부터 모발 이식 정보까지 다양하다. 주변에 모발 이식을 한 사람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그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모발이 풍성한 것을 희망한다. 아무리 잘 생겨도 모발이 없으면 갑자기 어르신이 된다. 나이가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 거울 앞에서 넓어지는 이마를 보며 느끼는 당혹감과 절박함은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한다. 탈모가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자신감 하락은 당사자에게는 분명 재난에 가까운 고통일 수 있다. 탈모는 고통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적용' 소식에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대통령이 직접 "탈모는 생존 문제"라며 디테일한 지시를 내렸다. 탈모인들은 환호할지 모르나 이것이 과연 국가가 나설 일인지 묻고 싶다.
냉정하게 말해 유전이나 노화로 인한 탈모는 생명과 직결된 '질환'이라기보다 미용과 관리의 영역에 가깝다. 현재도 원형탈모나 항암 치료로 인한 탈모 등 병적인 경우에는 이미 건보 혜택이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나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까지 국가가 재정을 들여 막아주겠다는 발상이다. 노화까지 책임지기엔 재정이 너무 부족하다.
탈모는 안타깝지만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신체적 변화와 콤플렉스를 마주한다. 누군가는 비만을 고민한다. 누군가는 피부 노화를 걱정한다. 이런 고민들은 개인의 철저한 관리와 노력, 그리고 필요하다면 사비(私費)를 들여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탈모 역시 좋은 제품을 쓰고, 생활 습관을 개선하며, 스스로 약값을 부담하는 '개인의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인공지능(AI), 개인의 노력을 과학으로 이끌다
다행히 우리는 과거와 달리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막연하게 국가의 지원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관리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미 AI는 탈모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두피를 촬영하면 AI가 모공의 상태와 모발의 밀도를 분석해 탈모 진행 단계를 정확히 진단해 준다. 이는 병원을 찾기 전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또한, 수만 명의 임상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은 개인의 체질과 탈모 유형에 최적화된 맞춤형 샴푸나 영양 성분을 추천해 준다.
더 나아가 AI는 신약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탈모 치료제의 가격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국가가 건보 재정을 쏟아부어 일시적인 혜택으로 ‘언발에 오줌누기’이다. 반면에 AI 기반의 헬스케어 산업을 육성하여 시장 스스로 저렴하고 효과적인 설루션을 내놓게 유도하는 것이 훨씬 지속 가능한 방법이다. 기술이 개인의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시대다. 굳이 국가의 세금으로 관리 비용을 메워줄 이유는 더욱 희박해진다.
생명을 지키는 건보 원칙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가장 큰 우려는 건보 재정의 우선순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억 원에 달하는 약값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희귀 질환자들이 있다. 응급실을 찾지 못해 길 위에서 생명을 잃는 이들이 있다. 소아과 대란과 응급 의료 붕괴가 일상이 된 시대다. 필수 의료를 제치고 탈모 치료가 국정 의제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건강보험은 개인의 소소한 불편을 덜어주는 '서비스'가 아니다. 우리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가장 치명적인 위험, 즉 '생존'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탈모 급여화가 선례가 된다면 앞으로 비만 치료, 성형수술, 피부 관리까지 건보 빗장을 풀어달라는 요구를 막을 명분이 사라진다. 암환자가 치유보다는 병원비를 걱정하는 시대다. 한국이 아무리 의료보험이 잘 돼 있다고 하지만 중병에 걸리면 그 순간 병원비는 폭증한다. 나는 괜찮고 내 자식은 괜찮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병은 한순간에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필수의료에 건강 보험을 지불해야 한다. 외모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 일에 건강보험이 투입이 되어야 한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의 유혹
건보 재정은 이미 위기다. 2026년이면 적자로 돌아서고 2030년이면 그동안 쌓아둔 적립금마저 소진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소확행'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층의 표심을 자극하는 정책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의 박수 소리는 달콤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청구서는 결국 미래 세대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중증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국가는 공감의 정치가 하되 그 기준만큼은 서늘할 정도로 엄격해야 한다. 탈모의 고통은 AI와 같은 혁신 기술을 활용해 개인이 과학적으로 해결할 문제로 남겨둬야 한다. 국가의 예산과 행정력은 오직 '진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박수의 크기가 아니라 생명의 가치에 따라 정책의 순위가 정해지는 상식적인 나라를 바란다. 박수는 휘발성이지만 생명은 영원하다. 생명 살리는 일에 돈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