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삶

by 박동기

흰 여백이 있다. 여백이 있으면 삶이 조급하지 않다. 동양화에 여백이 더 아름답다. 삶에도 여백이 있으면 좋겠다. 숨이 막힐 듯한 쪼임에서 벗어나 잔잔한 여백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 마음이 고독하다. 우울감이 밀려온다. 올 겨울은 왜 이렇게 긴지 계속 어둠이다.


나는 마음이 고독할 때 나그네가 아닌 '순례자'가 된다. 요즘 문득 마음 한구석에 깊은 고독이 찾아왔다. 우울감이 안개처럼 밀려와 시야를 가리는 듯하다. 외로운 상황에서 역설적인 깊음을 깨닫는다. 가장 외로운 이 순간에 삶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는다. 삶은 정처 없이 떠도는 방황자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다.


삶의 여백을 찾는다. 믿음이 확고하다는 것은 삶에 여백이 있다는 뜻이다. 삶에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여백이 있는 삶이다. 하나님이 삶에 존재하지 않으면 눈앞의 문제들에 조급해하고 흔들리기 일쑤다. 하나님은 삶의 여백이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신뢰할 때 마음에는 비로소 틈이 생긴다. 여백이 생긴다.

직장에서의 직위나 사회적 위치는 은퇴하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믿음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는 정체성 하나뿐이다. 이 사실을 최우선으로 회복하면 삶이 각박하지 않다. 하나님 여백을 가지면 삶이 숨 가쁘지 않다.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여백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나그네와 순례자의 차이다. 종종 스스로를 목적 없이 떠도는 나그네처럼 느낀다. 여긴 어디이고 뭘 하는지 물을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저 떠도는 존재가 아니다. 나그네는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사람이다. 순례자는(Pilgrim)은 천국이라는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간다. 순례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택함 받은 사람이다.


순례자의 삶을 깨닫고 나니 세상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순례자는 길 위에서 만나는 돌부리에 넘어졌다고 해서 주저앉아 울지 않는다. 목적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순례자는 고독하다. 고독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다. 지금 느끼는 이 고독과 우울함이 단순히 고통스러운 감정만은 아니다. 고난은 고독을 몰고온다. 고난은 고독이다. 고난은 신기루다. 고난은 주변의 사람들을 떠나게 한다. 고난은 결국 하나님 앞에 홀로 서게 만든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신 앞에 선 단독자'처럼 말이다.


금이 불 속에서 깨끗해지듯이 영혼은 고난 속에서 깨끗해진다.

환란으로 인해 소망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얻는 기쁨이다.

꿈 꾸고 있는 사람을 깨어 있어야 한다.

환난은 반전이다.

환난은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한 도구다.

환난은 소망을 구해온다.

영원의 소망은 사람의 속사람안에 숨겨진다.

싹이 튼다는 것은 압력을 극복하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당신의 나약함이 본질적으로 예배다.

역경이 형통이다,

역경만 목표로 안내한다.



키르케고르의 고난의 기쁨중에서.


이 고독의 시간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축복의 시간이다. 시련의 용광로는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운다. 잔머리, 인본주의, 욕심, 그리고 나를 옥죄던 세상의 걱정들은 다 태워버린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서 결박만 타고 살아났다. 고난은 우리를 얽매고 있던 것들만 태워버리고 순도 100%의 정금 같은 믿음만 남긴다. 믿음이 있으면 세상이 공허하지 않다.


산 소망(Living Hope)을 품으며 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은 소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산 소망을 주신다. 우리는 매일 먹고, 싸고, 자고, 씻고를 반복하며 늙어간다. 늙어감에 우울해진다. 산 소망을 갖고 살면 세월이 갈수록 더 싱싱해진다. 산 소망을 갖고 살면 마음은 젊어진다. 고독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겸손을 주신다. 하나님은 고독 가운데 납작 엎드린 그 자리에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신다. 산 소망을 주신다. 살아갈 이유를 주신다.


나는 마음이 고독하고 우울할 때 하늘의 능력을 구한다. 세상의 위로가 아닌 하늘의 소망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고난은 내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시간이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기회다. 세상 풍파에 일희일비하는 나그네가 아니라 순례자다. 하나님 보호 아래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다. 오직 믿음만이 이 세상 모든 것의 진리다. 믿음은 인공지능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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