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르는 겨울, 행복의 징검다리를 놓으며

by 박동기

창밖에는 눈이 오른다. 1층 도로에서 보면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사무실 밖 고층에서는 눈이 올라온다. 눈이 바닥에서 하늘로 역류하는 기분이다. 며칠 새 날씨가 무척 추웠다. 하얗게 세상을 덮어주는 눈이 누군가에게는 낭만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 내일 주차장에 쌓일 눈을 치워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그리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일 뿐이다. 며칠 사이 곤두박질친 기온에 옷깃을 한껏 여며본다. 옷감 사이로 스며드는 냉기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하루 사이에 기온 차이가 10도 이상 나니 몸이 먼저 반응한다. "가난하면 감기도 자주 찾아오는 듯하다"는 말이 가슴 깊이 박히는 요즘이다. 추위는 단순히 온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실감한다. 치솟는 난방비 걱정에 보일러 온도를 낮추고 웅크린 이웃들이 안타깝다. 그리고 저 멀리 전쟁터에서 포화와 추위에 떨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방의 온기마저 죄스럽게 느껴져 마음이 시려온다.


어제는 병원에 다녀오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 젊은 여인이 귤을 하얀색 비닐봉지에 담아가고 있었다. 양이 아주 많지는 않아 보였다. 요즘은 쿠팡으로 박스채 배달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조그만 봉지에 귤을 담아가는 그 연약한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그 귤은 마치 보물인 듯 소중히 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추운 날씨의 햇살과 어우러지며 참으로 애잔하게 다가왔다. 애처로워 보였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고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겨울바람처럼 차갑기만 하다. 나만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아니면 온 세상이 잿빛으로 물든 것일까. 따뜻한 뉴스가 참으로 그리운 계절이다. 가라앉는 마음을 다잡으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다시 꺼내 들었다. 책 속의 한 문장이 차가워진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핀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intensity)가 아니라 빈도(frequency)다."


로또 같은 거창한 행복을 기다리다 지치기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이 가볍게 자주 찾아오는 것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그 말이 큰 위로가 된다. 인생이라는 강을 건널 때, 커다란 행운의 다리를 기다리기보다 매일매일 작은 행복의 징검다리를 촘촘히 놓아두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겠지. 약속의 징검다리들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아야 행복하다.


이번 주와 다음 주 토요일, 반가운 얼굴들과의 약속이 잡혀 있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 귀한 만남을 앞두고, 마음속으로 작은 준비를 해본다. 단순히 맛있는 밥을 먹고 일상의 잡담만 나누다 헤어지는 자리가 아닌, 우리 삶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손길을 나누는 '은혜의 징검다리'를 놓고 싶기 때문이다.

어색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마음을 나누기 위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끄적여 본다.


우선 대화의 문은 책 이야기로 열어볼까 한다. "요즘 참 우울해서 책을 봤는데, 큰 행복보다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게 중요하대."라고 운을 떼며, "최근 일주일 동안 아주 사소하지만 '아, 감사하다' 싶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라고 물어보고 싶다. 거창한 간증이 아니더라도, 작은 감사를 나누는 순간 마음의 빗장이 풀릴 테니까.


그리고 식사 후 따뜻한 차를 마실 때는 미리 준비한 '키워드 카드'를 꺼내볼 생각이다. 종이에 '위로', '개입', '기다림' 같은 단어를 적어두고 하나씩 뽑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최근 하나님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셨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느낀 사건이 있었나요?"


이런 질문들을 통해, 서로의 삶에 개입하신 그분의 흔적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헤어지는 길에는 오늘 나눈 이야기 중 하나의 기도 제목을 품고, "당신의 고민에 하나님이 꼭 개입하시길 다음 만남 때까지 기도하겠습니다"라며 서로를 축복하고 싶다.


차가운 겨울, 우리가 나누는 이 소박한 대화와 기도가 서로의 언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난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온기가 우리를 넘어 추위에 떨고 있는 이웃들에게까지 흘러가기를, 이 겨울의 한가운데서 간절히 기도한다. 퇴근길에 따뜻한 난로가 되어 내 마음이 좀 더 차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한참 뭔가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더 가슴이 시린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응급실 행 - 업무 위임의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