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땅거미가 보인다. 그만큼 해가 길어진 모양이다. 날씨는 영하 10도가 넘는 밤이다. 많이 춥다. 땅거미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땅거미는 밤의 이름이 아니라 낮이 스스로를 내려놓는 순간을 부르는 말이다. 어원을 찾아보면 '땅' + ‘거미’의 결합이다. 여기서 땅은 하늘의 빛이 닿지 않는 자리다. 땅은 빛이 가라앉는 낮은 곳을 뜻한다.
거미는 우리가 아는 곤충이 아니라 옛말에서 검다 혹은 어둡다의 의미를 품은 소리다. 거무스름하다 혹은 검거미하다에 남아 있는 그 거미다. 땅거미는 땅처럼 낮게 깔린다. 땅에 검은 기운이 스며드는 시간이다. 어둠이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천천히 차오르는 순간이다.
해가 사라진 뒤의 밤이 아니라 해가 아직 할 말이 있어 빛이 남아있는 순간이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잠시 공존하는 경계의 시간이다. 그래서 땅거미는 늘 머뭇거림의 색을 띤다. 완전히 어둡지도 않고 완전히 밝지도 않다. 검은색과 빨간 노을빛이 혼재되어 있다. 오늘은 겨울이라 흰색의 눈까지 겹쳐서 색상 조화가 오묘하다.
퇴근길은 오늘과 내일 사이에 있는 땅거미다. 퇴근길은 허전함과 안도감이 같이 찾아온다. 땅거미는 하루의 자신을 정리하는 마지막 문장이다. 하루가 수고했고 한편으로는 아쉽다.
오늘은 삶이 유난히 무거운 날이었다. 해야 할 일은 많았고 해결되기를 바랐던 문제들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사람들과 차를 마시러 온 것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 앞에서 자주 길을 잃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일을 한다. 잘하는 일을 하며 월급을 받는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인정받으며 살아간다.
나는 왜 이 자리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인공지능을 사용해도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일들이 있다. 능력의 문제인지 방향의 문제인지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또 의문이 든다. 왜 나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할까? 남들이 다 알아주지도 않는데 굳이 이 추운 날 남아서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질문과 하나님이 주실 답을 기다리며 산다. 열심히 일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있지만 일이 잘 되지 않는 날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인공지능을 도구로 삼아 일을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해보려 한다. 이 세상에 큰 미련은 없다.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마침내 천국에 가면 그만이다. 이 세상 나그네로 살다가 돌아갈 곳이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마음에 위로가 된다.
마음이 우울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좋지 못한 것 때문일 것이다. 연결이 끊어진 것처럼 보여도 사랑은 로그아웃되지 않았다. 다만 사랑에 대한 표현이 전해지지 않거나 응답이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아픔은 연결이 끊어졌으나 여전히 마음은 붙잡고 있으니 아프다.
말하지 못한 말들은 마음속에 묻는다. 전하지 못한 마음은 아직 배포되지 않은 진심이다. 세월이 흐르면 내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다시 말을 건네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다. 기다림은 사랑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퇴근길 이제 땅거미는 사라지고 겨울의 찬 기운이 외투를 파고든다. 오늘은 이렇게 접으려고 한다. 내일은 조그마한 희망으로 펼쳐보려고 한다. 관계는 끊어졌으나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퇴근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마음이 더 가까워진다.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