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비 생활
오늘도 많은 일들 속에 묻혀 살아간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묵상하게 된다. 점점 자신감이 사라지는 날들이 많아진다. 자신감은 바람처럼 불쑥 사라진다. 자존감은 아무 예고도 없이 없어지곤 한다. 자신감을 늘 품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사는 것은 항상 힘들다. 그런데 모두들 거친 호흡을 하며 힘듦을 견디며 살아간다.
내가 작아지려고 한다. 좁아지려고 한다. 움츠려 들려고 한다. 그럴 때 가끔은 하늘을 보고 깊게 숨을 쉰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오니 마음은 더 춥다. 숨을 쉬며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내 삶은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있는지. 나는 오늘 무엇을 남겼는지. 나는 여기서 무엇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오래된 감기 때문에 잔기침이 아직도 난다. 감기는 마음의 피로처럼 꽤 오랜 시간이 나와 함께 동행한다. 감기 와는이제 이별하고 싶다. 내가 여기 살아가는 이유는 오늘의 삶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딱히 갈 곳도 없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일을 좀 했다고 해서 우쭐하지 않는다. 그냥 월급 받으며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오늘은 참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 연말정산을 해야 한다. 1월에는 너무나 많은 세금을 토해냈다. 세금을 많이 내니 현기증이 찾아온다. 1월은 참 가난하게 살았다. 가난하니 가계부를 쓰게 된다. 가계부를 쓰며 오늘을 반성한다. 돈을 하나도 안 썼으면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즐거움이 몰려올 때는 돈을 하나도 쓰지 않았을 때다.
요즘 참 괜찮은 책을 읽었다. 일본 작가가 쓴 '저소비 생활'이다. 월 7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는 내용이다. 집은 월세로 좋은 곳을 얻었다. 월세가 50만 원이다. 나머지 2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며 산다. 돈을 쓰기 전에 머리를 쓴다. 0원 데이를 만든다.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는 하루가 가장 마음이 편하다.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있으면 돈을 별로 쓰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작가는 이 사실을 아는데 먼 길을 돌아왔다. 작가는 바로 사지 않는 연습을 한다. 내가 살 수 있는 배는 1인승 카약이고 내 짐은 그 배에 실을 수 있는 만큼만 갖고 산다. 내 삶도 단촐하게 산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결론이다. 주거 환경은 좀 좋은 곳에서 산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다 절약한다. 먹고 입는 것은 절약한다. 좋은 집에서 오래 머무는 습관을 들인다. 먼저 좋은 집을 구하는 것이 좋다. 몇 십억 강남의 아파트를 살자는 것이 아니다. 조그만 주택 방 한 칸이라도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는 집을 고른다. 앞에 자연이 보이면 더 좋다. 고요히 보낼 수 있는 집을 마련한다.
구매가 덧셈이라면 포기는 뺄셈이다. 먼저 포기하는 연습을 한다.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지 말고 우선 포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첫걸음이다. 구매하는 것을 포기한다. 있는 것을 고쳐 쓴다. 사치하지 않는다. 소비가 줄어들면 건강한 삶이 찾아온다.
독서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 하나가 마음에 남는다. 한 달에 50만 원을 갖고 사는데 행복한 친구 분이 있다고 한다. 라면 계란 값의 모든 물품의 물가가 올라가는데 어떻게 50만 원을 갖고 사는지 궁금했다. 치매 어른과 몸이 힘든 가족을 같이 모시고 사는데도 행복하단다.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삶이다. 선생님은 큰 옷이 있으면 친구에게 꼭 준다고 한다. 월 50만 원에 살아도 초라하지 않단다. 내가 KBS 인간 극장에 나올 이야기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너무 행복하고 기쁘단다. 나는 물었다. 그분이 기쁨,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꿈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다. 여섯 달 동안 걷는 것이다. 걷는 것이 그의 기쁨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소비 생활'을 읽으며 더 깊이 공감했다. 나도 오늘 0원 데이다. 돈을 쓰지 않은 날은 마음이 텅 비어 좋다. 낡은 옷을 입으면 오히려 편하다.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된다. 돈을 쓰지 않는 날은 행복하다. 그냥 텅 빈 느낌이라 좋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 밥은 회사에서 주고 주중에 회사에서 숙소를 제공해 준다. 그냥 일만 하면 된다. 시골이라 돈 쓸 곳도 없다. 시골이라 만날 사람이 없다. 온통 산 밖에 없다. 이런 곳에 있으니 오늘도 0원 데이다. 눈 덮인 산과 만나면 돈을 쓸 곳은 없다. 산은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산은 과묵하다. 산과 만나면 심심하다.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돌파했다. 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냥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서민 경제는 여전히 팍팍한데 주가는 왜 오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조그마한 돈으로 소비하며 산다. 미국 주식 사논 것이 운이 좋아 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커피는 회사에서 마신다. 오늘도 돈을 쓰지 않았다. 돈을 쓰지 않는 날을 자유하다. 마음이 자유롭고 욕심이 나는 것이 별로 없다. 욕심이 줄어들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갖고 싶은 것도 특별히 없다. 소소하게 갖고 싶은 것들은 다 가졌다. 쿠팡에서 만 원짜리 제품들만 갖고 싶다. 갖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특별히 없다. 그냥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루의 만족으로 산다. 인간 하루 살이다. 하루에 의미를 부여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인간 하루살이로 살아갈 때 어떤 의미를 찾을 때 가장 기쁜지 생각해 본다.
퇴근 후 하루에 하나 브런치에 글을 올렸을 때 나는 가장 기쁘다. “오늘도 잘 살았다”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산 키보드로 조용히 글을 두드리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글을 쓰고 나면 오래 묵은 숙제를 해낸 기분이다. 새로 산 키보드로 글을 입력할 때 기분이 좋다. 글이 완성되어 브런치에 하나 올렸으니 오늘도 나는 참 잘 살았다. 나도 '저소비생활'을 추구한다. 마음이 깃털이다. 돈은 얕게 쓰고 삶은 깊게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