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티브스 Jan 30. 2019

쇼브라더스의 非무협 표절 혹은 패러디물 (1) 철관음

鐵觀音, Angel with the iron fists, 1967

<철관음>의 인트로

아름답기가 관음보살과 같고 무겁기가 철과 같다 (美如觀音重似鐵). 어떤 우롱차를 마시고 청나라 건륭제가 이렇게 평한 뒤 이름을 하사한다. 철관음. 이 영화의 제목이 과연 차(茶)의 이름을 뜻하는 것일까. 영어 타이틀 <Angel with the iron fists>를 생각하면 차 이름보다는 철로 만든 관세음보살 즉, 총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영화 속에서 악당들이 유통시키려는 마약을 차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연 하리리와 조연 범려, 금비, 당청, 라유

한 해전 발표한 <금보살>에 이어 라유 감독은 1967년 또 다시 부처의 이름을 차용한 제목의 작품을 발표한다. 내용으로도 두 작품은 시리즈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닮아있다. 평범한 남성이 작은 금불상을 얻게 되고 이를 빼앗으려는 조직과 소동을 벌인다는 <금보살>은 전형적인 <007>류의 영화다. <철관음>에 와서는 <007>을 차용했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낸다. 주인공은 에이전트 ‘009’로 불리며 007의 나라 영국의 런던에서 동료 166의 죽음을 복수하러 건너온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 <특경009 (Inter-Pol)>역시 <금보살>, <철관음>과 내용과 출연 배우가 거의 대동소이하다.

<금보살>의 한 장면과 <특경009>의 인트로

<철관음>이 <007>과 비슷한 점을 대표적으로 한가지만 꼽자면 <철관음>에도 M과 Q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철관음>에서는 (5년 후에 이소룡의 ‘정무문’을 연출할) 연출자 라유 감독 본인이 총경 역으로 M 역할을 하며 비중있게 연기한다. 반면 Q는 성격도 지위도 이름도 알 수 없다. 그는 신경안정제가 들어있는 향수병, 어둠 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양방향으로 총알이 발사되는 핸드백, 2시에 시간을 맞추면 폭탄이 터지는 시계, 그리고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요즘으로 보면 GPS 기능이 있는) 머리띠만을 무표정으로 짧고 건조하게 기계적으로 설명하고(대사를 읊고) 사라질 뿐, 사건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나온다.

루나(하리리)와 마주하는 총경(라유). 검은 양복이 무기 개발자

<철관음>의 악당은 <007>의 ‘스펙터’처럼 ‘어둠의 천사단’이라는 조직으로 움직이고, 수장은 최첨단 장비가 가동되는 비밀기지에서 '블로펠드'처럼 성에 차지 않는 부하를 무자비하게 즉결 심판한다. 조직원들은 미래지향적인 실내에서 유니폼을 입고 다니며 그들의 기지는 먼지 하나 없이 매끈하고 우아하다. (세트는 한 해 전에 찍었던 <금보살>의 그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당 해에 개봉할 <007 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를 의식하여 <철관음>을 최대한 빨리 개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악당 두목(금비)과 C7(당청). 실적이 저조한 단원은 즉결심판 한다.
<금보살>과 <철관음>의 세트

이제는 <철관음>이 <007>과는 다른 점을 이야기할 차례다. <철관음>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에이전트 009인 루나는 쇼브라더스의 차세대 주연 배우 ‘하리리(何莉莉, Lily ho)’가 맡았으며 악당 두목 역시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쇼브라더스의 현대극에서 활약할 ‘금비(金霏)’가 맡았다. 여성이 주연인 영화인만큼 액션은 많이 약하지만 대신 볼거리가 풍부하다. 남성 주연인 C7역의 당청(唐菁)이 매씬 같은 양복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루나의 패션은 매우 다채롭다. 화려한 원피스와 다양한 액세서리 그리고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리하는 화장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준다 (1971년 하리리의 출연작 <여살수> 역시 그렇다). 당청과 라유 두 사람을 제외하면 B1역의 범려(范麗)를 비롯해 악당 기지의 부두목들은 모두 여성이며 한결같이 세련된 옷차림을 보인다. 그러나 뜬금없는 수영복 대회 장면과 주체적이기 보다는 남성 캐릭터인 C7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주인공의 행동 그리고 패션을 제외하고는 두드러지지 않는 평면적 여성성은 아쉬움이 남는다.

<철관음>중 하리리의 패션

이 영화는 쇼브라더스의 현대극답게 뽀얀 파스텔톤 화면을 자랑한다. 앞서 언급한 의상뿐만 아니라 각 장면의 배경은 원색이 바탕이 되며 야외장면은 따로 조명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매우 화창한 날씨를 지향한다 (대다수의 쇼브라더스 현대극의 낮장면처럼). 또한 쇼브라더스 영화의 시그니쳐 처럼 나타나는 야외장면에서 다음 컷으로 넘어갈 때 갑자기 배경이 실내로 바뀌는 당황스러움이 보이지 않아 새삼 세련스럽게 느껴진다. 악당의 최후를 제대로 된 일합 없이 미니어쳐로 끝내버리는 엔딩이 아쉽기는 하지만(보자기로 싼 보따리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도망가는 악당들 또한) <철관음>은 그즈음 쇼브라더스의 <007> 아류물 가운데서는 가장 이색적이고 좋은 퍼포먼스를 보인 작품이라 칭하고 싶다.

<권격>(1971)과 <철관음>의 야외 장면
악당들은 보따리를 들고 도망치나 곧 그들이 탄 배는 폭파된다. (미니어쳐가 아쉽지만 이해는 간다)

<철관음>의 주연인 하리리는 1946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랐으며 16세인 1963년 쇼브라더스의 원추풍 감독에게 발탁되어 홍콩으로 이주한다. <산가인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하여 호연니, 금패, 임가 등의 여성 배우와 쇼브라더스에서 ‘소씨12금채(금비녀)’로 불리며 승승장구 했다. 1974년 보트 사업가와 결혼하며 은퇴할 때까지 11년간 47편의 작품에 출연하였으며 1980년에는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딴 의류브랜드를 런칭하며 사업가의 삶을 살고 있다. 장국영과 함께 위패가 모셔진 심전하(沈殿霞, 肥姐)와 은퇴 후에도 계속 친분을 유지했다.

다양한 영화 속의 하리리

- 줄거리 -

특수요원 166 지쳉은 괴한들에게 총탄세례를 맞고 죽는다. 009라는 이름의 요원으로 활약 중인 루나는 암살된 166의 복수를 위해 런던에서 홍콩으로 건너온다. 루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던 악당들은 티엔후라는 그들의 요원(C7)으로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루나 또한 티엔후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던 것. 루나와 티엔후는 서로 속고 속이며 공방을 이어간다. 특수 무기를 지니고 적에게 가담한 척 한 루나는 그들의 소굴로 들어가 마약을 제조하고 유통하려는 이들의 계획을 알게 된다. 루나는 조직의 신임을 얻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정체가 탄로나게 되고 그녀에 의해 기지가 위험해지자 두목은 스스로 그곳을 폭파하고 도망치기에 이른다. 적을 뒤쫓은 루나는 배에 탄 그들을 폭사시키고 총경과 웃으며 바다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황금말(金馬) 타고 별이 된 국민 할아버지 전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