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超人, The super inframan, 1975
1938년에 코믹스가 발간되고 1978년에 정식으로 영화관에 상영되어 초대형 히트를 기록한 영화가 있다. 바로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이다. 그런데 1978년 이전에 슈퍼맨이라는 이름으로 홍콩에서 개봉된 영화가 여기에 있다. 슈퍼맨을 중국어로 번역하면 초인(超人)이다. 1975년 개봉된 <중국초인(中國超人)>은 ‘중국 슈퍼맨’이라는 이름을 내건 쇼브라더스의 작품이다. 이 영화의 영문 타이틀은 The super inframan이다. Man 앞에 붙은 infra-는 접두사로 특정 한도 이내의 것을 넘어섬을 나타낸다고 하니, 영문 타이틀을 역으로 번역하면 ‘(중국)초초인’이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망상을 잠시 해본다.
먼저 이 영화의 포스터를 살펴보자(HKMDB에서 발췌). 위에서부터 훑어내려 가자면 제일 먼저 오각형 안에 영문 S자가 구겨져 박혀있는 어디서 많이 본 로고를 접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슈퍼맨의 로고와 98% 일치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큰 눈과 두 개의 더듬이가 있는 캐릭터가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중국초인이다. 그런데 이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하다. 일본의 특수촬영물 (이하 특촬물) <가면라이더>가 아닌가 하는 강한 확신이 들지만 이는 나만의 생각이라고 여기며 일단 넘어간다. 중국초인 옆에는 그가 활약하는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당시 홍콩 무협영화 포스터의 전형적인 글씨체로 ‘中國超人’이라고 적혀있다. 포스터를 처음보고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다. 한 장의 포스터 안에 미국의 <슈퍼맨>, 일본의 <가면라이더> 그리고 중국의 무협이 혼재되어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오랫동안 꼭 접하고 싶었던 영화였다. 평소 즐겨보는 (쇼브라더스) 무협 영화 TV 채널에서 광고로 이 영화의 한 장면이 잠깐 지나가는데 내가 아는 쇼브라더스에서는 이런 성향의 영화를 만들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며 놀라웠던 건 주연이 이수현(李修賢), 바로 <첩혈쌍웅>의 이수현이란 점이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첩혈쌍웅(1989)>때의 그와 <중국초인(1975)> 때의 그가 외모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1968년에 데뷔하여 쇼브라더스에서 숱한 주연을 맡았던 적룡(1946년생)은 1986년 <영웅본색> 1편에서 이미 상당히 노회한 느낌을 주었으나 1971년 데뷔한 이수현은 (1952년생) <첩혈쌍웅>에서야 진정한 전성기를 펼치지 않았는가.
포스터에 있던 <슈퍼맨>의 로고와 달리, 다행히도 영화에 슈퍼맨의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공격이 있었다. 새로운 캐릭터가 영화에 숨어있었으니 바로 <울트라맨>이다. 적과 싸움을 벌이는 중국초인은 상대하는 괴물이 갑자기 전파 송신탑만큼 커지자 자신도 그만큼 스케일 업을 한다. 적이 노란 광선을 쏘면 중국초인은 빨간 광선으로 대응한다. 손을 십자로 만들어 광선을 쏘는 모습까지 ‘울트라맨’과 똑 닮았다. 그러나 상대하는 괴물들이 대다수 곤충의 모습을 하고 있고 오토바이를 타고 출동하며 머리에 두 더듬이를 장착한 주인공의 모습은 영락없는 ‘가면라이더’다. 가면라이더의 모습에 울트라맨의 능력이라니 다시 한 번 혼란이 찾아온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 수준과는 상관없이 이 영화는 중화권 최초의 특촬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꼽는 SF (무협) 영화의 효시 <촉산(1983, 서극)>과는 촬영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중국초인>은 사람이 슈트를 직접 입고 액션을 하며, 스케일 업 되었을 때도 미리 찍은 영상과 미니어쳐를 배경으로 연기를 하는 촬영 기법을 사용한다. 발사되는 광선 정도를 제외하면 이 영화에는 특수 효과라고 이야기할 것이 없다. 어쨌든 <중국초인>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그간 중화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영화였으며 이와 비슷한 시도는 1988년 엽천문, 양조위 등이 출연하고 서극이 감독한 홍콩판 여성 ‘로보캅’ <철갑무적마리아(鐵甲無敵瑪利亞)>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철갑무적마리아>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우뢰매>가 유행했다.)
<중국초인>은 확실히 당시 일본 특촬물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런 영화의 인기를 의식해서 제작된 영화다. 그 시절 홍콩 영화계는 한 영화사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외화를 수입하면 다른 쪽은 이와 비슷한 내용의 홍콩 자체 영화를 재빨리 만들어 개봉하는 방법을 많이 취했기 때문에, 그 즈음 인기를 끌었던 <울트라맨>이나 <가면라이더> 등을 어디선가 수입했고 이에 발맞춰 <중국초인>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영화가 일본 특촬물의 곁가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영화사를 매도할 수는 없다. 영화사는 수입이 있어야 직원들에게 봉급을 주고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수요가 있거나 관객이 흥미 있어 할 것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며 그에 따른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중국초인>에는 주연인 이수현 이외에 <취권> 1편에서 성룡의 사부 ‘소화자’를 연기한 원소전의 두 아들 원신의와 (취권, 매트릭스, 와호장룡, 킬빌의) 원화평, 황비홍의 임세관 등과 과학연구소의 소장 역으로 187편의 영화에서 활약한 배우이자 가수 왕걸의 아버지인 왕협(王俠)이 출연한다. <중국초인>에서 사실상 연기는 이수현과 왕협 만이 담당한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그나마 이수현도 변신을 하면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수현은 <오호장>에서 적룡, 강대위와 함께 5대장 중 한 명으로 출연하는 등 이 두 사람을 이을 차세대 재목으로 꼽혀왔다. <중국초인>에서는 주연인 지구를 지키는 정의감 넘치는 대원 레이마 역을 맡아 무협 출신이 아닌 척 시치미 떼고 연기한다. 그는 1952년 상하이 태생으로 3세에 가족과 홍콩으로 이주하였다. 가정환경이 좋지 못하여 창문인테리어 업자, 인명구조원, 술집웨이터 등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1970년 쇼브라더스에 입사한다. 얼마 후 <중국초인>을 비롯한 몇 작품에서 주연을 맡게 되나 기대만큼의 성공은 이루지 못하고 1978년에 독립프로듀서 회사를 차려 감독, 편집, 더빙 등의 작업에 주력한다. 특히 경찰 영화에 몰두하였는데 1984년에 <공복(公僕)>이라는 작품의 대본, 감독, 주연을 맡아 4회 홍콩 영화 금상장과 21회 대만 금마장 최우수 주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재등장한다. 1986년에는 만능 영화사를 세워 주성치의 첫 주연작 <벽력선봉>, 주윤발과 함께 한 <첩혈쌍웅> 등의 영화를 내놓는다. 이 시기에 이수현은 주성치, 첩혈쌍웅의 악역 성규안, 무간도의 황추생 등을 길러낸다. 한 때 캐나다 벤쿠버로 이주하기도 했던 이수현은 2010년 이후에는 TV드라마에서 연출 및 연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 줄거리 -
지진과 화재 등의 재해가 갑자기 발생한다. 과학연구소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찰나 괴전파와 함께 외계 생물체의 우두머리는 지구 정복을 선언한다. 연구소가 괴물들의 침입 공격을 받자 리우 소장은 그동안 비밀리에 준비해 온 BDX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바로 사람을 초인으로 변신시켜 지구를 구하려는 것. 연구원 레이마는 약물 주입과 칩 이식의 과정을 거쳐 중국초인이 된다. 중국초인은 차례로 적들을 제압하고 마침내 그들의 근거지로 쳐들어가 수괴를 물리친다. 우두머리를 잃은 외계 생물체들은 근거지가 폭파당하며 그들의 지구 정복의 꿈도 물거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