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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브스 Feb 20. 2019

쇼브라더스의 非무협 표절 혹은 패러디물 (3) 성성왕

猩猩王, The mighty Peking man, 1977

<성성왕>의 인트로

성성이같이 화를 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성성이가 유인원의 일종인 줄은 알고 있었으나 정확히는 어떤 동물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찾아보니 오랜 궁금증이 풀렸다.  성성이는 ‘오랑우탄’이었다. 오랑우탄은 말레이시아의 보르네오 섬과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에 주로 분포한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성성이들의 왕인 성성왕은 내륙인 히말라야에서 발견된다. 사람을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동물이 그렇게 성장할 동안 왜 여태 발견되지 못했을까. 그리고 영문 타이틀은 ‘The mighty Peking man’인데 Peking man 즉, 북경원인 (北京原人)은 구석기 초기의 존재로 남자가156cm, 여자가 144cm정도로 추정된다고 하니 이 또한 영화와 맞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질문은 무의미하다. 이 영화는 무협의 대가 쇼브라더스가 뚝딱 만들어낸 홍콩판 ‘킹콩’이니까.

오랑우탄과 북경원인

성경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저 옛날부터 인간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근본에 대해 고민했고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해왔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동물은 더 이상 문명화된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추정되는 유인원은 잠재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오랜 시간 진화를 거쳐 지구를 지배하듯이 비슷한 단계를 거쳐 다른 유인원도 지능이 꾸준히 발달하면 인간이라는 객체가 미래에는 그들에게 정복당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함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유인원과 관련된 영화는 1933년의 <킹콩>, 1968년 찰턴 헤스턴의 <혹성탈출>부터 2017년 <콩: 스컬 아일랜드>와 같은 해 <혹성탈출: 종의 전쟁>까지 수 십 년에 걸쳐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1933년 <킹콩>과 1968년 <혹성탈출>
2017년 <콩: 스컬 아일랜드>와 <혹성탈출: 종의기원>

유인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두 시리즈이지만 <혹성탈출>의 유인원은 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생명체 또는 동물이며, <킹콩>의 유인원은 그야말로 괴력을 발휘하는 괴수이다. <성성왕>은 후자와 결을 같이한다. 1933년의 <킹콩>은 기획이 엎어진 공룡 영화의 유산으로 제작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리 제작된 티라노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 등의 공룡이 등장한다. 그러나 공룡도 때려잡는 킹콩은 사람에 붙잡혀 해골 섬에서 뉴욕으로 끌려와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카메라의 플래시에 놀란 킹콩은 흥분하여 도시를 파괴하기에 이르고 저지하는 인간에 대항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오른다. 하지만 연정(?)을 품었던 여인의 안전을 위해 죽음의 길을 택한다. <성성왕>이 타겟으로 잡았을 1976년작 <킹콩>은 1933년작과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우선 1933년의 킹콩은 스톱모션으로 연기하지만 1976년의 킹콩은 주로 슈트 액션으로 연기한다. 선대의 킹콩은 무섭고 강인한 괴수로서의 면모를 많이 보여줬다면 후대의 킹콩은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공룡과의 격투는 물론 없으며 싸움도 시시한 편이다. 이 때의 킹콩은 한 여성과 교감하는 로맨티시즘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르는 1933년 킹콩과 WTC에 오르는 1976년 킹콩

<성성왕>은 서양의 <킹콩>들과 설정이 약간 다르다. 섬에 살면서 원주민들의 제물을 이미 받아먹는 킹콩과 달리 성성왕은 오랜 시간 히말라야 산기슭에 살다가 사람들의 거처로 처음 내려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또 놀랍게도 성성왕은 오랫동안 친구처럼 지내온 인간 여성(아웨이)이 있었다. 그녀는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언어도 잃은 채 성성왕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다.정글에서나 볼 법한 나무 줄기를 이어 타며 등장하는 그녀는 <타잔>이나 <정글북> 모글리의 여성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여성과 성성왕의 행복한 일상은 성성왕을 잡으러 온 조니의 등장으로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 아웨이는 결국 자신과 같은 인간인 조니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며, 아웨이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것 같은 성성왕은 조니를 조종하는 루에게 포획되어 홍콩으로 건너오게 된다. 이는 영화초반 조니가 홍콩에서 히말라야로 넘어오게 되는 이유와 정확히 대응된다. 조니는 자신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여자친구가 자신의 친구와 바람이 난 것을 알고 홧김에 히말라야로 건너오게 되니 말이다. 성성왕이 조지가 된 셈이다.

성성왕의 등장
여자친구와의 이별로 히말라야로 향하는 조니
타잔처럼 등장하는 아웨이는 비행기 사고로 혼자가 되었다
조니와 사랑에 빠진 아웨이와 홍콩으로 옮겨지는 성성왕

뉴욕에 온 킹콩처럼 성성왕 역시 홍콩에서 돈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웨이는 자신의 친구인 성성왕이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된 것에 실망하며 루에게 항의하러 간다. 그러나 루는 금발의 아름다운 여인인 아웨이에게 오히려 나쁜 짓을 시도하고 이를 본 성성왕은 드디어 참았던 화를 폭발시키고야 만다. 그리고 킹콩처럼 성성왕도 결국 인간들과 대치하고 홍콩의 고층빌딩에 올라갔다가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인 아웨이는 성성왕과 함께 죽게 되고 남성인 조니 만이 살아남는다.

구경거리가 된 성성왕은 아웨이가 나쁜 일을 당할 것 같자 화가난다
도시에 출몰한 킹콩과 저지하는 군대
아웨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성성왕은 숨진다

내용도 미술효과도 많이 엉성하고 조잡한 표절 작품 이지만 <성성왕>이 한 해 전의 <킹콩>보다 훌륭한 점도 있다. 1976년의 <킹콩>은 슈트와 로봇의 두 가지 방법으로 액션을 구사한다.그러나 아쉽게도 슈트로 제작한 킹콩과 로봇으로 제작한 킹콩의 움직임이 많이 다르다. 우스운 얘기지만 <성성왕>은 슈트로만 액션을 진행해서 그럴 일이 없다. 인간 여성과 교감을 이루게 되는 플롯도 급작스럽게 친해지는 1976년판 <킹콩>보다는 차라리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성성왕>쪽에 더 수긍이 간다.

성성왕과 1976년 킹콩
성성왕 손 안의 어린 아웨이와 킹콩 손 안의 앤 드완(제시카 랭)

여성 주인공 아웨이 역으로 출연하는 Evelyn craft는 1951년 스위스에서 태어났으며 1972년 이탈리아 영화인 <Casa d'appuntamento (영문 타이틀 The French Sex Murders)>로 데뷔했다. <성성왕>을 찍던 해인 1977년 <초탐여교와(俏探女嬌娃, Deadly angels)>라는 영화에 출연하며 홍콩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1981년 은퇴 후 아프리카에서 자선활동에 전념한 그녀는 2009년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남성 주인공인 조니 역의 이수현은 지난 글 참조)

<성성왕>속의 에버린 크래프트

악역인 루로 출연하는 곡봉은 376편의 영화에 출연한 대배우로 <신독비도 (신외팔이, 新獨臂刀, New one-armed swordman, 1971)>, <유성호접검 (流星胡蝶劍, Killer clans, 1976)> 등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연기했으나 필모의 대부분은 조연으로 활약한 배우이다 (그러나 김지미의 700여편, 신성일의 541편에는 미치지 못한다). 쇼브라더스의 거의 모든 영화에 카메오라도 출연한 그는 감히 이 영화사의 대표배우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1930년 상하이 태생의 그는 2016년까지도 영화 출연을 했으며 <무송(武松, 1982)>, <대죄적여해(待罪的女孩, 1983)>등의 영화로 제19회, 20회 대만 금마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다양한 작품 속의 곡봉


- 줄거리 -

조니는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여자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친구와 정분이 난 것을 알고 거대 유인원이 나타났다는 히말라야로 홀연히 떠난다. 그와 함께 유인원을 잡으러 온 루는 부상자를 가차없이 사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냉혈한이다. 우연히 거대 유인원 성성왕과 맞닥뜨린 조니는 부상을 당하고 성성왕 곁에 있던 여인(아웨이)이 그를 치료해준다. 조니는 그녀가 부모와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해 성성왕에 의해 키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곧 둘은 사랑에 빠진다. 조니는 루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녀와 성성왕을 함께 홍콩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루는 성성왕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했고 아웨이를 겁탈하려다가 성성왕의 분노를 사게 된다. 흥분한 성성왕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인간들의 공격을 피해 고층 빌딩 꼭대기로 도망한다. 아웨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성성왕은 무자비한 인간의 공격에 최후를 맞이하고 조니는 쓰러진 아웨이를 품에 안고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본다.

쇼브라더스 영화 같지 않은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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