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히 쥐꼬리 만한 봉급이지만, 입사 초기 쥐 꼬랑지의 반의 반 토막 만한 월급봉투를 받아 들던 시절 얘깁니다.
이 곳 화류계란 데가 평소에는 남들이야 뭐라든 간에 조직의 간섭 비교적 덜 받으며 저 좋은 일한다는 그 맛에 제법 유쾌하고 활기찬 나날들이 지속되다가 한 달에 단 하루 새경 받는 날만 왔다 하면 무거운 정적과 팽팽한 긴장 속에 빠져들고 말지요.
입사하고 첫 월급날이었습니다. 경리과 여직원이 우리 부서의 문을 열고 들어와 봉투뭉치를 전하면 부서장이 개인들에게 다시 봉투를 나눠주는 식이었지요. 제게도 봉투 하나가 전해지더군요. 순간 제 선배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제게 집중되고 있음을 동물적 본능으로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순간 제게로 집중된 그 눈빛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요.
“오냐, 그래 니가 ‘오로지 음악이 좋아서, 급여의 많고 적음 따윈 따지지 않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화류계 뻘밭으로 뛰어들었다!’고 네 입으로 분명히 말했것다. 그래 오냐, 이 봉투를 보고서도 그 소리가 다시 나오나 내 눈으로 어디 한번 확인해 봐야겄다!!”
뭐랄까, 동병상련의 측은함을 가학적인 쾌감으로 뒤덮고 있었다고 할까요?
아, 순간 아뜩하더군요. 어쩔 것인가? 이 자리에서 과감히 잘못 꿴 첫 단추를 풀고 걍 유턴을 할 것인가? 그냥 털썩 눌러앉아 버릴 것인가? 그래도 내 친구들은 날 ‘20세기 최후의 낭만주의자’라 일컬으며, 나의 화류계 진출을 마치 자신들의 이상이 실현이라도 된 것처럼 축하했었는데, 힘 한번 제대로 못 줘보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단 말인가?
전 벌떡 일어섰습니다. 뚜벅뚜벅 걸어 복사기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곤, 봉급봉투를 복사하기 시작하였지요. 그러자, 이미 오래전에 회사를 떠난 모 이사께서,
“아니, ***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하길래,
“아, 예, 확대복사 중입니다. 금액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요..”
순간 사무실에선 폭소가 터졌고, 그날 밤 나는 선배들과 함께 사당동 부대찌개 집에서 라면사리를 일곱 개쯤 추가해가면서, 떡이 되도록 마셨지요. 그날 이후 정식 화류계 맨으로 조직의 라이센스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직원들에게 월급봉투를 돌렸습니다. 모두들 지난 한 달 일터에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註> 새경
농가에서 주인이 머슴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주는 곡물이나 돈.
2001. 3.
Con m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