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낙관-절충주의자의 여유

음악가의 초상 - 샤를 카미유 생상스

by 콘모토


샤를 카미유 생상스 (Charles Camille Saint-Saens, 1835-1921)


생상스의 음악은 해학과 여유로 넘친다. 형식은 단정하고 수법은 명쾌하다. 흔히 ‘프랑스적’이라고 할 때 연상되는 현학적 표현이나 고혹적인 향기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절제된 구성 안에서 구수한 말솜씨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
‘파리’ 출신이지만 ‘빈’ 냄새가 풍긴다. 작품도 교향곡, 교향시, 협주곡, 실내악 하는 식으로 자못 정통적인 분야에 몰려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의 베토벤'이라는 별명이 그럴듯하게도 들린다.

“내게 있어 음악이란 곧 형식이다.”
걸작 <오르간 교향곡>을 듣고 나면 이 한마디가 그의 생각을 분명히 꿰뚫고 있음이 자명해진다. 원숙기인 쉰한 살 때 등장한 이 기념비적 대작은 공고한 형식 위에 쌓아 올린 화려장대한 음의 건축물에 비유되곤 한다.
생상스는 모차르트에 비견되는 천재를 보이며 일찍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 피아니스트 숙모 밑에서 음악수업을 받으며 다섯 살 때 피아노 반주가 붙은 가곡을 작곡하고 열한 살에 프레이엘 음악당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하는 놀라운 조숙함을 보였다. 빼어난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이자 마드레느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라는 명연주자의 이력은 이미 소년시절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그의 천재는 여든여섯 해의 인생역정 속에서 바래고 걸려지며 풍요롭고 원숙해졌다. 홀어머니를 여읜 사십 대 이후부터 시작된 방랑벽은 작품에 독특한 이국적 체취와 세상을 멀리 보는 느긋한 시선을 부여했다.




생상스는 곡을 가능하면 쉽고 화려하게 쓰려고 했다. 이것이 때로는 작품에 깊이가 없다는 평가를 낳기도 했지만 비평가들의 독설에는 평생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음악뿐 아니라 철학, 문학, 천문학에까지 해박한 지식을 갖춘 교양인이었으며 실제로 시와 연극, 미술 등에 관한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관심과 지식을 모호하거나 혼란스런 현학취미로 가져가지 않았다. 작품의 저류를 흐르는 생에 대한 낙관과 건강미에서 그의 천품을 엿볼 수 있다.


생상스가 ‘독창적인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얘기는 어떤 면에서 옳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기꺼이 인정했으며, 자신만의 창작활동에 즐거운 마음으로 몰입했다. 170여 곡의 작품은 여러 음악가들의 시도를 자기 식으로 수용하고 용해한 결과였다.

‘여든 여섯, 알제리에서 객사’라는 마지막 장면은 방랑음악가의 일생을 더욱 극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생상스의 재능과 열정을 사랑했던 프랑스인들은 그의 유해를 따뜻하게 맞아들여 국장으로 예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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