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의 레퍼토리

콘모토의 명상적 음악듣기_03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by 콘모토

내가 계속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살게 된다면 마지막까지 내 곁을 지켜줄 곡은 무엇일까?

머뭇거리거나 망설일 것 없다. 답은 확고하다.


첫새벽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둥 둥 둥 둥 팀파니 연타와 함께 창 밖이 부옇게 밝아오며 세상이 열린다. 나는 이 곡을 내 운명의 레퍼토리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이었을까? 거실 쪽에서 팀파니가 둥 둥 둥 둥 네 번 울리고 목관악기에 이끌린 테마가 퍼져가기 시작하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베토벤을 듣고 있던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곤 하던 장면이 기억에 또렷하다. 건조한 테마에 곡상도 장대하고 어떤 면에서는 관념적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어떻게 어린 마음에 이처럼 강렬한 문양을 새겨 놓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알기 힘든 일이다.

사람은 열 살 이전에 친숙하던 풍경에 평생 끌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유년기에 이뤄지는 세상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는 것이리라. 예술적 체험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오이스트라흐가 앙드레 클뤼탕스 지휘 프랑스국립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하는 EMI라벨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른바 결정반이다.

기라성 같은 바이올린의 별들 중에서도 연주사를 양분하는 위대한 두 거장이 있었으니 바로 야샤 하이페츠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라는 것, 그중에서도 하이페츠는 기교파요 오이스트라흐는 정통파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따사롭고 아름다운 소리로 최고봉을 이룬 미샤 엘만이라는 또 다른 명장이 하이페츠의 신묘한 연주 앞에 무릎을 꿇고 평생 패배감 속에서 살아갔다는 일화도 아버지를 통해 들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바이올린 거장들의 계보


내가 처음 접한, 그리고 제일 자주 들었던 녹음은 아이작 스턴과 레너드 번스타인, 뉴욕 필의 콜롬비아 라벨이었는데 이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꼭 “아이작 스턴의 바이올린은 거칠고 남성적”이라는 촌평을 덧붙였다. 그리하여 나의 뇌리엔 하이페츠는 기교파면서 여성적, 스턴은 거칠고 남성적, 오이스트라흐는 학구적인 정통파라는 인식이 각인되었다. 말하자면 1970년대 초 초등생의 머릿속에 바이올리니스트의 기초적 계보도가 그려졌고 이는 세월이 흐르며 헨릭 셰링, 아르투로 그뤼미오, 나탄 밀스타인, 지노 프란체스카티, 레오니드 코간 등으로 확장되어 갔다.


음악감상의 이력이 쌓이면서 장년 이후의 스턴은 연주보다는 유대계 연주마피아의 대부(代父)역에 주력한 게 아닐까 하는 짐작도 해보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한참 후의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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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70년대 초로 돌아간다. 그날도 멀리서(라고 해야 마루에서) 둥 둥 둥 둥 팀파니가 울렸고 오보에가 인도하는 목관 그룹이 운명의 레퍼토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울려 퍼질 즈음 마루로 나오니 아버지는 카키색 담요를 온몸에 두른 채 난롯가에 앉아 곡에 몰입하고 계셨다. 나도 곁에서 집중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1악장의 발전부가 이어지자 아버지가 뚜벅 입을 열었다. “자, 지금부터는 같이 울어야 돼..”


현과 목관이 탄식하듯 읊조리는 위로 바이올린 솔로가 슬픈 명상곡을 이어가는 1악장의 발전부. 오로지 베토벤에게서만 만날 수 있는 명 장면이다. 서늘하고 품격 있는 슬픔, 굳이 부연하자면 감상(感傷)이 아니라 정신의 아픔. 훗날 동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베토벤의 위대함은 소나타 형식을 풀어가는 그 솜씨에 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제시된 주제들을 화학적으로 변용하며 빚어가는 그만의 묘법이다”라고 떠벌이곤 했는데, 이런 감상은 소나타 형식이나 발전부라는 표현을 몰랐을 뿐 먼 옛날 내 안을 휩쓸고 지나갔던 감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클래식음악을 고상하다고 할 때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어렴풋이 엿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소나타 형식과 발전부 – 베토벤의 묘법


세월이 흘러 1980년대 말. 학업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서 음반회사의 클래식음악 기획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굴지하던 대형 음반사의 공채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는데, 문제지를 받아보니 클래식 음악의 악식, 작곡가와 작품, 연주자와 레코딩 등에 관한 지식을 묻는 다양한 문제가 단답식과 선다식으로 나온 후 마지막 문항은 분량에 구애치 않고 자유롭게 써내려 가는 일종의 에세이였는데, 문제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음반 한 장과 그 선정 이유를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물론 아이작 스턴과 번스타인, 뉴욕필이 연주하는 콜럼비아반 베토벤 협주곡에 관해 답안을 쓰기로 작정했고 그 내용은 아버지와 함께 베토벤을 듣던 1970년대 초의 저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에 펜이 저절로 움직인다는 기분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답안지를 쓰고 있게 한 바로 그 근원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는 기분, 그것은 답안지이면서 동시에 나의 역사였다. 인생이 풀려가는 모습에서 자신의 운명을 느끼는 짜릿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답안지 때문이었던지 첫 출근을 하니 이번 신입사원 중에 쓸 만한 물건(?)이 하나 들어왔다는 은근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운명적인 업계 등업의 발판이 되었고, 이야기의 근원을 찾자면 먼 옛날의 어느 겨울저녁으로 다시 거슬러 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열한번째 해가 되는 올해도 네 번의 팀파니 소리와 함께 한 해를 열었다.


내 안에 ‘나다움’이 존재한다면..


지금 나는 왜 이런 모양으로 살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책 읽고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가끔씩 펜을 들어 무언가 써보려고 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인생을 아는 데는 평생이 걸리는 것이라면 내게 주어진 생을 다 할 때에야 그 답을 알게 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내 안에 ‘나다움’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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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어느 겨울 저녁 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내 운명의 레퍼토리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 바이올린: 아이작 스턴,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 뉴욕필하모닉 연주 (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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