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노인, 노후준비 실내악

by 콘모토

이러다간 제대로 된 장래희망 한번 가져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릴 땐 장래희망이 무어냐는 질문에 경찰관이나 선생님이라고 말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 또래 애들이면 다 하는 얘기였다. 철이 들면서 법조인이셨던 아버지처럼 장래희망 법관! 하고 얘기를 했던 것도 같은데 주변에 법조인 집안이 더러 있는걸 보면 터무니 없는 건 아니어도 내 실력과 의지력으론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언론인, 교수 등으로 장래희망이 바뀐 것도 같지만 모두 시류에 따른 것일 뿐 별 절실함은 없었다.


내겐 어린 시절부터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성취를 위해 악착같이 매달리는 집요성이 부족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앞으로도 결코 바뀔 수 없을 것이다. 첫째는 타고난 천품 탓이겠지만 후천적 경험도 이런 천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 그럭저럭 상위권에서 놀던 학교 성적이 고교시절부터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정신이 딴 데 팔린 것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줄 알고 있던 놈이 콘서트고어가 되어 국립극장을 향해 장충동 언덕길을 노상 오르고 있었던 탓이다(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전까지는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중요한 클래식 공연이 주로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상황이 이러했지만 정신 차리라든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따끔한 얘기를 들어본 기억은 별로 없다. 자식의 자율성을 믿어주신 것이리라. 차라리 당시 유행하던 가출을 하거나 비행을 저지르거나 했다면 제대로 훈육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내면에 자신만의 또 다른 집을 짓고 그 안에 은거하는 타입이었다. 훗날 알게 된 그럴듯한 표현을 써보자면 '내면의 은신처'를 만든 셈이다. 특정한 사상을 받드는 확신범처럼 겉으론 현실을 수용하는 듯 위장한 채 정작 현실적 규율이 미치지 않는 망명지에서 살아갔던 것이다.


콘서트고어, 내면의 은신처


로맨틱한 사건을 원한다면 먼저 로맨티스트가 되라는 이병주선생의 ‘선동적인’ 문장이 금과옥조가되고 말았다. 음악과 문학은 양대 도피처였고 그곳에서 나는 시한부의 구원을 얻었다. 대학과 대학원시절을 거치며 증세는 회복불능으로 악화되어 갔는데 당연히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대가이기도 했다.


고전음악듣기에 입문하여 소위 공통관습시대 3백년의 어지간한 레퍼토리들을 섭렵하고 나면 저마다 자신의 궁극적 귀의처를 찾게 된다. 어떤 이들은 화려 웅장한 오페라의 세계, 그것도 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며칠씩을 바쳐야 하는 장대무비한 바그너의 악극으로 빠져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당대(當代)의 방식에 따라 이른바 ‘정격적으로(authentic)’ 연주하는 고음악 세계에서 최종적 위로를 구하기도 한다. 브루크너의 궁륭스럽게 지루한 교향악의 향연 속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자신의 취향 외엔 어떤 강요에도 이끌리지 않은 자발적인 결정이므로 자신을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최후의 귀의처는 현재로선 실내악이다. 실내악이라는 악곡이 지닌 속성과 나라는 사람의 성향 사이에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게 실내악이란 소리의 관능성은 최소화하고 사변성은 최대화한 가장 순수한 의미의 절대음악이다. 풍성한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에서 온갖 거품과 색조를 다 걸러내고 남은 마지막 골조가 실내악이다. 감상자는 절대적 고독과 자유 속에서 작품을 구축하고 있는 나름의 논리와 문법을 추구해가며 곡 속에 내재한다고 여겨지는 의미를 탐색한다. 소리 그 자체에 탐닉하여 듣고 또 듣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의미 있어 보이는 무언가를 길어 올리려는 시도. 더 깊이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내 성격에 맞는 모양이다. 예술을 일컬어 니체는 ‘삶이 고통이라는 문제에 대한 가장 수준 높은 해결방식’ 이라 정의했다는데 아마도 내 기분이 이런 설명과 비슷할 수도 있다.


실내악, 내 최후의 귀의처


어려서부터 심심해 본 적은 별로 없었지만 곁에 실내악의 무궁한 보고가 있으니 앞으로도 그리 심심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처럼 베토벤 현악사중주의 어느 느린 악장을 듣다가 공책을 펼치고 연필로 무언가 끄적거리다 보면 시간이 갈 테니까 말이다.


결국 단 한번도 장래희망이 무어라고 번듯하게 말해보지 못한 채 만 57년3개월을 살고 간 베토벤보다 더 늙어버리고 말았지만 그의 현악사중주 16편을 비롯한 주옥 같은 실내악곡들이 내 영혼을 적셔 줄 필생의 양식으로 남아있다. 더 이상 장래희망이 무어냐고 아무도 묻지 않지만 이만하면 노후 준비는 완벽하다.


2019.9

Con 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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