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울엄마

by 연우의 뜰


2005년부터 10년을 넘게 인천과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VIP전담간호사로 근무를 했습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고, 학업을 계속하느라 주말에도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어떤 날엔 바닥난 체력과 무너지는 자신감에 허덕이면서, 또 어떤 날엔 다시는 일에만 묻혀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또 어떤 날은 부모님의 기대를 져버리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버티고 견뎠습니다.


오래 전 어느 7월의 여름이였어요. 가장 바쁜 오전 근무중에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딸이 일하는데 방해될까봐 어지간하면 절대 전화 안하시는 분이라 놀란 마음에 얼른 전화를 받았습니다.

" 현경아, 엄마가 잠시 다녀간다. 니가 좋아하는 나물반찬이랑 국거리 만들어 났으니 귀찮다고 밥거르지 말고 챙겨먹어라. 니가 좋아하는 맥주랑 에이스도 사다놓았다. 피곤한데 마트들러 장보지 말구 집으로 바로 가거라. 엄마는 동서울터미널에서 2시차 타고 갈거야"

뭐 대단 일을 한다고,필요할 때만 찾는 딸이 뭐가 이쁘다고, 강원도 평창에서 새벽버스를 타고 인천까지 오셔서 반찬만드느라 힘들었을텐데. 차비랑 용돈챙겨드릴까봐 , 딸이 돈쓸까봐, 얼굴도 안보시고 그냥 가버리신 엄마.


엄마1.jpg 너무 행복하는 그 때 그 시절 엄마의 문자들


저녁무렵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맥주, 콜라, 우유까지 사들고 오시느라 얼마나 무거웠을까..콩나물국이랑 김치찌개 그리고 오이지무침, 고사리나물에 계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와 에이스, 황도 통조림까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20년 동안 우렁각시였던 엄마. 멀미도 엄청해서 내가 자가용으로 모시고 다녀야만 하는데, 병원에서 애쓰는 딸이 안쓰러워서 새벽에 눈뜨자 마자 서울로 오는 버스를 탔을 엄마.

엄마는 정말 행복하셨을까요?


엄마2.jpg 딸이 좋아한다고 냉장고에 맥주를 채워주신 엄마



한 번은 억새가 은빛으로 출렁이는 10월에 엄마와 함께 한강고수부지에 갔던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사진실력을 자랑도 하고 싶고 엄마와의 추억도 만들고 싶은 욕심에 돗자리랑 간식거리도 챙겼습니다.

아뿔사, 겨우 사진 딱 두장을 찍었는데, 그만 밧데리가 나가버렸습니다. 밧데리 충전하는 일을 깜박했던 것입니다.


"항상 무슨일을 하든지 사전준비를 잘해야 해. 엄마랑 연습삼아서 나왔으니까 다행이지
실제로 사진찍으러 멀리 나갔다가 낭패를 봤으면 어쩔뻔했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미리미리 꼼꼼하게 챙기렴"


제가 살아가는 동안 아마 평생 기억할 엄마 말씀일거에요.

엄마의 사랑은 장소와 세월을 초월하여 유비쿼터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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