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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Mar 16. 2024

뭉클해지다

봄이 눈앞까지 왔다.

겨우내 날마다 어르신들로 시끌벅적하던 마을회관은 이제 고요하다.

작년 가을에 심은 양파와 마늘을 가꾸고, 올해 심을 모종 자리를 만들기 위해 트랙터로 밭 가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진다.   

남편은 다육하우스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올해도 복분자와 땅콩, 고추 농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장 '누구에게 밭갈이를 부탁해야 하나' 걱정이었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오늘 새벽, 갑자기 연우의 뜰 하우스 앞에서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나가보니 옆 마을 사는 남편의 이종사촌 도련님이 본인의 트랙터를 몰고 와 우리 밭을 갈고 있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땅콩밭을 다 갈아놓았다.


태양이 무섭게 이글거리던 지난여름에는 우리 진돗개 집을 지어주느라 이틀 내내 비 오듯 땀을 흘렸었다.

농사에 관련된 최근 소식이나 이슈들을 알려주었고, 내 차에 이상이 있을 때 잘하는 정비소를 소개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참치회, 갈치조림과 아귀찜 맛집도 알려주었다.


딸바보, 아들바보인 도련님은 실은 아내 바보다. 일하다가도 동서에게 전화 오면 즉각 분부대로 거행하고, 음식 자랑 살림 자랑에 신이 난다. 지난겨울에는 동서의 고향인 태국에 한 달간 온 식구가 머물다 왔는데, 우리 부부 준다고 태국 간식도 잔뜩 사 왔다.


농사일이 서툰 우리 부부에게 이보다 더 각별한 인연이 있을까.

밭갈이를 마친 붉은 황토들을 바라보니 벌써 마음이 벅차다.

도련님 덕분에 올해 복분자와 땅콩 농사도 거뜬하게 해낼 것 같다.


주말이기도 해서 아이들 간식과 맥주 안주 하라고 솜씨는 없지만 얼른 주방에서 새우튀김을 만들어 슬쩍 내밀었다.

마른 먼지만 풀풀 날리는 각박해지는 세상이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먼저 돕는 손이 되고 싶다.

뭉클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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