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이 죽으면 그 즉시 민법 제997조, 제998조에 의하여 사망자의 주소지에서 상속이 개시된다. 민법 제1000조에 의해 상속의 순위는, 자녀, 부모, 형제자매, 4촌 순이다. 후순위 상속인은 선순위 상속인이 없을 때에 한하여 상속받는다. 사망자에게 자녀가 있었다면 부모는 상속받지 못하고, 자녀가 없었어야 비로소 부모가 상속받는 식이다.
이 중 배우자는 민법 제1003조에 의하여 특별상속을 받는다. 자녀나 부모가 상속을 받을 경우 배우자는 공동 상속인이 되고 그 상속분의 1.5배를 상속받는다. 만약 자녀나 부모가 없어 형제까지 상속 순위가 내려왔다면, 위 특별 규정에 의해 배우자만이 단독으로 전부 상속받는다. 상속분은 모든 상속 재산에 균등하게 배분되나, 모든 상속인들이 동의한다면 그 배분 비율을 달리할 수 있다.
시신을 처리하는 것도 허투루 처리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222조 제1항은 변사자의 검시를 규정하고 있다. 사인이 규명되지 않은 사망자는 모두 변사자다. 다시 말해, 병원에서 사망판정 받지 않은 모든 사망자는 변사자다. 변사자는 사인이 규명될 때까지 검사의 지휘 아래 수사기관이 시신을 검시하고 수사하여야 한다. 검시는 눈으로만 시신을 보는 행위라 사인을 제대로 규명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
부검은 원칙적으로 사체를 압수해야 한다. 따라서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거하여 압수하거나, 사체의 관리자인 유족의 동의를 받아 사체를 임의제출받아야 한다. 영장만 있다면 유족 동의 없이도 부검이 가능하나 대부분 유족의 동의 하에 부검을 실시한다. 부검까지 마쳤다면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시신에서 얻을 수 있는 증거물은 모두 확보한 것이다. 수사기관은 더 이상 시신에서 얻을 증거가 없으므로 검사의 지휘 아래 유족에게 시신을 인도한다. 유족은 이 때부터 비로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일단 규정과 법이 알려주는 사망의 절차는 그렇다.
2. 늘 머리로만 아는 것과 몸으로 부딪히는 일 사이에는 대단한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재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로스쿨 1학년 때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토요일 밤 집에서 잠에 든 아버지는 일요일 낮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부검을 하지 않았기에 4년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의 사인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자다가 심장마비가 온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나는 그 때 광주에 있었다. 본가는 서울이었다. 급작스런 비보를 전해듣고 학교가 있는 광주에서 집이 있는 서울로 급히 향했다. 입석으로 어렵게 표를 구해 탄 KTX 안에서부터, 휴대폰에 부리나케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모운아, 장례식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운아, 아버지가 집에서 돌아가셔서 경찰서에도 가야 한다는데 어떻게 할까. 모운아, 납골당과 화장터를 구해야 한다. 청구서들은 하나같이 나의 결재와 동의를 요구했고, 꽤 많은 돈이 들었으며, 어느 하나 그 책임이 가벼운 것이 없었다. 엄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빈소 안 방에 들어가 나오지 못했다. 사회에 발을 내딛지 않은 스물다섯이 처음으로 느낀 죽음의 무게란, 슬픔이 아닌 돈과 책임이었다.
아버지의 장례 절차와 상속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는 데에는 3개월이 걸렸다. 요구하는 서류가 무척 많았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서류를 이따만큼 떼어다가 마르고 닳도록 도장을 찍어, 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출해야 했다. 개중에는 건조하지 않은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장례식 마지막 날 운구차의 운전기사는 그에게 필요한 돈과 서류를 받더니, 씩 웃으며 내 앞에 손가락을 튀겼다. 새벽같이 여기까지 왔는데 밥값도 좀 챙겨 달라고 했다. 나는 지갑을 꺼내 아무 말 없이 3만원을 쥐어 주었다. 그러나 어린 상주를 향해 지어보낸 그의 찝찝한 표정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썩 잊혀지지 않는다.
3. 꼭 3년이 흘러 변호사가 되었다. 군에 입대해 군법무관이 되었다. 군검사가 잠시 자리를 비워, 임시로 대신 군검사를 맡은 기간의 마지막 연휴 밤이었다.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사망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다급하게 옷을 갖춰 입고 시신이 모셔져 있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영안실로 약 100m를 운구하는데, 사설 구급차 업체가 10만원을 요구한 탓이었다. 어수선한 사이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유족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망연자실한 채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눈동자,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는 듯 숨을 헐떡이며 내는 울음소리. 유족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을 알 수 있었다.
유족이 부검에 동의하여 부검이 진행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에는 유족 입회가 불가하고, 수사기관 관계자만이 유리창 너머로 부검의 진행 경과를 볼 수 있다. 널찍한 방에 6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6개의 부검 팀이 동시에 시신 6구를 각각 부검했다.
시신이 놓이면 가장 먼저 두피를 절개하고 톱으로 두개골을 절삭한다. 뇌를 적출하면 가슴을 Y자로 절개한다. 갈비뼈를 들어내고 뱃속에 출혈이 있는지, 혈관이 막히지는 않았는지 관찰한다. 관찰이 끝나면 장기를 적출해 시료를 채취한다. 이제 시신을 뒤집어 팔과 다리의 피부를 벗겨낸다. 여기까지 이르면, 부검 중인 시신은 사람의 형체를 거의 잃어버리고, 날것의 근육이 다 드러난 인체 표본같은 모습이 되어버린다. 근육조직 검사까지 마치면 시신을 봉합한다. 엉성하게 봉합된 시신 틈 사이로, 장기들이 다 적출되어 뻥 뚫려버린 가슴과 배 안으로, 잘라낸 두개골과 남은 장기를 바구니째 털어 넣는다. 부검이 끝난 시신은 밖으로, 새로 부검할 시신은 안으로,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간다.
부검이 끝나면 수사관들은 부검이 끝난 시신의 얼굴을 확인해야 한다. 시신이 뒤바뀌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검이 끝난 시신의 흉한 몰골이 수의로 덮인 채, 얼굴만이 삐죽 나와 있었다. 하지만 한 눈에도 부검한 시신임을 알 수 있었다. 두개골이 없어 힘없이 푹 들어간 머리와, 목덜미의 칼자국들은 수의로도 채 가려지지 않았다. 부검의는 군검사님 소속 부대 장병이 맞냐고 물었다. 나는 건조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시신을 인도하기 위해 만난 유족들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힘없이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격앙된 눈빛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나는 숨을 조용히 삼키며, 이제 아드님의 시신으로부터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확보하였으므로, 아드님의 시신을 유족께 인도한다고 안내했다. 사체인도지휘서를 내밀며, 이 서류로 이제 장례를 치르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망자의 아버지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서류에 서명했다.
군사경찰 수사과장은 담배를 물며 무척 불쾌해했다. 군사경찰 수사관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늘 사망사건 때마다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냐며, 이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투덜댔다. 옆에 있던 수사관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짓궃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군검사님 오늘 처음 부검 보셨으니 액운을 쫓기 위해 내장국밥을 꼭 먹어야 한다며 키득거렸다. 키득거리는 수사관 뒤편으로, 사망 4일만에 뒤늦게 치를 장례를 논의하기 위해, 유족들이 분주히 지나갔다.
4. 죽음은 그 사람이 쌓아올렸던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다. 시신을 만져본 사람들은 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해도 따뜻하고 부드러웠을 그의 몸은, 영안실의 냉장고 안에서 싸늘하고 딱딱하게 식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그가 살아숨쉬며 세상에 쌓아올렸던 모든 기록과 재산이, 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다. 그것은 그의 세계에 빚지고 기대었던 사람들의 세계가 함께 무너지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세상 일이 그러하듯 무너진 폐허를 다시 일으켜세우고, 정리하는 일도 누군가의 품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누군가들은 그렇게 다른 이의 슬픔과 폐허에 기대어 품을 팔아 밥을 먹고 산다. 법조인의 법무도 사실, 그러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감각에 무뎌지기도 하는 존재들이다. 4년 전 나에게 손가락을 튕겼던 운전기사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운구차의 운전기사도, 키득대는 수사관들도 모두 일상처럼 만난 타인의 슬픔에 무뎌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이 세상을 사는 데 훨씬 간편하다는 것쯤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5. 얼마 전, 예하부대 행정보급관이 병사에게 법률상담을 짧게 해 줄 수 있는지 요청해왔다. 소속대 병사가 최근 부친상을 당한 후 상속 문제로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있어서, 간단히 이야기 들어줄 수 있겠냐는 취지였다. 무척 이례적인 문의였지만, 일단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이윽고 전화기를 넘겨받은 스물 네살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삼형제만이 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첫째가 상속 절차에 협조하지 않아 상속 절차가 지지부진하다고 했다. 삼형제의 상속분을 계산해 알려주고, 공유물은 향후 처분이 곤란해지니 가급적 상속 협의를 하는 게 좋다는 FM에 가까운 답변과, 제출할 서류의 작성 방법을 간단히 알려주었다. 24살 상병이 다시 물었다.
“제가 지금 죽으면 저희 첫째에게 상속분이 간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법이 개정되어서 이걸 못 가져가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속칭 구하라법이라고 불리는, 상속법 개정안을 물어본 듯 했다. 개정 논의 취지를 구구절절 설명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봐야죠. 그런 건 생각하지 말아요. 열심히 살아서 빛도 보고 즐거운 날도 봐야죠. 이것도 다 지나가요.”
6. 법은 표정이 없다. 건조하다. 그래서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대로만 굴러가는 세상이란, 최소한으로만 겨우 굴러갈 수 있는 허약한 세상이다. 슬픔과 폐허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던 스물 다섯의 나에게, 표정을 읽고 공감하며 손을 내밀던 사람들은 법이 규정한 의무 따위는 없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무너진 내 세상에 기꺼이 손을 넣었다. 그런 단단한 사람들의 마음이 허약한 세상을 곳곳에서 떠받치고 있다.
법무는 최소한의 도덕인 법을 안내하는 일이기 이전에, 남의 슬픔과 폐허에 손을 넣고 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다. 잊지 않고 싶다. 허약한 세상에 만족하지 않기 위해,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