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여름

by 몽주

이번 장마는 정말 길다. 언제 장마가 시작했는지 희미해졌고, 언제 끝날지 막막한 장마가 연속되고 있다. 마치 전등을 다 꺼버린 이른 저녁 같은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TV뉴스의 기상캐스터는 이번 주가 장마의 끝자락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더 이상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드물다. 차라리 시원하게 쏟아지면 좋으련만 이 놈의 비는 추적 추적 음울함을 더하며 이 도시를 적시고 있다. 축축하다. 얇고 질게 그렇게 비가 계속 내린다. 아주 지긋지긋하다. 밤같은 하루가 계속되니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꽤나 어렵다. 매일 30분은 족히 뒤척이는 것 같다.


날씨가 사람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던가. 예전에 앓았던 우울증이 다시 기어나오려는 듯 한없이 깜깜해져 간다. 수면 패턴이 엉망이다. 오늘은 오후 2시에 잠이 깼다. 그런데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창을 들여다 보며 괜시리 더 짜증이 난다. 다시 누으려던 찰나, 이러다 정말 우울증을 앓았던 그때로 돌아가겠다 싶어 재빨리 일어났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약이라도 처방받아야 겠다는 마음에 병원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집과 조금 거리가 있는 이 정신과 의원도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한 때 꽤나 익숙했던 장소였던 만큼 오랜만에 느끼는 낯설음이 생경했다. 하지만 발걸음은 익숙하게 병원을 향했다. 우산을 접고 병원문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이 곳에서 볼 것이라 상상치 않았던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내 고등학교 동창으로, 굉장히 인기가 있던 같은 반 친구였다. 공부도 잘했거니와, 얼굴 역시 상당히 이쁘장한 얼굴이었다. 선생님, 친구들 가릴 것 없이 그녀를 좋아했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다. 나 역시 그 중에 한 사람이었으나, 좀 처럼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와 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근본적인 벽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배려는 그녀의 사랑 받고 자란 과거를 짐작하게 했고, 웃을 때마다 얼굴의 근육을 다 써 활짝 열리듯 웃는 그녀의 표정은 그녀의 개방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이따금 그녀는 나의 우울을 눈치채 자연스레 챙겨주었다. 그런 그녀를 나의 공간인 병원에서 만나게 될 줄 어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만큼 카페에 가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와 다듬어 지지 않은 못 매무새 그리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고등학교 이후 흘러 가버린 20년 동안 그녀의 사연을 어림잡을 수 있었다. 예전의 총기 어린 눈빛은 어디 가고 풀린듯한 눈으로 밖을 응시했다. 그녀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을 견디지 못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 침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녀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처럼 수다를 떨었다.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주로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했다. 그 때 담임 선생님은 아직도 학교에 계신다는 둥,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할만한 대화를 했다. 주로 내가 많이 떠들긴 했지만 어느덧 그녀도 대화에 깊게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아줌마들끼리 할 법한 대화 주제로 자연스레 이야기가 옮겨갔다.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잘 크고 있는지. 그녀는 대학교 시절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지금 남편은 심리 쪽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으나, 뭔가 그녀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쳤다. 자식은 아들 한 명 있고, 지금 11살 이라더라. 조금 설명을 급하게 마무리 짓고 그녀는 다시 고등학교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지금 그녀의 모습이 궁금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나름 대로 삶을 살아온 것 같아 신기한 마음이 생겼다. 정신과에 온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라면 아마 가벼운 일로 정신과에 오게 된 것이리라 생각도 들어 곧 뇌리에서 잊혀졌다.


예전엔 다가가기 힘든 그녀였으나, 오랜만에 보니 왠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그 때보다는 지금의 내가 더 그녀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이 들었다. 비도 오는데 술 한잔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그녀도 흔쾌히 승낙했다. 자리를 옮겨 작고 조용한 막걸리 집으로 갔다. 컴컴한 거리를 걸으며 장마에 대한 요즘 나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지겹고, 지겹다고. 하루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는 단지 묵묵히 들었다.


술을 한 잔 걸친 그녀는 말이 조금 많아졌다.
“ 나는 끝나지 않는 장마에서 살고 있어”
그녀의 눈이 붉어졌다. 갑자기 바뀌어 버린 분위기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연거푸 술을 들이키던 그녀는 어린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네가 알던 그때의 나는 이제 없고, 난 이제 진짜 지독하게 불쌍한 년이야.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녀의 울음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울음에 지친듯한 얼굴로 자신의 20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진정으로 행복했다. 남편은 자기가 보았던 사람 중에 가장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며, 처음 1~2년 동안 결혼생활은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문제는 아이였다. 운 좋게 아이도 빨리 들어서 단란한 가족을 기대했으나, 10달을 기다려 찾아온 아이는 자폐였다. 처음엔 몰랐다고 했다. 오히려 약간은 순한 아이인 듯도 하여 기뻤다고. 하지만 2살이 되도록 아이는 말이 거의 없었다. 다른 친구들 아이는 울기도 떼쓰기고 하고 꺄르륵 웃기도 하건 만은 이 아이는 엄마 아빠 소리도 해주지 않았다. 남편은 자꾸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아무리 봐도 자폐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무시 했다. 결국 남편이 몰래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왔고, 남편의 예상은 들어 맞았다.


크게 좌절했지만 곧 일어나 아이를 낫게 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했다. 치료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자폐아 어머니 모임에도 가입해 적극적으로 아이가 나아질 방법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항상 지지를 해준 남편이 있었기에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폐는 그런 노력들이 크게 성과를 내는 병이 아니었다. 아무리 치료 프로그램을 해봐도, 약을 먹여봐도, 아이의 자폐는 호전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점점 지쳐갔다. 하루 종일 옆에서 붙어있지 않으면 아이는 온갖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벽에 머리를 자꾸 쿵쿵 박아 항상 헬멧을 씌워줘야 했다. 계속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동작을 반복했다. 아파트 아래층 사람들이 항의를 하는 일도 잦아서 이사도 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아이는 한 번 눈을 맞춰주지 않았다. 한 번 안으려고만 하면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탓에 아이를 안을 수도 없었다. 나와 내 남편의 얼굴을 꼭 닮은 아이가 나를 너무나 미워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강렬히 거부 당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상대가 내 아이라니. 그 사실이 그녀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사랑을 쏟아부어도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 점점 더 무기력해져 갔다.


남편과 상의 끝에 둘째를 낫기로 결심했다. 나를 향해 환히 웃는 아이를 가져보고 싶었다. 그 것 역시 맘처럼 되지 않았다. 첫 번째 임신이 쉬웠던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둘째를 가지는 일은 너무 어려웠다. 여자로서의 나에 대해 의심되기 시작하였다. 하나 낳은 아이는 저 지경인데, 아이도 가질 수도 없다니. 아이는 자폐 증상이 아닌 다른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약물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아, 분명해졌다. 세상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우울증이 찾아왔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이를 돌보기도 힘들어졌다. 남편은 조금씩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도 심리 상담 모드로 바뀌어 나를 위로했다. 그 모습에 위안은 되지 않았다. 직업에서 하는 모습 그대로 나를 대하는 것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씻지도 않고 집안에서 잠만 자는 내 모습에서 정이 떨어진 것 같았다. 둘째를 가지려는 노력도 어느 순간부터 중단되었다. 그는 더 이상 나에게 손대지 않았다. 그럴 만 했다. 난 제대로 된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나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불현듯 지독한 분노가 치밀어와 남편에게 퍼부어 버렸다. 그럴 때면 남편은 또 심리 상담 모드로 바뀌어 나를 매뉴얼대로 대했다. 예전의 진심이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그런 생각이 폭주하는 날이면 가눌 수 없게 더욱 더 우울해졌다. 남편은 나를 정신과로 데려갔다. 아들과 함께 정신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자폐 아들과 우울증 엄마라니. 내 인생은 어디부터 꼬여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실소와 함께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병원을 다니던 길에 그녀는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삶의 무게에 압도 당해 버렸다. 그녀는 내가 우울증을 앓게 된 후 제대로 대화를 나눈 첫 번째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우울했던 사람이었음을 그녀는 알았기에 나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조금은 쉽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한 때 나의 우상이었던 그녀가 무너진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가도, 그 우상에 갇혀 그녀의 현재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예상한 내가 부끄러웠다. 나의 장마는 끝나지만, 그녀의 장마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뇌가 굳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변해버린 지금의 자기보다 고등학교 때의 모습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가는 길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다음 날엔 정말 오랜만에 해가 떴다. 나의 장마가 우스웠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생각날 때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