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데 있는 티 내는 놈과, 없는 데 있는 척 하는 놈 중에 누가 더 나은가? 사람마다의 판단은 다양하겠지만 있는 놈들은 대개 재수가 없고, 없는 놈들은 종종 우습다. 사회에서는 있는 놈의 있는 척을 그나마 더 잘 받아준다. 없는 놈이 부리는 알량한 허세는 참아줄 수가 없는 것 같기도. 있지도 않으면서 어디서 나댄단 말인가.내 생각에는 사실 둘 다 구리다. 있는 놈은 있는 티 내며 갑질하지 말아야 하고, 없는 놈은 없다고 해서 비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허세, 과시, 자랑, 공작의 날갯짓은 다양한 양상을 띈다. 내가 무엇을 할 줄 안다고 능력을 과시하거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소유를 과시한다. 종종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허세의 주제가 된다. 그런 허세를 마주할 때면 "누구는 안 그런 줄 알아?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저런 것도 가졌으며, 엄청나게 끝장나는 사랑도 받아봤어!'하는 목소리가 기어나오고 싶어 목 울림통을 간질인다. 더 없어 보일까봐 보통은 참는다.
있다고 부리는 허세든, 있는 척 부리는 허세든 허세 부리는 사람들은 어딘가 비어보이는 느낌을 줬다. 그 들은 내 눈을 또렷히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곤 했으며,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내 반응을 살폈다. 그 기저의 불안을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하겠으나, 빈 것을 채우려는 조바심을 감지했다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그들이 가여웠다. 아마 조금 더 인정받고 싶고, 한 뼘 더 사랑받고 싶은 굶주림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습관이 현재의 삶에 역기능적인 데도 사라지지 않고 잔존하는 이유는 한 때 이 행동양식이 기능적이었기 때문이다. 강박적 성향은 우리의 학창시절엔 도움이 되었지만 연인을 대할 땐 장애물로 작용한다. 소유로써 스스로를 드러내고 인정받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방식이 너무나 확실하고 오차범위가 좁은 방식이라는 것을 학습했다. 가진 것으로 사랑을 획득해낸 그 성공경험이 계속 삶을 추동시키는 힘으로 작동하며, 우리를 허세부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딱 그만큼, 그 깊이 만큼, 그 어둠 만큼. 그 뒷면은 존재한다. 허세가 심할수록, 가진 것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보였을 수록 나는 생각한다. 가지지 않아도 사랑받아 본 경험,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확신을 얻었던 경험은 적었겠구나. 조건적 사랑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한 아이의 모습만 시간여행 하듯 머릿 속에 스친다. 그런 상상을 하면 나름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안타까움이 압도적일 땐 그 들 뜻대로 움직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들의 허세에 격한 감동의 제스처로 응답해주는 것이다. 허세부리는 모습이 항상 귀엽고 안타깝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내가 가진 것에 무의식적인 경쟁심을 가진 채 내게 싸움을 걸어오고 있음을 느낄 때면 그 들 뜻대로 움직여줄 마음은 전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보통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게 대단한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태도로 멍청한 면면에 물음표를 동동 띄운다. 당신이 가진 것이 아무리 대단할 지언정 힘 나를 그 힘의 세력 하에 굴종시키려 하지 말라. 별 대단한 것도 아니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면 허세는 안타깝다. 허세 부리는 이들은 각자 가진 것을 높은 값을 쳐서 팔고 싶어하는 무한 시장에 갇힌 사람들이다. 너도 나도 상품이며, 거래대상이다. 허세가 먹힌다는 것은 사실 상대에게 진정 어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내포할지도 모른다. 숨쉬고 내뱉고 어제도 살았고 내일도 살아갈 입체적인 인물로 봐 줄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없는 지 모른다. 가진 것에 상대의 마음을 잡으려는 시도는 단지 지금 현재를 대출하여 쓰는 것이다.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에 가초한 애정은 항상 위태롭다.
안타깝긴 하나 나도 역시 허세부리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가진 것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이에게 끌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가졌음에도 가진 줄 모르고, 그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가장 잘 사용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순수함이 엄청 귀엽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그런 것이다. 진흙탕 갈대더미 밑에서 사장 없이 동물들의 발길질에 치인다해도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인 것 처럼 말이다.
반짝. 짧지만 일순간 터지는 누군가의 반짝임을 운좋게 목격했을 때 나는 어김 없이 반하곤 했다. 와. 당신 이런 보석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내다팔 듯 목소리 높여 방송하지 않고 고이 귀중하게 품고 있었구나. 누군가의 내면에 깊게 숨겨져 있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는 순간의 짜릿함은 정말이지 굉장하다. 한번도 가본적 없던 여행지에 처음으로 바람느끼며 발걸음을 디딘 순간의 느낌과 비슷하다. 곧은 긍지, 선량한 심성,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는 안목, 약한 것에 진정으로 연민하는 마음들을 목격하는 순간들에 나는 무너졌다. 그렇게 반하면 출구가 없다.
우리 모두는 사실 다이아몬드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 존재이며,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보석상에서 다이아몬드는 다른 보석보다도 더 이중삼중 잠금이 되어 있다. 가장 귀하고 비싼 것은 숨겨놓고 잘 보여주지도 않는다. 귀한 것을 대하는 방식은 꼭 그런 것 같다. 시장에 내다 팔 듯 다이아몬드를 대한다면 그 가치에 맞는 대우는 아닐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가졌든, 어떤 것을 해내든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무언의 메세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보내는 중인데,그들이 눈치채주려는 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