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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Aug 11. 2017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완결

이유는 없다.

1.


   문혁이가 무너진다. 작은 파도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빙산같은 그 문혁이가 차게 차게 무너지고 있다. 고개 숙인 채 미동조차 없지만 거대한 붕괴가 보인다. 냉각된 공기에 말을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너에게는 분노가 나에게는 공포가 몰아닥쳐 입을 뗄 수가 없는 듯 하다. 아-. 이제 문혁이가 나에게서 돌아서겠구나. 미리 대비하고 몸사렸던 순간이 지금인 것 같다. 도망가야해. 지금 도망가야 곧 날아올 빙산 조각에 얻어 맞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한마디 뱉어냈던 문혁이는 그 이후로 한 동안 다시 말을 하지 않는다. 정적 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엉킨다.  나 역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네 입에서 먼저 이별의 말이 나오는 것이라면 그 쪽이 마음이 훨씬 편할 것 같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아줬으면 좋았을 거야."


응?


"말을 하지 않는 것 쯤은 해줄 수 있었잖아. 그 남자가 네 취향이라는 것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됐잖아."

"아.. .미안해."


문혁이가 잠겨있던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나와 같은 두려움이었다. 


"미안하다고도 좀 그만 말해. 말만 그렇게 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

"미안해. 그래도. 문혁이 네 말이 맞아."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 미안하다는 말 아니면 나는 할 말이 없어."

"응. 그렇겠지. 너는 나를 안 사랑하잖아."

"알고 있었구나."

"너는 너무 자주 나한테 미안해해. 네가 날 사랑했으면, 그렇게 미안해할 일도 없을 거야."

"그러네."

"그리고 너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나한테 미안해했어.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로 들려. 그러니까 그만해."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걸.


"헤어지자. 문혁아."


   그 순간 눈동자가 애처로이 흔들린다. 흔들림이 멎은 눈동자는 나를 꾸짖기 시작했다. 직시하는 빨간 눈동자를 보며, 강렬한 원망의 감정이 느껴진다.  조금 더 그 눈 아래에는 칠흑같이 검고 온도가 높은 분노가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감정이 무표정 밑에 숨겨져 있었구나. 


   싸늘하게 식어버린 눈빛으로 변한 문혁이는 번쩍 일어나, 들고온 파란 장미 꽃다발을 거칠게 구겼다. 잔뜩 구겨진 꽃다발을 바닥에 세차게 내동댕이친 다음 문혁이는 가버렸다. 나도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나야 하는데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겁이 나서 문혁이가 떠난 방향을 차마 쳐다볼 수도 없다. 꽃다발의 어여쁜 장미들은 목이 꺾인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의 마지막 모습에 꼭 어울린다. 


2.


그렇게 1년간의 미친 짓이 끝났다.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짓거리가 어디서 기인한 걸까. 나는 너를 통해 어떤 종류의 권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누군가의 일상을 파괴해가는 순간의 확인, 혹은 그 상대의 삶에 찍이는 낙인이 역설적이게 나에게는 평화를 주었달까. 내 존재의 무의미를 잊게 해주었달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짧게 통화했고, 문혁이는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나 역시 모순적이게 안도했다. 우리가 서로를 보게 된다면, 나는 또 너를 실컷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너는 나에게 종속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 같다.


"너는 사람을 피말려. 내가 말라서 다 사라져버릴 것 같아"


전화를 끊은 후 짧게 온 메세지에 심장이 굳었다. 너 내가 많이 밉구나. 이 다행스러운 마음은 뭘까.


   이틀을 내리 울었다. 아침에 눈 뜨는 대로 울고, 밥먹으면서도 울다가,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울었다. 너에 대한 미안함인지, 그리움인지, 사랑인지 모를 눈물을 그렇게 흘렸다. 비오는 날 창문에 흐르는 빗물처럼 무력하게 울다가, 태풍에 쓸려온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듯 울다가 삼일째 되는 날 눈물이 멎었다. 너를 만나기 1년 전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잊는 과정도 너무 멀끔하여, 이 조차도 문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을까. 너와 헤어지고 나서 내내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물음이다. 너와 내가 함께 했던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너를 사랑할까? 눈을 지긋이 감고 눈 앞에 가장 우리가 함께 보냈던 아름다운 풍경을 스쳐보내 보았다. 갑갑하고, 숨이 막힌다. 그 안간힘 뒤에 또 다시 자명해진다. 아마도 나는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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