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주 Dec 11. 2017

거지같은 대학원생

글쓰기 클래스 3회차_주제: 바람

   아침에는 바람이 숭숭 통하는 얇은 검은 스타킹을 신고 집을 나섰다. 두꺼운 롱패딩 밑에 어색하게도 겨우 스타킹 한 겹만 둘러싼 종아리가 삐죽 나와있다. 종아리 살갖이 전부 얼어버릴 것 같다. 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바람이 맨살에 닿는 착각이 인다. 그대로 종아리가 잘려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7시 10분의 이른 아침. 출근길 시작점부터 서러워졌다.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연구실까지도 내내 서러울 것을 알고 있었다. 나, 너무 고되게 살고 있다. 


   오늘은 나의 통합과정 발표날이다. 많이 준비 하려 했지만,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가장 오래, 많이, 철저히 준비했지만 사실 너무 부족한 준비량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수업발표도 아닌 학위과정 중 큰 역할을 담당하는 통합과정 발표를 준비하는데 이정도 밖에 준비시간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내 최선이었다. 나는 객관적으로는 대학원생이지만, 주관적으로는 저임금 노동자다. 우리 교수님은 나를 공부하는 학생이 아닌 일꾼으로 본다. 


  내 탐구욕과 지식욕을 볼모로 잡고 있는 나의 교수님은 연구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만 공부를 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누구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 전공 지식이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버텨냈다. 보통 하루 10시간을 일하면, 일이 끝난다. 하지만 하루 10시간을 일한 나는 지쳐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주경야독"을 주장하는 우리 교수님은 "주경"을 못하면 혼을 내시지만, "야독"을 하지 않을 때는 대단히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이런 지독한 모순감과 비애감이 내 삶에 전반으로 퍼져나갈 때 드는 먹먹한 느낌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불쌍해서 화가 난다. 


  얼어붙은 종아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녹였다. 피피티를 다시 확인하고, 옷 매무새를 살핀다. 사이즈가 꽉 끼어서 입지 않고 챙겨온 정장치마를 꺼내들었는데, 엉망이다. 아침에 챙겨온 당근 주스가 가방안에서 터진 모양이다. 맥이 탁, 풀려버렸다. 발표를 잘하기로한 마음을 내려 놓고 그냥 대충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짜피 우리 교수님은 내가 발표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없을 것이고, 오늘 발표 역시 그들에겐 귀찮은 대학원생의 열정을 구경하는 자리일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여움이 뭐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