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에서 만난 남자이야기
많은 사랑의 장르는 다르다. 나의 사랑이 진지한 로맨스 소설이였다 한들, 그의 사랑이 짤막한 희극 장면이라면 우리의 시간은 사랑이 아니다.
나는 아름답다. 어딜 가서든 약간의 상기된 표정의 남자들을 볼 수 있고, 곁눈질로 경계하는 여자들도 볼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항상 일관된다. 긴생머리에 하얀 피부, 새초롬한 빨간 입술, 얇은 흰색 셔츠에 골반이 드러나는 바지로 구축되며, 최고의 이미지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적절한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고, 이러한 판단은 지금까지 나의 삶속에서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한 번 씩 미용실에 갈 때면 너무 고전적인 스타일, 고루한 스타일이라고 한 마디씩 듣고는 하는데,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들의 배를 불려주며 웨이브를 넣고, 노랗게 염색을 하는 것이 세련된가? 나는 잘 모르겠다. 머릿결이 아깝다.
꽃으로 치면 동백꽃이라 할까. 새빨간 꽃잎에 짙고 검은 잎이 강렬하게 대조를 이뤄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하지만 어딘가 순수성을 잃지 않는 그 이미지를 나는 좋아했다. 장미의 아름다움은 깊지 않다. 잠깐 눈만 현혹시킬 뿐. 안개꽃의 아름다움은 이름처럼 허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백합은 연약하다. 무언가 부러질 것 같고, 금새 그 시들 것 같다. 진하고, 강인하지만 무게감 있는 동백꽃이 좋다. 빛나지만 금방 시들 것 같지 않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꽃말도 훌륭하다. 사랑. 사랑스럽고, 사랑받아 마땅한 나에게 이만한 꽃이 있을까.
연애는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내가 관심이 없는 남자는 나를 찬양한다. 많은 벌들을 모으진 않지만 수더분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가끔은 부럽다. 가장 빛이 나는 스무살인 지금의 나, 이제는 진짜 사랑을 시작해봐도 될 것 같은데 기다리면 때가 오려나.
우리의 처음은 너무나 가벼워서 겁이 날 자리에 있었다. 넷 넷 둘러 앉아 마주보며, 애매한 대화를 했다. 미묘한 자존심대결, 그리고 광기어린 주량 자랑이 이어졌다. 그 미쳐있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너의 시선만 따라갔다. 옆자리 친구를 보는 너의 눈빛은 다정하고 장난기 넘치며, 가득 담긴 맥주잔을 보는 눈빛은 호기로웠고, 나를 보는 눈빛은 알 수 없었다. 무언가 경계하는 듯 하면서, 눈이 마주칠 땐 피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나에 대한 호감의 여부를 읽을 수 없었다. 나를 틈만 나면 훔쳐 보고 있는 그 옆의 남자의 마음은 이렇게나 읽기 쉬운데, 너의 맘은 왜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반쯤 포기하는 심정으로 내가 먼저 술자리를 파하자고 권했다. 아무도 더 있다 가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고, 의연한건지 의연한 척인 건지 각자 옷가지들을 챙긴다. 미팅 자리중에 가장 지질한 마무리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초반부터 4대4로 붙던 미묘한 매력경쟁은 생채기만 남기고, 그렇게 끝이 났다. 술을 꽤나 먹어 어질어질한 탓인지 자리를 파할 무렵부터 그가 보이지 않는다. 집에 먼저 갔나? 아아 잽싹 빠르기도 하다. 마음에 홀연히 구멍이나 바람이 왔다갔다 하였지만, 이미 접은 기대인 만큼 더 이상 미련두지 않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서 자꾸 아까 그 나를 줄곧 쳐다보던 남자가 말을 붙인다. 내 눈과 발걸음은 빠르게 직진하는데 그 남자는 종종 거리며 나를 따라잡았다가 뒤쳐졌다를 반복한다. 번호를 달라는 둥 말은 않고 변죽만 둥둥 두들긴다. 귀찮고 지겨움이 한계에 다달았을 때, 분명 집에 갔던 줄 알았던 그가 내 앞에 있었다. 아, 반가움에 소리를 낼 뻔했다. 우뚝 서있는 그는 술집의 조명아래서 보다 더 청순하고 멋졌다.
"나 집 가는 길 데려다 줄래. 미우야?"
뜬금 없는 그의 한마디. 이 남자 특이하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남자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