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에 내가 없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도착해보니, 정말 현주가 사는 동네다. 약간 당황스럽고 약간 재밌다. 이런 동네에 사는 구나. 꽤나 잘 사는 동네다. 정원도 있고, 차고도 있고, 큰 대문도 있으며 집 지키는 개도 있을 것 같은 동네. 멍한 내 눈빛을 의식이라도 한 듯이 설명하기 시작한다.
"우리 집은 안 잘살아.이 동네에서도 다 급이 다르거든."
"응. 그렇구나."
잘 살든 안 잘 살든 별다른 감흥이 없었기에 간단히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내 반응이 너의 예상 범위에 있지 않았는지 어떤지 네 눈은 허공에 멈춰있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네가 조금은 익숙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너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생각이 내게 실망감을 자아낼까봐 조금 겁이 났다. 사실, 이 동네에 데려온 현주 네가 잘살고 안 잘살고를 설명하고 핑계대는 모습이 약간 씁슬한 뒷 맛을 남겼다.
저택이 늘어선 언덕을 올라올라 내려내려오니 도착한 곳은 호수였다. 구름 한 점이면 꽉 채울 것 같은 자그마한 호수지만 나즈막히 빽빽하게 가로수가 둘러있었다. 검은 호수물에 달이 번져 출렁였다. 사방은 너무 조용해 흐르지 않는 호수물의 졸졸거림이 들릴 것 같았다. 아름다웠다. 특별한 공간이었다.
내 옆에 너도 아름다웠다. 아니, 수려하다는 말이 좀 더 좋겠다. 호수를 선택한 너의 안목에 감탄이 일었다. 너와 잘어울렸다. 차분한 검은 생머리에 곧은 눈빛을 가진 너는 완연한 정면의 얼굴은 내게 좀처럼 구경시켜주질 않았다. 깔끔한 턱선도 좋고, 생각보다 굵은 콧날도 좋지만 날 보는 너의 표정, 혈색이 궁금한데 말이다. 무슨 짓을 해야 너의 두 눈이 나를 놀람과 들뜸의 눈빛으로 마주해줄까. 돌발행동이라도 저지르고 싶을 만큼 무심하다. 너의 눈에 내가 없다.
1시간 전의 광기가 아득할 정도로 차분한 정적이 감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호수에, 너에 반하고 취했기에 억지스러운 행동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감각을 열어 그 공간의 특별한 분위기를 새기고 있었다.
"동우는 마음에 안 들었어? 동우 되게 인기많아."
쓸 데 없는 남자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그 모습도 좋다. 접히는 눈이 예쁘다.
"내 취향 아니어서."
"어떤 취향 좋아하는데?"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좋아. 가볍지 않게. 노랗고 빨갛고 그런 것보다 짙은 파랑이 내는 분위기 있잖아."
코발트 블루의 셔츠를 입은 그를 겨냥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눈에 달달한 꿀을 담아, 가장 예뻐보일 각도에서, 생긋한 말투로.
"어. 그거 난데."
"응 맞아."
하면서 우리는 손을 잡았다. 고개가 급히 순간을 따라가 너의 손이 내 손을 잡아가는 순간을 캐치했다. 그 순간 내 망막에 맺힌 영상이 신기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을 가진 큰 손이 잡고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손이 바로 내 손이었다. 촉촉한 감촉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내 손이 맞았다.
약간 숨이 가빠진 느낌. 간질이는 느낌에 한결 마음이 열려 궁금한 것을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학교 생활은 재밌어?"
"어떤 영화 주로 보는데?"
"방학계획은 짰어?"
"너는 어떤 꽃을 좋아해? 나는 동백꽃을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친절히 하나하나 대답해주던 그는 약간 멈춘다. 대답을 고르는 느낌. 상냥한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였나 하는 생각에 조금 자책감이 들었다. 정적이 길어지자 가만히 멈춰 나의 실시간 매력도를 검토하고픈 강박이 목 끝에서 콕콕 나를 채근한다. 너무 적극적이었을까? 하지만 생에 처음 만나보는 완전히 내 취향인 아름다운 남자에게는 불수의적으로 행동이 나간다는 사실을 계속 체감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좋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솔직한 내가 마음에 들고, 이 밤의 분위기에 나를 맡기는 것이 이 특별한 순간에 대해 가장 적절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예쁘다고 생각해. 예쁘잖아. 미우"
그리고 우리는 키스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