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 않고 사랑하려 한다면
1.
책상 아래 가장 어둡고 손이 닿지 않을 책장엔 먼지 속에 초등학교 앨범이 눕혀있다. 소심하게 먼지를 걷어내고 찬찬히 앨범을 펼친다. 전교생의 얼굴이 알알히 박혀있는 페이지를 지나면 행사 사진들이 부록처럼 모여있다. 입학식, 운동회, 백일장 따위의 것들이다.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는 사진 속에초등학생인 내가 절묘하게 포착되어있다. 사진은 운동회 달리기 시합의 스타트 장면을 잡아냈고, 거기엔 모두가 출발을 준비할 때 이미 전력질주로 경기를 시작한 내가 있다. 등은 한참이나 앞으로 굽어 있고, 팔은 직각으로 번쩍 들려있어, 완벽한 경주자세를 취했으며, 눈은 광기에 빛난다. 오로지 결승점만을 향해 직선으로 뚫는 눈이다. 내 승리에 대한 집착은 양 옆에 나른하게 한 발을 내딛는 친구들과 대비되어 더 두드러진다. 지금에 와서 보면 살짝 웃기다. 피식.주변 시선따위 상관하지 않고 이기기 위해 죽도록 최선을 다하는 그 진지함이 순수하고 귀엽다고나 할까.
2.
이김은 삶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축제의 순간이다. 뻔하던 일상이 환희에 젖고, 희열이 질주한다. 숨이 짧게 목을 치면서 가빠오고,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달려가고 싶어진다. 뉴런은 도파민 작용에 완벽히 종속된다. 삶이 하나의 축제라면 승리는 가장 큰 불꽃놀이다. 엄청난 자원이 들지만 그 순간으로 완벽해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한 인간을 규정지을 수 있는 본성이라는 게 있을까?이 질문에서 나는 까마득한 옛 날부터 오늘까지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꾸준히 내 자신을 묘사하고, 규정지었다. 일단 기술해두면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었을까. 습벽같이 자리잡은 자기탐구의 결론 중 하나는 바로 경쟁심이다.
경쟁심은 나의 본질을 구성하는 여러 기둥 중에 큰 축을 담당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이기심과 승부욕이 내 삶을 강력히 지배했다. 삶의 많은 장면에서 나는 언제든 이기고 싶었다. 어느 시기에는 성적이었고, 다른 시기에는 애정이었고, 또 한 때는 지적인 고매함이었다. 이길 가능성, 이겨서 얻는 것, 이겨서 포기해야할 것들을 측량하지 않는 단순함으로 승리를 탐했다. 그 기묘한 올곧음 탓이었을까. 이기고자 그렇게 애를 썼고, 그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에도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승리에 대한 순도 높은 욕망이 단순한 매력을 뿜어서였을지 모르겠다.
승리는 기본적으로 단순함을 전제한다. 이기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제거할 줄 아는 자가 이긴다. 의식적 제거를 위해서는 성실해야 하고, 무의식적 제거를 위해선 욕심이 끓어넘쳐야 한다. 뛰어난 성적으로 대단한 학교에 입학한 사람들 중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사람들이 많다. 그 단순함으로 목표달성에 필요한 생각과 행동만을 하는 이들은 효율적이고, 효율성은 빠른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로 단순한 자들은 경쟁에 탁월하다.
내가 이기던 시절, 그 시절의 나도 단순했다. 단순한 성격이어서 이길 수 있었고, 이김을 반복하니 더욱 단순해졌다. 명확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확실한 노력을 했다.100M 육상선수처럼 결승선을 향해 전력투구했다. 옆에서 달리고 있는 선수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고, 넘어지는 선수 역시 내 알 바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나에게 진 상대의 기분과 입장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길 만하니까 이겼고, 질만 하니까 지지 않았을까?이런 믿음들로써 패배한 이들의 눈물과 상황적 handicap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알고자 하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볼 수 있었을 테다. 다만 내가 보기 귀찮았을 뿐이다. 내가 계속 이길 거니까, 왜 그래야 하지-. 지금 돌이켜보면 실로 섬뜩한 오만함이다.
승리 뒤에 얻어지는 격양된 자의식은 최고의 쾌락이었다. 내가 좋았다. 그 시절의 나는 뽐내고, 즐기고, 다시 노력하는 순환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어리고, 내가 속한 세상이 좁았으니, 고리는 꽤 오래 끊어지지 않았다. 내 앞에 펼쳐질 삶도 계속 그러하리라고 믿었다. 스스로에 한 껏 취한 채로 승리감을 표출하곤 했다. 조금 더 커서는 사회성이 길러진 탓인지, 곧잘 감추기도 했다. 사실 이미지 관리라는 종류가 다른 경쟁에서 이기려는 세련된 노력이었달까.
3.
놀랄 것 없이, 흥미롭지도 않게, 내 삶도 꺾였다. 반복되던 승리의 경험은 사라지고, 시련과 고통이 삶의 주제가 되었다. 그 사연들을 구구절절히 풀어놓자면 누군가는 비웃을 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시련이냐고. 세상에 떠도는 좌절, 고통의 사례에 견주자면 내 이야기들은 자질구레하다. 호들갑떠는 것에 비해 평범하고 흔한 이야기들이다. 내가 마음이 유연하고 단단했다면 잠깐 휘청했다가 탄력적으로 제 자세를 잡았을 수도 있었을테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웅대하고 부푼 내 자의식은 작은 실패의 경험도 용납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져버린, 아니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지위도 얻지 못한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인생은 잘 풀려야 했고, 나는 뛰어났고, 질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물기없이 뻑뻑한 자기확신은 유연성이 없었고, 작은 돌부리에도 나를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이기지 못하니, 삶에서 지속적으로 충족되던 극한 쾌감이 사라졌다. 자의식 고취의 순간들이 제거된 멀끔한 일상은 지루하고 초조했다. 승리의 순간들이 메웠던 공간의 크기만큼 깊고 캄캄한 싱크홀이 생겼다. 구멍은 촉수를 뻗어 내 뒷덜미를 잡았으며, 어떻게든 채워달라 강압했다. 기초대사량도 아니고, 하루 섭취 칼로리도 아니고, 기초자아고취량이 있는 느낌이랄까.
내일이 다가오는 게 싫었다. 이런 오늘과 내일이 쌓이는 1년 후는 얼핏 상상하기에도 끔찍했다. 의식은 피폐해졌다. 순간순간에 끈적한 오물이 머리 바로 위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바삐 눈을 가리는 오물을 닦아내도, 내 머리 위 양동이에서 계속 흘러내릴 것을 이미 알았다. 다시 닦아내도 다시 흐려질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무기력을 학습하는 경험이었다. 불안은 날로 심해져 심장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렸다. 130bpm음악같은 내 심장소리는 굉장한 진폭으로 고막도 두들겼다. 주기적이고 빠른 고막의 진동은 내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
무기력과 불안은 나에게서 경쟁력을 앗아갔다. 아무 생각없이 노력만 하면 되었던 예전과 달리, 경쟁에 사용되야할 에너지를 무기력에서 벗어나는데, 불안을 이겨내는데 사용했다. 정신의 평온을 찾는데 집중하고 나면 나는 이미 뒤쳐져있었다. 정상적인 기능수준을 잃은 나는 이길 수가 없었다.
내가 무너지든 말든 나를 한참이나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단순했다. 정확하게 목표지점을 향해 자신의 사고를 초점화시켰다. 예전의 내 모습을 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주저앉아 지켜보았다. 익숙하고 동시에 낯설었다. 부러움이 울컥 솟았다. 부러워하는 내 모습이 나를 더 철저한 패배감에 빠지게 했다.
삶이란 race에서 advantage를 가지고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handicap을 가진 지위로 강등된 느낌에 휩싸였다. 더 타고나지 못한 내가 싫었다. 한 번 상대의 타고난 handicap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내가, 세상이 나의 handicap을 이해해주지 않자 분노했다. 내가 질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왜 알아서 이해해 주지 않는가. 그런식으로 견고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펼쳐나갔던 시절이었다.
4.
영원할 것 같던 분노와 두려움도 연료를 다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졌다. 자아에 취했던 내가 술에서 깼다. 숙취가 심했지만 홀연히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취해 있을 때 놓쳤던 것들이 탈진 직전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승리에 대한 질주가 많은 사람의 배려 속에 가능했다는 통찰이 자연스레 왔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옆사람을 치고 갔고, 승리에 환호하느라 옆사람의 열등감을 보지 못하였구나.
아파보니까 아픈 사람 마음을 알게 되더라. 집중하지 않아도 여러 감정들이 유유히 흘러 들어 왔다. 감각이 예민해지니까 그 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놀랄 만큼 복잡한 삶이 나의 세계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승리, 성취의 순간 따위가 무어냐며 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옆의 사람이 더 큰 지옥을 안고 있었다. 조금 더 돌아보니 세상은 지옥 천지였다.
이러한 깨달음들에서 벌개진 부끄러움을 어찌 표현하랴. 마치 실컷 깝치다 들킨 것 같았다. 내 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 뼈아프게 실감했다. 상대의 세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어찌 그 사람의 실패를 그가 못나서라고 여겼을까. 그는 덜 노력했을까. 내가 삶의 불안과 우울을 처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했던 것 처럼, 그는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가 많았고, 혹은 기회가 작았거나, 축적된 성공 경험이 작아서 노력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질놈은 질만하고, 이길 놈은 이길 만하다는 단순하고 치졸한 논리가 무너지고 복잡해졌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한 상황을 해석하는데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파악불가능하고 막연하게 변했다. 아- 얼마나 지독하게 제멋대로고, 나만 속편했던 구조에 살았던 걸까.
5.
반성의 시간은 분노의 시간보다 한층 더 괴로웠다. 밖으로 향하던 혐오감이 스스로를 향하니 어디론가 도망칠 수도 없었다. 옴짝달싹 못한 채 내가 나에게 퍼붓는 공격을 감당해냈다. 예전의 나는 각종 합리화로 내 성취를 정당화했고,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평가했고, 주변인들의 배려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안하무인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니, 나는 견뎌야 했다. 오롯히 자기혐오를 참아내야 나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서해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힘들더라도 바르게 살고 싶었다. 더이상 취해 있는 삶은 살기 싫었다. 많은 변수들을 초련히 고려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취해 있지 않아야 했다. 이긴 자와 진 자로 나뉘는 단순한 도식을 의식적으로 깨트리려 했다. 나의 천성이 단순하고 경쟁적이어서인지 의도적으로 다분히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예전의 사고방식과 행태로 복귀했다. 성가지고 불편했지만 복잡해지기를 기도했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층위의 삶이 있고, 여러 기준이 있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복잡함을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그 사람을 단정짓지 않는 태도로 이어졌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가능해졌다. 나만 사랑하는 나에서 진정으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나로 향해갔다.
6.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사람이 확 바뀌는 소설 속 주인공 처럼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도 노력중이다. 꽤나 시간이 흘렀건만 솔직히 잘 안 바뀐다. 진짜 변화는 느리게 오기 때문일까.
천성은 바꿀 수가 없는지 나는 여전히 이기고 싶다. 내 열정의 기반이 승부욕과 목표달성임을 무시하고 나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취하고 싶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다. 뭐. 수용 없이 변화가 있으랴. 승부의 대상이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라면, 내 승부욕은 마르지 않는 산유지가 될 수도 있을 테다.
다만,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이 있다. 나의 승리, 성취가 내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침해하기 않기를. 내가 빛나기 위해 내 눈앞에 있는 이의 동공에 얽어져 있는 열등감을 외면하지 않기를. 온몸으로 삶의 복잡함을 마주하며 살기를. 깊은 목마름으로 기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 글쟁이가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쓰면 책임져야 한다고. 글로 뱉어 놨으니 이제 내 삶이 글을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 다짐의 글을 쓰면서 소원한다. 승리에 취해 "너"를 등지는 삶을 살지 않겠다. 강력한 내면의 요청으로 굳게 밀어나가고 싶다.